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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라자일렌 Dec 19. 2021

왜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부인가?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종의 의지와 결혼식

 얼마 전 친구 결혼식에 갔는데 신부 입장 때 '오늘의 주인공인 신부...'로 시작하는 멘트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왜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부일까? 


 인간이라는 종의 관점에서 생각했을 때, 결혼식이라는 것은 한 쌍의 남녀가 서로하고만 재생산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의식이라 할 수 있다. 보다 적나라하게 말하면 한 개체의 유전자가 다른 특정 개체의 유전자하고만 자기복제를 실행하겠다고 선언하는 의식이다. 그런데 종의 의지의 관점에서 남성이 가진 재생산능력의 향방은 별 이슈가 못 된다. 필자는 남자인데, 필자 같은 평범남 수십 명이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비명횡사한들 종 차원에서 인간의 종보존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이재용이나 이병헌같은 알파메일이 밤일 몇 번 더 하면 해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반면 여자의 경우 제아무리 날고 기는 팜므파탈인들 재생산 횟수에 생물학적, 시간적 제약이 있다. 결론적으로, 여성은 평범녀이든 팜므파탈이든 인류라는 종 전체가 갖는 재생산능력에 대한 지분을 각자가 균일하고 대체불가능하게 나눠 갖는 반면, 남성에게는 그런 것 없다.


 그러므로 결혼식의 주인공이 신부인 것은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괴테는 신성로마제국의 멸망을 두고 '나의 마부가 언쟁을 벌이는 것보다 더 관심없는 일이다'라고 논평했는데, 종의 의지 입장에서 한 남자가 유부남이 되는 일 역시 마찬가지라 하겠다. 반면 한 여자가 유부녀가 되는 것은 인류 전체 재생산능력의 불가분하고 대체불가능한 한 부분의 향방이 반영구적으로 결정되는 중대한 사건이다. 신부가 결혼식의 주인공인 것은 수천년전 일군의 사악한 가부장주의자들이 기획한 세계구급 음모의 결과 혹은 여성들이 백마탄 왕자님이라는 고약한 판타지를 수천년동안 학습해 온 결과 둘 중 어느 것도 아니다. 그저 인간이 처한 생물학적, 진화론적 조건에 덧씌워진 사회적 관습이라는 이름의 외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외피를 걷어낸들 우리가 처한 실존적 조건은 변하지 않는다. 


 필자는 남녀관계에 있어 '남자다움'을 요구받고는 할 때 필자가 감내할 만한 수준의 것이라면 이와 같은 진화심리학적 합리화를 하곤 하는데, 생각보다 괜찮다. 4호선 모 역에서 시위를 하는 분들처럼 성역할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전위대의 일원이 될 배짱이 없다면 이와같은 합리화 회로를 열심히 돌리는 쪽이 정신건강에 여러모로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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