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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재 Sep 18. 2023

사사롭고도 위대한

    외부의 이야기를 더 알아보고 싶어서 기러기가족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봤다. 내 경험은 나만의 것이 아닐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 내가 미처 기억해내지 못 한 내 경험을 되찾고 싶었다. 2013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기러기가족은 115만 명에 달했다. 2023년인 현재는 그 수가 줄었지만 2008년에 멈췄던 내 논의는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었고 그해 전후로 한국인의 조기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희망적이었지만 한 편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당사자들은 이 분석들을 과연들 읽어봤을지, 이에 동의하는지, 위로를 받았을지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정작 우리집만 해도 그 시절에 우리가 받은 상처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대부분의 기러기가족들의 상처는 대단한 노력 없이는 자연스레 회복되지 않는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다시 한 번 이방인이 됐다. 학교에 재입학하기 위해 시험을 봤는데 한국의 교과과정 진도를 따라갈 수 없어 겨우 제 나이에 맞는 학년에 들어갔다. 친구들과 나는 입는 옷, 듣는 음악이 달랐고 청소년기에 그 기억은 조바심과 수치심, 그리고 내가 잠시나마 있던 곳에 대한 그리움이 됐다. 캐나다에서는 선생님께 혼날 때 눈을 보지 않아 더 큰 화를 불렀고 한국에서는 선생님의 평가 기준에 반박했다가 교무실에 불려갔다. 영어는 내 전리품 같은 것이었지만 그걸 남에게 보이면 아니꼬운 시선이 뒤따랐다. 영어 시험을 볼 때마다 마주했던 타인의 의아함, 약간의 질투, 재수없는 사람을 대할 때의 날 선 얼굴이 늘상 떠오른다. 그래서 조기유학을 다녀온 일은 어쩌다 한 번 말해야 할 때마다 무척이나 고민했다. 중산층의 철없는 넋두리로 보일까봐. 그리고 한국 사회의 예민한 부분들을 의도와 다르게 저격할까봐. 그럼에도 나는 이 이야기에 그 너머의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우리 가족은 떨어져 산 2년의 시간을 없는 셈 친다. 아빠가 보는 영상에 영어 음성이나 자막이 나올 때 가끔 유용하게 쓰이는 것 말고는 그 시기를 상기시키는 일은 거의 없거나 모른 체한다. 내 김밥을 친구가 먹다 뱉은 순간도, 오빠 반 학생들이 ‘집으로 가’라고 소리친 것도, 엄마 혼자 새 집을 찾아 부동산에 간 것도, 아빠가 나머지 가족들의 방이 있는 복도 쪽은 얼씬하지 않은 것도 전부 현재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조용한 과거가 된다. 조기유학 연구에 따르면 기러기가족은 자식의 교육수준에 대한 높은 기대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애초에 기러기가족이 된 것도 교육열 때문이다. 우리 가족 역시 2006년부터 두 해를 보낸 뒤, 태국과 캐나다에서 쟁취한 것들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그걸 쟁취하기까지 희생한 스스로와 서로에 대한 기대. 주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가 자리했다. 그리고 난 종종 그 기대를 저버렸고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내 행동은 배신으로 인식되곤 했다.


    특수교육을 위해 아이들을 해외에 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조기유학의 가장 큰 원인은 영어교육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그만큼 영어를 잘하는 게 한국에서 중요하다는 뜻일 테다. 난 그걸 주류 문화로 편입하고자 하는 변두리의 오기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영어는 해체되어야 하는 언어다. 주류 사회에 상처 받아가며 그 안으로 어떻게든 출입하기 위해 노력하며 산 사람들의 경험은 자주 소거된다. 주류 사회를 맛 봤다는 이유만으로 이에 대해 최대한 눈치보며 말하거나 끝까지 입을 다물길 기대받는다. 안 그러면 위선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큰 물이라 불리는 걸 경험해봤으니까. 그리고 그런 기회는 누구에게나 쉬이 주어지지 않으니까. 보는 관점에 따라 세상 물정 모르고 보호자 돈으로 호사를 누리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어린 나이에 이미 너무 많은 걸 경험해 본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오해와 진실의 혼합물로만 남지 않았다. 제3문화 사람이 되었고 영원히 두 개 이상의 세계를 바쁘게 넘어다니는, 그 사이에서 헤매는 어린 자아를 품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


    결국 조기유학의 결실은 영어 실력도 아니고 해외 경험도 아닌 소외감의 기억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방법에 있다. ‘마이너 필링스(소수적 감정)’를 늘 이고 살았던 나 같은 기러기가족은 시작이 어쨌든 끝엔 무력하게 해체될 수밖에 없던 경험을 통과했다. 그들의 삶은 해체된 결과인 ‘작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결국 기러기가족이 세상에게 듣고 싶고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야기일 테다. 큰 것을 부수는 이야기, 작은 것을 탐구해 그 안의 큰 의미를 발견하는 이야기. 즉, 자신의 삶을 다룬 이야기. 기러기들은 지금도 해체된 이야기의 조각들을 줍기 위해 날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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