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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는 무서워 하지만, 시험관 중입니다.

시험관 주사 맞는 법

by 온 아무

나도 정확히 언제부터 주사를 맞으면 쓰러지는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릴 적 군말 없이 병원을 잘 따라가고, 주사도 잘 맞아서 용감한 어린이라며 칭찬을 들었던 나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불안정한 자세로 주사를 맞으면 쇼크가 왔다. 주사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채혈을 할 때, 귀를 뚫었을 때, 과로 후 긴장했을 때, 심지어 다른 사람이 흘린 흥건한 피를 목격했을 때도 그랬다.


대학생 시절, 건강상의 이유로 엄마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채혈을 해야 한다는 말에, 낙상 방지를 위해 누울 곳을 간호사분께 부탁드렸다. 나의 증상을 본 적 없던 엄마는 "정신력 문제야. 너 어렸을 땐 잘했잖아."라며 앉은 채 채혈을 받도록 권했다. 동행자가 있다는 생각에 괜찮을 것 같아서 채혈을 했지만 의식을 잃었다. 내가 눈을 떴을 때 엄마는 사색이 된 얼굴로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말만 반복했다. 엄마 말로는 채혈 직후 내 피부색은 시체처럼 창백해졌고, 온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고 했다.


이후 신경내과에 들러 상담을 받았을 때, 나는 '미주신경성 실신' 진단을 받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별다른 치료방법은 없었다. 단지 쇼크가 오는 상황을 이해하고 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하셨다. 그 뒤로는 늘 불안정한 자세로 주사를 맞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 간호사분께 누워서 맞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렇게 안정적인 자세로 주사를 맞거나 채혈을 하면 잠시 어지러운 정도였고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난임병원을 찾았을 당시, 처음에는 자연주기를 원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인공수정을 시도하게 되었을 때 나는 의사 선생님께 자가주사를 엎드리거나 누워서 맞을 수는 없는지 여쭤봤다. 아쉽게도 난임치료에 쓰이는 주사 특성상 그렇게 맞기는 어려웠다.


난임주사는 앉은 상태에서 배꼽 주변의 피하지방층에 주사를 놓아야 했는데, 뱃살을 움켜쥔 채 주사를 맞아야 한다. 한 번에 한 대를 맞는 날도 있었지만 여러대를 맞는 날도 있었다. 시험관을 시작하던 당시만 해도 내 몸무게는 40kg을 간신히 넘기는 상태였다. 그래서 앉아서 간호사분이 주사를 놓아주실 때마저도 뱃살이 잘 잡히지 않아 도와달라고 하셨고, 종종 긴 바늘의 주사를 맞을 경우 배 뒤편의 근육까지 바늘에 찔리는 통증이 느껴지기도 했다.



난임 주사 맞는 위치



'아휴, 힘들어서 못할 거예요.'


시험관을 시작하며 자가 주사를 병원에서 맞겠다고 했을 때, 담당 원장님은 고개를 저으셨다. 시험관 과정 동안 얼마나 많은 주사를 맞아야 하는지 아셨을 테니까. 그래서 남편에게 주사 맞는 방법을 알려주라고 하셨지만 내 선에서 거절했다. 혹시라도 실신을 했을 경우 병원에서는 집보다 빠른 대처가 가능할 것 같았다.


그 뒤 인공수정의 시작부터 시험관 채취를 하기 전까지 수개월 동안 나는 거의 매일 병원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많게는 한 주기에 20번이 넘게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자가주사를 주셨지만, 직접 주사를 놓을 자신이 없었다. 매번 방문하는 것이 힘들긴 했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 다니던 병원의 휴진일이 되면, 휴진일에도 주사를 놔줄 수 있는 병원을 알아본 뒤 찾아갔다.


다른 병원에서 주사를 맞기 위해서는 주사와 함께 '주사의뢰서'도 필요하다. 주사의뢰서를 들고 안내데스크에서 나의 사정에 대해 설명하고 차례를 기다리곤 했다. 주사를 맞기 위해 보통 난임치료를 병행하는 산부인과로 향했다. 하지만 산부인과 내에서도 근무자에 따라 난임 주사 놓는 법을 모르는 간호사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주사 놓는 법을 잘 숙지하고 있어야 세팅을 하고 주사를 맞을 수 있었다.


주사를 맞으러 병원을 다닐수록 비용도 더 추가됐다. 다니던 병원에서 주사를 맞을 때는 2,000원 선이었고, 다니지 않던 곳에서 주사를 맞을 때는 5~6,000원 정도가 들었다. 비용보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한 번 맞기 시작한 시간대에 일정하게 맞아야 해서 동일한 시간에 맞춰 방문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일반 진료에 비해 후 순위이다 보니 주사 맞는 차례를 기다리는 것도 힘들었다.


결과적으로 주사 중에 시험관 채취를 위해 맞아야 했던 트리거 주사**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더 이상 스스로 주사를 놓는 것을 미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 생체시계가 정해준 트리거 주사를 맞는 시간에 문을 열고, 정확한 시간에 주사를 놔주는 병원은 어디에도 없었다.


GPT 가 알려준 트리거 주사


한 달간 병원을 오가며 수십대의 주사를 맞아가며 얻어낸 기회를 그 한 번으로 인해 날릴 수는 없었다. 궁지에 몰린 나는 그렇게 자가 주사를 맞기 시작했다. 간호사분께 주사를 맞아도 실신을 항상 안 하는 것은 아니어서, 차차 집에서 주사 맞는 횟수를 늘려나갔다. 결국 시험관을 하려면 자가 주사는 피할 수 없는 숙제였다.

시험관 1차를 마무리한 뒤 일부 주사를 약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는 아쉽기도 했다. 매일같이 병원을 오갔던 몇 개월이 쉽진 않았으니까. 그래도 그렇게 대체할 수 있는 주사는 일부에 불과하고, 피하기만 했다면 결국 시험관 과정이 끝없는 장애물로 남았을 테니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겠지. (이렇게라도 정신승리를.) 그리고 이렇게 주사를 무서워하는 나도 시험관 시술을 하고 있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용기의 씨앗이 될 수 있기를.


우여곡절 끝에 이 기간을 통해 '자가 주사 놓는 법' 스킬을 획득하게 됐다. 이렇게 레벨업 하다 보면, 언젠가 '용감한 엄마'도 될 수 있을까?




꿀 TIP:
1) 주사 맞을 부위에 작은 아이스팩이나, 얼린 생수병 밑부분을 잠시 댄 뒤 주사를 맞으면 통증이 덜하다.
2) 나처럼 주사 바늘 자체를 무서워하는 경우 주사보조기를 활용할 수도 있다.
3) 주사의뢰서를 들고가도 병원 지침에 따라 타병원 주사를 맞을 수 없는 경우가 있으니, 방문 전 미리 전화로 사전 확인을 해야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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