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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재 Aug 25. 2023

아우라의 정체

     퀄리컴 비치에서는 찾을 수 없는 마린블루스 샤프에 2B 샤프심을 넣어 슥슥 밑그림을 그린다. 그 위는 검정색 얇은 샤피(sharpie) 펜으로 선을 딴다. 방콕에서부터 고이 들고 온 철제 케이스에 담긴 파버 카스텔을 조막만한 손으로 꼬옥 쥐고 선울 긋는다. 빈 곳을 채우며 색연필이 안으로 향할 때 손에 힘을 스르르 푼다. 가장 안쪽은 종이의 흰색으로 남겨둔다. 그러면 나의 전매특허 그라데이션이 완성된다. 검은 샤피의 영역을 침범한 색연필을 다시 한번 샤피로 덧칠해 감싸준다.

     그림 그리는 건 내 장기였다. 이 장기는 내 몇 안 되는 생존전략 중 하나였다. 학교에서 돌아가면 책을 읽을 때 내가 읽을 수 있는 부분을 집에서 맹렬히 연습해 가고, 수업 중에 손을 들어 소리 내 읽지만, 두 줄도 채 읽지 않았을 즘 선생님이 읽기를 중단시키는 일이나 친구와 대화하다 부적절한 단어를 사용하고 그걸 선생님께 들켜 교실 밖으로 불려 나가 혼나는 일과 가장 먼 행동. 내가 나다워도 핀잔 사지 않고 오히려 빛날 수 있는 순간은 연필심이 종이 위를 춤추게 놔두는 때였다.

     그 순간만큼은 난 모든 주도권을 쥐었다. 반 아이들은 종종 내게 초상화를 그려주길 요청했다. 내가 싫어하는 클로이 P가 자신도 그림을 그려달라며 다가와 어색하고 꼿꼿한 포즈를 취할 때 난 그의 각진 턱만 강조한 밑그림을 대충 그리고 딴청을 피워 그 아이가 내게 보인 그간의 태도에 복수한다. 동경하는 클로이 K의 그림은 요청하지 않아도 그 아이가 그림을 접어 보관하든 잃어버리든 최선을 다해 채색까지 한 뒤 선물한다.

     과목마다 첫 시간에는 바인더 제일 앞장을 꾸미는 시간을 갖는다. 사회면 사회, 수학이면 수학. 나는 테마에 맞춰 그 과목 수업 시간보다 열심히 밑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해 자랑스럽게 선생님에게 가져가 바인더용 구멍을 뚫는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에겐 어떤 아우라가 흘렀을 것이다. 자랑스럽고 으스대고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고 내 존재 의미를 확인하는 아우라가.

     그럼에도 가끔은 그림 그리는 일이 나의 거의 유일한 장기라는 사실이 슬펐다. 내가 가진 특별함이라곤 내 국적밖에 없는 것 같을 때와 같이, 내가 으스댈 수 있는 순간이 언어와 관련 없는 일이라는 사실에 서글퍼졌다. 결국 난 영어를 잘하려고 한국을 떠났으니까. 언어로 나를 증명할 수 없다면 무엇도 소용없는 일 같았다.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수업을 듣는 동안에 따로 순수미술 수업에 참여했다. 우리 반에서는 나와 이바가 뽑혔다. 당시 나는 내가 이바보다 그림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실이 이바의 자신감을 더 높여준 것 같았다. 이바는 감정을 숨길 줄 모르는 아이였다. 반을 등지고 1층 미술실로 향할 때 그 아이의 주변에는 익숙한 아우라가 생겼다. 그 아우라가 거슬린 이유는 내가 그림 그릴 때 내 주변을 감싸던 그 아우라와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아이들도 내 젠체를 알아차렸을 걸 생각하니 머리털이 삐쭉 섰다.

     하루는 수업 중에 자유에 관해 토론했다. 우리가 아는 자유를 얘기할 때 이바는 표현의 자유(freedom of speech)를 발표하고 또 한 번 우쭐대는 아우라를 입었다. 말(talk)할 자유가 아닌 표현(speech)의 자유라는 고급 어휘를 썼기 때문일 테다. 이바가 텁텁한 교실 공기를 으스대는 기운으로 바꿔놓은 순간은 내가 수업 중에 한 수도 게임에서 당시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행하던 수도 게임 덕분에 알게 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외쳤을 때의 확신 없음의 공기와는 사뭇 달랐다. 구태여 R 발음을 강조할 게 아니라 부-에-노-스 아-이-레-스라고 말하는 게 원발음에 가깝다는 사실은 스페인어를 배우고서야 알았다.

     언어로 한 건 해내고 싶어 원어에서 멀어지면서까지 혀를 굴리는 나는 또래보다 조금 수준 있는 어휘를 쓰고 자랑스러워하는 이바를 보며 언어란 사실 그리 대단치 않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다른 아이들과 인종이 달랐던 나는 그 안에서 나만의 장기로 튀기 위해 노력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 여겼다. 나 말고 다른 애들이 그런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 자체로 빛나고 싶었다. 별다른 노력 없이, 우아하게.

     그래서 난 이바를 보며 위안받고 안심했다. 그 애를 보면서 결국 우리는 각자 타고난 것, 노력한 것, 그리고 아주 많은 찰나의 순간이 선사하는 운과 타이밍에 기대 생존전략을 꾸리며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손끝으로 나만 알아볼 완벽한 그라데이션을 그리던 나도. 주목받는 순간의 긴장과 뿌듯함을 감추지 않았던 이바도. 다른 애들보다 우리가 나은 순간을 매섭게도 찾아 헤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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