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희재 Sep 25. 2023

다시 밖으로

    타고난 천성과 조기유학의 결과로 나는 혼자서 뭔가 하길 두려워하지 않는, 하지만 외로움은 잘 타는 사람으로 컸다. 그리고 우울은 늘 나를 따라다녔다. 사회학과 이기홍 교수의 2004년 연구에 의하면 조기유학생들은 같은 또래의 이민자 자녀들에 비해 우울증의 평균 수치는 23%, 자살 관념의 평균 수치는 90%가 높았다. 나 역시 더운 나라에서든 추운 나라에서든 어린 나이부터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벗어나기 힘든 감각을 익히며 자랐다. 그리고 역시나 천성과 조기유학의 결과로 나는 이중적 의식을 습관화했다. 타인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일. 나의 바깥에 위치해 누구의 시선인지도 모를 제3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버릇이 잔존한다. 언제 배제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좋아보이는 곳으로 최대한 자연스레 편입하고자 나를 버리면서까지 무리하는 내 모습은 전혀 특별하지 않다.

    스무살이 넘어 다시금 한국 밖으로 나가 넓은 곳을 탐험을 하고 싶었다. 해외에 나간다고 눈에 띄게 큰 변화가 생길 거라는 낭만에 찬 기대감은 없었지만 한국은 내게, 내 친구들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불친절했다. 학교 동기들처럼 나도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별 걱정없이 신청하고 싶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깊어지는 우울과 트라우마가 된 조기유학의 기억이 그걸 저해했다. 하루는 원어민 교수와 회화 시험이 있었다. 교환학생 갈 생각은 없냐는 교수의 질문에 어릴 적 경험과 내 망설임을 표현했다.

    “희재, 그때의 너와 지금의 너는 다른 사람이야. 그때의 경험으로 모든 걸 속단하지마.”

    당시 난 교수가 얄미웠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경험이 현재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속단하는 건 그쪽일 텐데,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삶을 유예했다. 더이상 우울하지 않을 때, 다시 기꺼이 소외와 배제의 상황으로 제 발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갈 수 있을 때 떠나자고.


    나는 종종 삶을 유예했다. 가장 완벽한 버전의 나를 상상하고 그 이상향에 부합하기 전까지는 모든 게 연습게임인 것처럼 대했다. 본게임은 내가 가장 유능하고 밝고 아름다울 때 시작되어야 할 것 같았다. 그 전에 일어나는 일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랬더니 사는 게 불행했다. 닿을 수 없는 목표물을 향해 제자리에서 뜀박질을 하는 기분을 달고 살았다. 유예하지 않기를, 지금을 사는 법을 연습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내가 어떤 시점에 있든 상관없이 현재의 나를 직면할 때만 실현 가능했다. 가장 못난 모습의 나 역시도 포용할 때 비로소 현재를 살아낼 수 있었다. 마음껏 실수하고 넘어질 발판을 마련하는 건 내 몫이었다.


    현재를 사는 법을 연습하기 시작한 뒤로 두 차례에 걸쳐 바다를 건넜다. 대학교 4학년, 학교 행정을 따르느라 1학기를 반납하고 스페인으로 교환학생을 떠났고 3개월만에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게 중단됐다. 그리고 1년 동안 가까스로 학교를 졸업하고 코로나가 잠잠해질 차에 다시 스페인으로, 이번엔 대학원으로 떠났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현재의 나를 대하는 태도는 바뀌었다. 해외에 나와서는 공부를 더 잘함으로써 소외감을 극복하려고도 하고, 억지로 맞지 않는 퍼즐을 끼우듯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언어 공부를 우선으로 둬 한국인을 투명인간 취급하기도 하고 사무치는 외로움에 일부러 찾아다니기도 했다. 안전지대(comfort zone)의 범위를 끊임없이 설정했다. 범위의 경계선을 긋고 지우길 반복하며 내가 누군지, 난 어떤 상황에서 취약해지고 어떨 때 어깨가 올라가는지 탐험했다.

    특히 난 여럿이 모여있을 때 주눅들었다. 사람들이 내가 알아듣기 어려운 말로 중요해보이거나 우스운 얘기를 주고 받을 때, 그리고 거기에 동조해야 할지 판단이 서기도 전에 먼저 끄덕임이나 웃음으로 반응해버리고 마는 나를 마주할 때 가장 약해졌다. 그럼에도 난 끊임없이 그 어지러움 속으로 스스로를 이끈다. 주변이 시끌거릴 때 고요를 맞이한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찾는다. 내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려는지. 왜 어떤 상황은 못 견디고 또 무엇 때문에 그 상황에 날 데려다 놓는지. 그렇게 마주한 진짜 자신을 직면하는 법을 이제는 안다. 한국계 미국인의 정체성은 연구한 키브리아의 말마따나 “영원한 외국인”, “동화될 수 없는 이방인”으로만 남지 않는, 그리고 남지 않을 나를 발굴한다. 그렇게 발굴한 나는 여전히 외로움이 많고 이따금씩 우울하지만 그걸 견딜만큼 강하고, 사랑을 주고 받을 줄 알고, 모험심이 강하다. 호기심 때문에 다치기도 하면서 시야를 넓히고 세상에서 내 역할은 뭔지 계속 질문해 나가는 사람이다.

    원어민 교수 말이 어느 정도 맞았다. 내가 속단한 건 나 자신 아니었을까. 내가 가장 만만하게 본 것도, 가장 두려워 한 것도 스스로였다. 기러기를 가둔 새장을 내 힘으로 열기로 했다.

이전 09화 직소퍼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