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희재 Aug 25. 2023

브레드위너

    식탁 위 반찬이 바뀌는 걸 볼 때마다 나는 상상한다. 만약 아버지가 더이상 돈을 부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죽으란 법은 없다지만 숨을 멈추는 것만 죽음이 아니다. 이 땅에서 어머니는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 어떻게 삶을 영위하고 아직 어린 자식들을 키워낼 수 있을까. 내가 지내는 이 곳에서 한 집의 가장을 일컫는 다른 말은 ‘브레드위너 (breadwinner)’다. 이겨서 빵을 얻는 자. 식탁에 밥을 놓는 자. 밥을 지을 돈을 벌어오는 자. 결국 이겨야 하는데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이겨 본 적은 언제였을까. 어머니조차 그 때를 기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린 학업을 목적으로 조기 유학을 온 세 식구다. 나머지 식구 한 명은 한국 집에서 피자를 시켜 먹는다. 이 곳의 우린 주말에 시내까지 차를, 시내 밖으로 배를 타고 나가 아시안 마트에서 사온 음식과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주말을 보내고 주중의 피곤함을 달랜다. 우리끼리 어려움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았다는 걸 어쩌다 들켰을까. 만약 아버지가 우리에게 등을 돌린다면 그땐 어떻게 될까. 난 아버지와 통화를 하지 않으니 멋대로 상상해본다. 어머니가 아버지와의 통화를 마치고 눈물을 훔치며 우울증 약을 털어 넣는 걸 봤지만 못 본 체 한 것도 지난 겨울의 일이다.

     대학까지 나온 성인인 어머니는 사회에 나가 돈을 벌 능력이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중년, 여성, 이주민의 꼬리표가 붙을 때 내 시야는 혼탁해진다. 나는 그 뿌연 갑갑함의 원인을 어찌할 줄 모른다. 우리 모두의 운명이 한 사람의 능력에 달려있다는 사실이 날 무력하게 만든다. 내가 여기 온 목적을 수행하지 못 한다면 존재 가치가 없어질 것만 같았다. 내 위치 자체가 어떤 목적성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학교에서 문제없이 친구를 사귀지 못 하면, 주말마다 새벽같이 산과 바다를 건너 데려다 놓은 토플학원에서 잠시라도 존다면, 너무 많이 먹거나 너무 적게 먹어 누군가에게 걱정을 끼친다면, 나의 힘듦을 내색하면 내 존재가 어디론가 밀려버릴 것 같았다. 밀려나도 자유롭지 않은, 관심의 뒷켠에서 집중적으로 소외받는 자리에 위치할 것 같은 불안을 달고 다녔다.

     그래서 난 머리가 조금은 자란 채로 한국에 돌아갔을 때 어처구니가 없었다. 수많은 기러기가족 안에서 주목 받는 건 기러기아빠. 홀로 남은 아버지의 모습을 인간 ATM기기에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고 다니는 불쌍한 존재로 그리고 있는 미디어를 마주하고 충격 받았다. 여기 이 기러기딸에게 아버지는 ATM기기가 아닌 돈을 보내줄지 안 보내줄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사람이었고 그가 원망이나 설움을 품고 있다면 그걸 기대로 환원시켜 좁은 어깨 양쪽에 이고 다녔으니까.

     두려움과 막막함, 슬픔과 피로 같은 것들이 한 데 고여 목이 막히는 걸 억지로 삼켜내야 하는 밥상이 이어진 지 몇 주가 지났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다시 한 번 땅과 물을 건너 아시안 마트에 가기로 한다. 나는 조금 울적하다. 눈물 젖은 가나파이를 먹어본 적 있는가. 그것은 열 살이 조금 넘은 나이에 불안과 위계란 무엇인지 온 몸으로 체감하고 기분 나쁜 안락함을 누리며 쥔 컴포트푸드*. 팜유로 만든 미끌거리고 좀처럼 녹지 않는 인공적인 카카오 맛이다.

*슬프거나 아플 때 찾는, 기쁨과 안정을 주는 음식

     시간이 지나 아버지가 휴가 차 우리에게 왔다. 그렇게 네 식구가 한 자리에 모였다. 긴장과 불안의 시간이 불쑥불쑥 자리를 차지하지만 우린 그것을 자연스레 없는 척하며 카메라 앞에서 단란한 포즈를 취한다. 그날 저녁 메뉴는 햄버거였다. 주문은 내 몫이었다.

     유학을 온 지도 벌써 2년 반이 지났는데 점원의 말이 너무 빠르게 느껴지는 건 나에게도 참으로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난 이미 토플 80점에 원어민 단짝 친구를 웃기고 부당한 일에 화를 낼 정도로 이 언어에 능숙했다.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점원은 인상을 구겼고 내 뒤에 선 아버지는 대답 안 하고 뭐하는 거냐며 황당하다는 듯한 얼굴이다. 얼어 붙은 날 제치고 아버지는 주문을 대신했다. 점원의 질문이 뭐였는지는 여전히 기억나지 않는다.

     “돈지랄했네.”

     연거푸 담배를 피는 아버지를 차창 너머로 바라보며 눈물이 고여 사위가 뿌얘진다. 아버지가 이겨 얻은 빵엔 곰팡이가 펴서 그 빵을 꾸역꾸역 먹다보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이전 03화 김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