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겪은 출산 경험은 다음 기회에 나누기로 하고 오늘은 산후조리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 한다. 이곳 방법들이 다 좋은 건 아니겠지만 한국에서 오랜 세월 금기로 여겼던 것들이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기도 해서 정리해보고 싶다.
아기를 낳기 전, 주변 한국 여인들에게서 들은 낭설 편견 혹은 조언들을 보면,
1. 호주 여자들은 애 낳고 바로 샤워실에 달려가는데 절대 그러지 마라.
2. 호주 병원에서는 산모에게 샌드위치 사과 아이스크림 등을 식사로 주는데, 수유하고 싶으면 미역국을 내내 먹어라.
3. 동양 여자들은 신체 구조적 혹은 체력적으로 달라 호주 여자 흉내 내다간 작살 난다. 꼭 전통 한국식으로 조리하라 등등이었다.
이런 우려들을 일부러 안 들은 것은 아니고 타지에서 상황에 맞춰 되는대로 하다 보니 딱히 지키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경험에 따른 그 결과들을 하나씩 짚어보겠다.
1. 샤워
수술을 마친 뒤 회복실에서 잠시 머문 뒤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자연분만을 했더라면 그날부터 움직일 수 있다고 들었는데 난 이틀간은 침대에 꼭 누워 있어야 했다. 여러 의료 기계들이 나를 칭칭 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기를 낳고 나면 '아! 10 달 동안의 내 일은 끝났구나, 좀 쉬어야지' 하고 늘어질 줄 알았는데, 모든 일은 이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수시로 아기도 울고, 초유도 짜야하고, 젖이 잘 불면서 몸살이 나지 않도록 준비도 해야 하고, 또 수술 자리도 살피고 회복도 해야 했다. 미드와이프 (산과 전문 간호사)들이 수시로 병실에 들러 친정 엄마 이상으로 세심하게 돌보며 전문가로서 도움을 많이 줬다. 다른 산모들도 별다른 보호자 없이 미드와이프의 도움을 받으며 회복 중이라 나도 타국에서의 홀 출산에 대한 외로움이 덜했다. (호주의 모든 병원 입원실엔 보호자가 없다. 환자와 의료진만 있을 뿐이다. 물론 어린이들은 예외)
첫날밤 좀 자려는데 미드와이프가 목욕을 하란다. 하루 정도 안 해도 그만이고 오후에 수술도 했는데 무슨 목욕인가 싶었다. 뜨거운 수건을 가져와 아직 마취도 안 풀린 내 몸을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어 다 닦더니, 심지어 몸을 반을 일으켜 세워 양치까지 시켜줬다. 헉... 대단한 서비스... 좀 힘들었지만 씻고 나니 개운했다.
이틀째 되는 날은 소변을 뽑느라고 연결했던 호스를 제거했으니 직접 침대에서 내려와 욕실에 가서 씻으란다. 나 샤워 하루 안 해도 정말 괜찮은데... 이번에는 병실 안의 욕실에 의자를 놔주었다.(서 있을 수가 없으므로) 그 의자까지 부축을 받고 간 뒤 앉아서 샤워를 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미드와이프가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서 씻어야 하나 생각을 하며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는데, 하고 나면 너무너무 개운하고 땀도 쭉 빠지는 것이 회복에 아주 많이 도움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산모가 목욕을 하면 큰일 나는 줄 아는데, 매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주 하는 게 좋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그냥 찬바람만 쐬지 않으면서 따뜻한 물로 꼭 샤워하라고 권하고 싶다. 한여름에도 진땀 뻘뻘 흘리면서 며칠씩 머리도 안 감고 쉰내 풍기면서 누워 있는 건 매우 비위생적이고 혈액순환에도 안 좋고 기분도 찜찜하지 않은가...
2. 음식
일단, 병원에서는 매 끼니마다 3-4가지의 메뉴를 준비하고 하루 전에 주문하도록 하는데, 점심땐 그 메뉴 중에 샌드위치도 있다. 그걸 먹는 산모도 있을 것이다. 햄과 치즈 신선한 야채 등 온갖 영양 있는 재료들을 맛있는 빵에 끼워 먹으니 그걸 먹어도 좋다. 난 대체로 따뜻한 음식들을 시켜 먹었는데 메뉴들은 대체로 영양가가 있는 일반 음식들이었고 다양했다. 파스타, 스테이크(이것도 치아에 안 좋다고 먹지 말라는 사람도 있었다. 질기지 않으면 그만이지), 호박 수프 등 대체로의 음식을 맛있게 잘 먹었다. 이곳에선 임산부나 산모가 먹어야 할 혹은 먹지 말아야 할 특별한 음식이란 게 전혀 없다. 그저 수유를 위해서 물 종류 우유 주스 등을 많이 마시라고 권장할 뿐이다. 다행히 주변분들이 미역국도 끓여주고 해서 퇴원 후 꽤 먹긴 했지만, 한식이든 양식이든 일식이든 중식이든 평소 먹던 대로 균형 잡힌 식사를 하면 그만이다. 또 수유를 하다 보면 목도 많이 마르고 배도 쉬 고픈데, 그때 몸이 요구하는대로 해주면 된다. 미역국만 질리도록 먹거나, 날도 더운데 뜨거운 음식만 먹을 이유는 없다.
3. 신체구조 혹은 체력
호주 여자들이 강해서 회복을 더 잘한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병원에서 4일쯤 되는 날, 산후회복 체조 교실이 열리니 강의를 들으러 오라는 안내가 있었다. 아픈 몸을 질질 끌고 강의실을 가는데 어쩜 그리도 먼지. 그 병원은 구조도 복잡해서 미로를 몇 번을 돌고 계단을 오르고 내리고 해서 겨우 찾아갔더니 8명 가량의 산모들이 모여 있었다. 나를 빼고는 모두 서양인이었는데, 아기를 낳은 지 2-4일 정도 되는 사람들이었다. 그중에는 둘째를 낳은 경우도 있어서 어떤 엄마 1-2명은 사우나를 마치고 온 듯 꽤 윤기 있고 건강해 보였다. 하지만 두 명 정도는 너무 아파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강사에게 의자에 앉아서 구경만 하겠다며 꼼짝을 못 했다. 난 대략 어설프게라도 강사의 몸동작을 흉내 내는 정도였는데, 내 회복 상태나 체력이 이들과 비교했을 때 중간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너무 단순한 비교지만. 내가 여기서 발견한 건 덩치 큰 서양 여자들도 미치게 아파하며 애를 낳고 힘들게 회복한다는 것이었다.
4.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 다른가?
단지 다른 건, 빨리 일상으로 돌아오는 걸 당연하게 여기며, 주변에서도 그걸 권장하는 분위기 일거다. 좀 누워 있으려 하면 간호사가 들어와서는 '아프면 진통제를 더 먹어서라도 빨리 일어나 계속 움직이라'고 닦달을 했다. 자꾸 움직여야 장이 제자리를 찾고 회복이 된다면서 벽을 붙잡고 기대서라도 걸으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병실 복도를 나서면 정말로 여인들이 벽에 기대 비틀대며 고통스럽게 한걸음씩 걷는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닌가!ㅜㅜ 한국 여인들은 일어나 걸을만해서 걸으려 해도 '누워있어라. 지금은 괜찮은 것 같지만 나중에 골병든다' 고 겁을 줬다.
또 다른 예로, 지난여름 호주는 40도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더위로 그야말로 수십 명이 죽었는데, 그 더위를 피하자고 아들을 데리고 동네 수영장을 갔더니, 3주 전에 둘째를 나은 아기 엄마가 연년생 아기 둘을 데리고 나와 수영장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다행히도 발만 담그고 있었다.ㅋㅋ 동네 아이 엄마들이 많이 모였었는데, 놀라는 사람은 나밖에 없고, 다른 엄마들은 그저 신생아를 안아보며 축하하는 분위기였다. 하긴, 이 더운 날씨에 집에서 아기 둘 데리고 뭐하겠는가. 동네 수영장에 나와 더위도 피하고 친구들도 만나는 거지.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인 거다.
사실 산후조리의 차이는 몸이 문제가 아니고 사고방식 혹은 주변 분위기, 사회 문화에 있는 것 같다. 이곳 분위기는 애 노인 할 것 없이 개인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분위기라 아이들도 18살 되면 운전면허를 따 혼자 돌아다니고 상당수가 경제적으로 독립을 한 뒤 따로 나가 산다. 80대 노인들도 큰 수술을 받고 병원에 몇 주간 머무르면서도 자식이나 며느리에게 크게 기대하는 게 없다. 자식이 챙겨주면 무지 고마워한다. 내가 알아서 할수 있으니 아직은 남들이 나서서 신경 쓸 것 없다는 거다. 정말 스스로 챙길 수 없을 때가 되어야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나선다. 너나 할 것 없이 자주적 독립적인 삶이 최선이라 생각하기 때문이고 또 사회나 복지 시스템이 개인의 삶을 뒷받침 해주는 부분이 있어서 가까운 가족에게도 신세를 덜 지는 것이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산후조리란 부분에 있어서도 모두들 각자 알아서 하는 분위기라는 거다. 친정 엄마(물론 도움을 많이 받기도 하겠지만 한국과 비교하면)가 옆에 있어도 크게 기대하지 않고 주로 남편과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 남편은 애아빠니까 고통에 동참해야 한다.
이 당시 내 주변의 온갖 국적과 인종의 여인들에게 질문을 해봤는데, 한국 여인들의 대부분은 온갖 금기를 다 지키고도 "몸이 많이 축났다. 애 낳은 뒤 여기저기가 이리저리 됐다'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 일본 여인들을 포함한 외국 여인들은 출산 후 얼마가 지나면 회복되는 거지 출산 후유증이 있을게 뭔가라며 오히려 의아해했다. 내 생각엔 한국의 남자들이 평생을 군대 얘기 우려먹으며 자신이 뭔가를 했다는 것을 인정받으려는 것처럼 여자도 설자리 비좁은 대가족(특히 시댁) 구조 안에서 자신의 위상을 높여주는 유일한 계기가 출산인지라 그 고통과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했던 것이 '한국식 산후조리'의 유래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어려웠던 시절에는 먹을 것도 없고 더운물도 안 나오니 형편에 맞게 금기를 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주변을 보면 한국 산후조리 문화는 여러 면에서 합리적으로 변해가는 것도 같고 또 한편으로는 산후조리원이다 뭐다 하는 서비스를 필수 코스처럼 여기도록 시장을 만들어 출산 비용만 높이는 것도 같다. 내 생각엔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아기를 낳을 땐 죽도록 아프고 육체적 회복을 위한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시간은 누군가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거나 (약간의 도움은 필요하겠지만) 피해 갈 특별한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니고 힘들어도 그냥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거다. 임신과 출산은 육체가 감내해야 하는 엄청난 일이지만 여자의 몸은 그것을 감당해내고 스스로 회복되도록 이미 훌륭하게 설계되어졌다는 것, 다른 질병으로 인한 고통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이 얘기를 할 수 있는 건 나도 애를 낳아봤고 내 나름대로 한국 호주 식이 병합된 조리를 해 본 뒤 내 몸의 상태가 꽤 멀쩡해서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중에 손마디가 쑤실 수도 있고 무릎에서 바람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건 노화 때문이지 산후조리를 잘못해서 그런 건 아니지 않은가! (2009/8/5)
1년 가족 회원권이 2십만 원이었던 텅 빈 시골 동네 골프장을 드나들며 육아하던 시절이 그립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