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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재 Aug 25. 2023

캠프에서 있었던 일

    여름방학이 찾아오고 오빠와 나는 YMCA 여름 캠프로 떠났다. 출발하기 2주 전부터 우리는 침낭, 가방, 식기 같은 캠핑용품을 사들였고 몸만한 짐을 쌌다. 출발하는 날, 엄마는 약도 하나만 보고 굽이굽이 숲길을 넘어 우리를 캠프장으로 데려다 주었다.

     캠프에 도착해서 우리는 미리 지정된 반을 찾아갔다. 20대 초중반처럼 보이는 선생님 두 명과 함께 2주 동안 생활할 아이들 열 명 정도. 그 아이들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얼굴은 선명하다. 긴, 불그스름한 갈색 머리에 나뭇잎과 온갖 먼지를 붙이고 다니던 아이, 학교에 갈 때 여분의 옷을 챙겨가 하루에 의상을 세 번 갈아입는다는 언니. 그리고 내 머리끈 훔친 뒤 자기 것이라 거짓말하고 내가 보는 앞에서 선생님의 손을 빌려 내 빨간 리바이스 티셔츠 택을 허락도 없이 떼어버리던 아이. 그 아이와는 2주 동안 서로를 열렬히 미워하던 사이였는데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캠프에서의 2주 동안 아이들은 소포를 받는다. 그리운 가족들이 보내는 선물과 편지가 주로 그것이다. 소포가 오는 날은 저 소포가 과연 누구 것일지 기대하는 긴장감, 집을 그리워하는 향수, 소포 크기와 내용물에 따른 질투 같은 게 공존한다. 난 집에서 소포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고 엄마도 그걸 알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긴장감이고 향수고 질투고 느낄 생각도 하지 않고 소포가 전달되는 시간을 없는 셈쳤다.

     하루는 제법 큰 소포가 왔고 아직 내가 미워하고 날 미워하던 그 아이는 아직 소포를 받은 적 없기에 그 순간을 무척이나 기다리는 상태였다. 이미 자신의 소포라고 상정하고 잔뜩 신나하는 모습을 보며 꼴사나워하고 있는 와중에 그 소포는 내 앞으로 전달됐다. 당황스럽고 기쁘고 약간 고소했다.

     내 앞으로 온 건 밥 아저씨와 데비 아주머니가 보낸 민트 사탕과 강아지가 그려진 갈색 양말. 그리고 엄마의 편지. 매운 걸 못 먹는 나는 화한 맛이 강력한 민트 사탕을 입 안에 굴리며 엄마의 편지를 읽었다. 그리고 조용히 캠프 오두막 밖으로 나와 엄마의 편지를 읽고 눈물을 삼켰다. 박하의 매운 맛보다 엄마의 읽기 어려운 글씨와 편지를 쓰지 않는 엄마가 들였을 노력에 눈물이 졸졸 났다.

     나는 엄마가 써준 편지를 다시 읽을 수 없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중, 나의 조기유학 기간 동안 함께한 커다란 바인더에 모아온 다른 편지와 그림, 스티커 같은 것들과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 내 유학생활이 손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머리칼을 가르는 바람처럼 내게 남은 탓에 난 그 시절을 뭉텅이 째 곱씹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내가 받은 게 무엇인지, 내가 준 건 무엇인지 끊임없이 옅은 기억을 뒤져보는 것이다. 작은 모래 한 알, 바람 한 결을 소중히 여기면서.

     캠프에 도착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투표에 따라 조의 반장을 정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나는 열 몇 명의 이곳 출신 아이들 사이에서 유일한 아시안인 나와 밴쿠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던 첼시가 후보에 올랐다. 최종 투표에서 결국 난 2등으로 밀려났고 속으로 날 미워하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아이를 탓하기도 전에 내 인종을 탓했다. 내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서겠지. 아마 내 생김새가 저들에게 낯설겠지.

     내게 소외감은 그런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일들, 아까울만큼 가깝게 느껴지는 성취가 곁에 있어도 소외의 순간의 아찔함, 먹먹함, 서러움의 잔상이 더 오래 남는 일. 성취가 아무리 커도 소속감의 달콤함에 비하면 매운 박하사탕 같은 것. 그리고 내가 느끼는 감정은 말하기에 너무 사사로운, 이른바 ‘마이너 필링스’가 된다.

     캠프에서 내가 쥐고 온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가사와 음을 몇 번이고 되내며 집에 돌아오자마자 검색해 MP3플레이어에 고이 담아둔 이름 모를 음악. 만들기 시간에 몰래 훔친 나이테가 선명한 작은 나무 조각.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의심. 오두막 친구들의 연락처. 첼시와 나는 몇 번의 메신저를 주고 받다 더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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