나는 사실 알뜰하려고 꽤 노력하는 편이다. 다 아낄 수는 없으니 특별히 잘 쓰는 부분과 특별히 아끼는 부분이 있는데, 전자는 식비요. 후자는 의복비라던가 품위 유지비 등이다. 첫째가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옷을 만들어 입히거나 중고를 사 입혔다. 남편은 외벌이고 나름 사회적 지위가 있으니 백화점에서 옷을 사 입기도 하지만 아이들이나 내 옷은 아울렛 할인 코너 정도가 최선이다. 우리 집에 한 대 있는 차도 지인의 차를 중고로 샀고, 되파려고 시세를 조회해보니 120만 원이라 감가상각이 커서 실망스러웠더랬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새 옷, 새 신발 그리고 옷 사러 가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마트를 가면 엄마 등쌀에 옷 입기를 짜증 내는 아이들과는 달리, 이 옷도 사고 싶고 저 옷도 사고 싶다고 나를 조른다. 하지만 금방 금방 크는 아이들의 옷을 사는 것이 아까운 나는 미루고 또 미룬다.
원체 바닥에도 잘 구르고, 음식도 잘 흘리고, 클레이나 슬라임을 좋아하는 둘째의 유치원 체육복은 그야말로 너덜너덜, 손에 묻은 것은 무엇이든 옷에 닦는 둘째에게 입힌 새 체육복도 일 년이 지나자 도무지 못 봐줄 수준이었다.입히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길 몇달째, 아이는 그동안 체육 하는 날에도 체육복을 입지 않고 등원을 했었다. 아무 말도 없길래 둘째가 어려서 별 신경을 안 쓰나 보다 하고 말았었다. 그래도 체육복을 버리기는 아까워서 과탄산에 담갔다가 정 안되면 그때 버리자 결심을 하고 소파에 내놨었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체육복을 발견한 둘째, 종일 떨어져 있다가 엄마를 만난 것처럼 "와 체육복이다!" 하며 체육복을 격하게 반겨준다. 너무도 당연히 당장 입고 등원을 하겠다고 한다. 이미 환하게 밝아진 둘째의 얼굴에 굳이 그림자를 만들기 싫어서, 나는 흔쾌히 알았다고 한다. 너무 더럽다고 욕을 해도 아이가 아닌 엄마를 욕할 테니 말이다. 신난 둘째는 체육복을 입으면서 조잘조잘 댄다.
"엄마 나 체육 하는 날인 거 알았어요?" "응 알았지." "근데 그동안 왜 체육복 안 챙겨 줬어요?" "응 체육복이 너무 더러워서 깨끗하게 빨아주려고 했지." "아, 그렇구나. 나는 내가 체육 시간 있는 거 엄마가 까먹은 줄 알았지."
유치원복이 좋아서 잠옷으로......
별거 아닌 이 말이 나는 왜 이렇게 미안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올해, 나는 첫째의 이른 등 하원을 이유로 둘째의 클래스팅도 숙제도 제대로 살펴본 적이 없었다. 아이에게는 엄마가 온전히 자기의 세상이니 엄마의 바쁘고 여유 없음을 둘째는 알고 있었으리라. 알고 있으면서도 6살인 둘째는 아쉬운 소리 한마디 하지 않고 엄마를 온전히 이해해주었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도 아이는 날 늘 이해하고 있었다. 내가 아이를 이해하는 것보다 더 말이다.
여담이지만 이날, 아이의 더러운 체육복을 보고 놀이터에서 마주친 엄마들이 고맙게도 집에 있는 체육복을 기증?해 주었다. 그래서 이제 둘째는 체육복 부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