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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재 Aug 25. 2023

밥 아저씨의 식탁

     밥(Bob) 아저씨 가족과는 나나이모와의 인연으로 왕래하며 지냈다. 밥 아저씨는 초등학교 선생님, 데비 아주머니는 편지지를 근사하게 만드는 내 인생 처음으로 만난 어른 쌍둥이. 큰아들 스캇은 나와 오빠의 과외 선생님으로 대학에 진학하기 직전이었고 둘째 제레미는 홈스쿨링하는 신사, 막내 조쉬는 말수는 적지만 친절한 고등학생이었다. 밥 아저씨네 집에 가면 골든리트리버 벨과 턱시도 고양이 스팟의 고소한 털 냄새가 우릴 반겼다.

     이전에도 동양인 여학생의 홈스테이 호스트 경험이 있던 밥 아저씨 가족은 언제나 우릴 편견 없이 대하면서도 새로운 경험을 나누길 잊지 않았다. 스캇 대신 밥 아저씨와 과외를 한 날, 그는 내게 bitch와 beach의 발음이 어떻게 다른지 알려주었다. 그 덕분에 여러 망신을 미리 예방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할로윈 날, 내 인생 처음으로 간 집마다 다니며 간식을 받는 트릭 오어 트릿을 데비 아주머니와 함께했다. 그날 저녁에 나와 오빠는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모은 과자를 한데 모아 사진으로 남기고 야금야금 먹어치웠다. 한국에 돌아간 뒤 국제 우편을 받고 보내는 일도, 그 편지를 정성스레 꾸미는 일도 데비 아주머니 덕분에 처음 해보았다. 내가 대학생이 될 무렵부터 부친 편지에 대한 답장은 다시 오지 않았지만.

     난 밥을 너무 안 먹거나 너무 많이 먹었다. 한 번은 밥 아저씨네서 식사를 하게 됐는데 음식을 건들지 않는 나를 보며 아저씨는 스무고개를 시작했다. 배가 부르니? 음식이 맘에 안 드니? 속이 불편하니? 자신 있게 모두 아니라고 대답하다 밥 아저씨는 허를 찌르는 질문을 했다.

     “희재, 먹을 때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것 같니?”

     11살 무렵부터 나는 힘든 일이든 기쁜 일이든 내 인생의 변화를 음식으로 스스로를 벌하거나 상 줬다. 내 안의 큰 구멍을 달거나 짠 음식으로 끝없이 밀어넣어 채우려 했다. 먹는 행위는 점차 남에게 들켜서는 안되는 행위로 바뀌었다. 비밀스럽고 부끄러운 일. 처음에는 식사 외에 음식을 먹으면 사람들이 내 외관의 이유를 찾아내버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 생각은 시간이 지나 식사에도 해당됐다. 입에 뭔가를 집어 넣는 모습만으로 내 모든 나쁜 습관, 취약성, 약점, 불안이 들통날 것만 같았다. 스캇, 제레미, 조쉬 삼형제는 함께 외식을 할 때면 희재는 새 모이만큼 먹는다며 장난과 함께 날 걱정했다. 그러면 나는 내 모든 비밀을 들킨 것처럼 어쩔 줄 몰라 했다.

     학교에서 나와 비슷한 상태인 아이들을 여럿 봐왔을까. 밥 아저씨는 그렇게 내 마음을 잘 알았다. 허를 찌르는 질문 뒤에 밥 아저씨는 어떤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더 이상 말을 걸면 내가 울어버릴 걸 이미 알기라도 한 듯. 그렇게 난 꽉 찬 식탁에서 혼자 내 상태에 대해 가만히 생각했다.

     밥 아저씨네에 갈 때면 내 외모는 중요하지 않았다. 제시간에 내가 괜찮을 만큼 먹는 것.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의 전부였다. 덕분에 밥 아저씨 집에서 난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느껴보는 일을 연습했다. 내가 얼만큼 먹든, 먹지 않든, 나를 나 자체로 바라봐 주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게 어떤 느낌인지. 그렇게 스스로를 온전히 바라보는 건 어떤 느낌인지.

     식이장애가 단번에 해결되진 않았다. 다만 밥 아저씨네 집은 안전한 공간이 되었다. 그해 가을 우리는 마당에서 캠프파이어를 했다. 그날 나는 부끄럼 없이, 무언갈 채우려는 의도 없이 내 인생 첫 스모어를 세 개씩 먹었다. 난 눈을 크게 뜬 채로 부드럽고 따뜻하고 미끈거리고 바삭한 그 맛을 충분히 음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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