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처음 만난 사람과는 친밀감을 쌓고 이미 알고 지낸 사람과는 좀 더 깊은 관계로 가도록 도와주는 질문들이 적힌 카드게임을 구매했었다. 한동안 나는 어딜 가든 그 카드 더미를 갖고 다니며 시도때도 없이 사람들에게 질문을 쏟아내곤 했다. 예컨데 이런 질문들이 있었다. ‘당신의 어머니는 어떤 사람인가요? 그의 어떤 점을 존경하나요?’, ‘나에게 최고의 하루는 어떤 모습인가요?’, ‘사랑을 받는 것과 주는 것 중 어느 게 더 쉽나요?’ 그리고 꽤 무거운, 이런 질문도 있다. ‘당신이 죽은 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이 질문을 받은 사람은 늘 긴 침묵에 잠겼다. 아마 이전에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이라 마음을 정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을 테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현재 나는 어떤 사람인지, 주변에 어떤 사람으로 비춰지고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내가 떠날 때 누가 내 곁에 남을지 같은 것들을 가늠해야 한다. 쉽지 않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재밌는 사람, 다정한 사람 등 여러 답이 나왔다. 나는 끝내 답하길 머뭇거렸다.
스티브 비숍의 작품 <당신을 기억할 무언가>는 올해 일민미술관에서 <포에버리즘> 전시의 일부로 참여했다. 전시실 한 쪽으로 들어서면 한 벽면을 채운 팬트리, 새해를 축하하는 ‘Happy New Year’가 적힌 채 네모 반듯하게 잘린 사각형 케이크, 보관할 건지 나눠줄 건지 알 수 없는 보관용기 속 케이크 조각들, 그리고 무심하고도 애절한 재즈음악이 공간을 차지한다. 여백의 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다.
방에 들어서서 나는 눈물이 날 것 같고 공허하면서도 충만한 오묘한 감정을 느꼈다. 신기한 울림이 있는 작품이었다. 이건 누군가의 환영 파티가 끝난 자리일까. 그렇기엔 공간이 너무 깨끗해서 텅 빈 것 같다. 이 공간에 정말 나와 내 외로움만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모두를 뒤로하고 떠나온 자리인지 누군가가 나를 떠난 후 내가 남은 자리인지 헷갈린다. 어떤 장면이 앞뒤로 이어졌고 이어질지 상상하다 나는 음악소리에 귀기울이며 다시 내가 서있는 상아색 방으로 돌아온다.
얼마 전,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를 처음 봤다. 공상만 하느라 현실의 순간을 자주 놓치던 월터는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드디어 상상 이상의 현실을 살고 순간에 머무는 연습을 한다. 비숍의 작품은 내가 기억할 게 무엇인지가 아닌, 날 기억할 무언가를 이야기한다. 물건은 썩기 마련. 욕심일지라도 나는 타인이 순간으로 날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살아있을 때 물질 밖에서 좋은 순간을 나누고 또 그런 순간이 찾아올 때 잠시 날 기억해주길. 그리고 나와 함께 했던 과거에서 얼른 벗어나 다시 그 순간을 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