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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재 Aug 25. 2023

멀리, 더 멀리

       “희재야, 이런 데서 공부하면 어떨 것 같아?”

     눈 앞 모니터에는 습해보이는 야자나무와 초록 정원, 한국의 학교의 회색 콘크리트, 옻칠 나무, 녹색 칠판과 달리 알록달록하면서도 웅장한 건물과 교실이 보였다. 내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학교 화장실에는 ‘ 박희재 바보’가 써있고 친구라고 생각했던 아이가 내 싸이월드 비밀 방명록에 욕설 한 마디 없이 내 흉을 보는 여기보단 화면 너머 어딘지도 모를 저곳이 나을 거라 생각했다.

     “좋아.”

     그 뒤로 엄마와 아빠는 평소보다 분주해 보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린 태국 방콕으로 향했다. 기내식에 곁들여 사이다를 마시고 싶어서 열심히 혀를 굴려 “ 싸이덜 플리즈”하고 주문했는데 화려한 보라색의 타이항공 승무원 유니폼을 입은 여자는 내게 칠성사이다, 스프라이트, 세븐업도 아닌, 애플사이다(cider)를 내주었다. 원어민 선생님이 있는 학원에 다니긴 했지만 11 살이 겨우 넘은 나는 학원 안에서든 밖에서든 영어라고는 내 이름만 겨우 말할 줄 알았다.

     알고보니 오빠의 영어 학습 부진 때문에 우린 도피성 유학을 결정한 거였다. 영미권에 가기엔 겁이 났기에 태국의 국제학교로 향했다. 후덥지근하고 생각보다 알록달록하지 않던 그 도시의 땅을 밟아서야 깨달았다. 이제는 정말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구나. 각자도생이구나. 내 옆에 있는 엄마도 오빠도 날 보호해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여기서 우린 밉보이기 십상인 소수다. 그들이 날 보호해주려고 하는 순간은 내게 짜증, 두려움, 긴장 그리고 수치심의 순간일 것임을 잘 알았다. 다만 나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걸 깨달을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내 곁을 지켜준 사람은 계속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 들어간 국제학교는 으리으리하고 비싸보였다. 어딜 가도 시원한 에어컨이 끊이지 않고 나왔으며 교실은 뛰어다닐 수 있게 컸고 더운 나라의 좋은 학교답게 근사한 수영장이 있었다. 영어라곤 내 이름만 말할 줄 아는 나는 감사와 미안함을 표현할 시점을 종종 놓쳐 꾸중을 듣기 일쑤였다. 엄마와 학교 교복을 사는데 단추 달린 바지와 편안한 고무줄 바지를 번갈아 입고 고무줄 바지를 선택하니 백인 직원이 “뚱뚱한 애들은 주로 이걸 사죠.”라고 들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내 언어에 확신이란 게 있을 리 만무했기에 내 귀에 박힌 fat 이라는 단어는 bat, fab, mad, pat 등 다른 음절로 대체되곤 했다. 그렇게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남자가 개던 고무줄 바지 가만히 바라보던 자신을 이미지로 기억할 수밖엔 없다.

     하루는 세상 속 미지의 생물체를 조사하는 숙제를 받았다. 어떻게 그 과제를 이해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네스호 괴물 네시를 골랐다. 완성한 숙제를 프린트해서 가져간 날, 모두의 종이는 교실 한 켠에 걸렸다. 다른 학생들의 과제를 보러 벽에 다가갔다. 키가 나의 머리 두 개쯤은 크고 그을린 피부에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을 것 같은 팔다리를 가진 일본계 여자애는 친구 무리 서너 명과 벽에 걸린 내 종이를 팔짱 끼고 보면서 쯧쯧 혀 차는 소리를 내며 내 언어가 도저히 이해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6 개월 남짓한 시간을 방콕의 푹푹 찌는 더위와 함께 하고 한국에 돌아와 머리를 다듬은 뒤 코 시리게 추운 캐나다 밴쿠버 섬 옆 작은 섬의 퀄리컴 시티로 갔다. 태국에 있는 시간이 생각만큼 값지지 않다는 엄마의 판단으로 결정된 변화였다. 만성 비염을 달고 살던 나는 천엽수림과 쏟아지는 별을 올려다보는 동시에 코가 뻥 뚫렸다. 퀄리컴 시티에는 엄마의 옛친구가 살고 있었다. 엄마는 태국을 떠나기로 결심하고는 바로 싸이월드를 통해 그에게 연락했다. 옆동네의 지명이 나나이모(Nanaimo)였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장난스레 그리고 자연스레 나나이모라고 불렀다.

     도착한 다음 날 옷장에서 가장 예쁜 미키마우스 옷을 입고 빨간 뿔테 안경을 쓰고 엄마가 둔기같이 튼튼한 도시락 통에 싸준 볶음밥을 들고 학교에 갔다. 학교까지 가는 차 안에서 나나이모는 ‘나 괴롭히지 마’ 같은 문장을 영어로 알려줬다. 아무 생각 없던 나는 긴장해야 하는 건지 맘을 놓고 있어도 되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채로 학교에 도착했다. 방콕에서 굴하지 않는 자세로 최대한 뱉고 주워들은 덕분에 내 영어는 전보다 나았다. 문제는 외부에 있었다. 날 보는 30 명 남짓의 백인과 한 명의 아시아인에 얼었다. 그리고 기대와 달리 누구도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됐고 그때부터 난 2 년 동안 음식과 싸우게 됐다. 피넛버터 젤리 샌드위치와 버터향 가득한 팝콘, 사과와 바나나 속에서 난 본능적으로 점심을 잊은 척했다. 엄마가 싸준 따뜻한 보온 도시락에 든 볶음밥은 학교가 끝나는 시간까지 그대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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