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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Jun 10. 2021

신발을 통해 바라본 한국인 & 호주인

신발과 양말에 대한 고찰.

신발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구두에 끈이 리본으로 한가운데 잘 매어져 있다면 그는 단정하고 깔끔한 사람일 것이다. 뒤축이 닳은 운동화에 적당히 흙먼지도 묻어있다면 그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사람일 터이고. 호주에도 다양한 사람이 있는데 그들의 신발 역시 개성과 성격을 짐작케 해준다. 하지만 개인의 성격과 취향을 벗어난 국가 간의 신발에 대한 다른 개념 혹은 문화가 있어서 이를 살펴볼까 한다.


1.     외형인가, 내실인가?


호주 대도시 아침 출근 풍경은 한국과 비슷하다. 기차나 지하철 역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와 무표정으로 바쁘게 걷는 사람들. 눈에 띄게 다른 점은 커리어 우먼들이 검은 정장을 빼입고 (전혀 어울리지 않게) 운동화에 배낭을 메고 걷는다는 것이다. 배낭엔 아마도 뾰족한 하이힐 혹은 젊잖은 정장 구두가 있을 것이다. 회사에 도착하면 일을 시작하기 전, 신발부터 갈아 신는다. 운동화에서 구두로. 남자들도 아예 운동복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출근한 뒤 사무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경우도 있고.


한국의 여인들은 불편한 하이힐이나 구두를 신고 어렵게 출근을 한 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실내화로 갈아 신는다. (예전엔 많이 그랬는데.. 지금은 달라졌는지 잘 모르겠다..)


호주 여인들도 나름대로 멋을 내지만 남의 눈보다는 내 발의 형편을 먼저 살피는 내실파라고나 할까? 파티에 갈 땐 목숨 걸고 킬힐도 신고 끊어질 듯한 가죽 실로 엮은 샌들도 신지만 대부분은 신발을 가슴에 끌어안고 있다가 차에서 내리기 직전 혹은 파티장 앞에서 갈아 신는다. 남의 눈을 의식해서 자기 발이 기형이 되는 고통까지 참아가며 멋을 내는 이들을 많이 못 봤다.


2.     벗는 장소가 다르다.


잘 알다시피 호주인들은 집에서도 신발을 신는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현관은 매우 깔끔하고 단정하다. (깔끔하게 사는 사람들일 경우 ) 현관을 집안의 얼굴로 여기기 때문에 손님 초대를 하면 이곳부터 정리한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안 인들은 현관 앞에 신발을 죽 벗어 늘어놓기 때문에 집이 깨끗해도 현관에서 좋은 인상을 얻기가 쉽지 않다. 한술 더 떠 동남아 사람들은 신던 양말까지 벗어 신발 안에 한 짝씩 돌돌 말아 넣는 습관까지 있다. ^^


혹시 호주인을 집에 초대할 일이 있으면 신발이 눈에 안 보이도록 현관을 깨끗이 정리하는 게 좋겠다. 또 손님을 맞자마자 신발 정리에 매진하느라 인사할 타이밍을 놓쳐서도 안 되겠다. 가령,

호주 손님 : 오랜만이에요. 반가워요…(포옹하고 볼에 키스하려는데..)

한국 안주인 : (한식당에서 안내하는 투로) 네, 신발은 이쪽에 벗어놓고 일루 들어오세요…^^


혹시 호주인 집에 초대를 받아 갈 경우, 신발을 잘 터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신발 바닥이 깨끗한지 신경을 써야 한다는 거다. 대부분의 현관에 깔깔한 발판이 놓여 있으므로 특히 비 오는 날이거나 할 경우, 댓 번이고 싹싹 닦아낸 뒤 들어가야 한다. 신발 벗는 문화에서 사는 한국인인지라 신발 바닥을 닦는 일을 생각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호주인들은 정말 열심히 먼지를 털고 들어온다. 저렇게 닦느니 차라리 벗고 들어오지 할 정도로.


한국 여행 뒤 식당에서 신발 벗고 밥 먹는 게 너무 인상적이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한식 세계화를 외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떤 포맷으로 이들을 밥상머리에 앉힐 것인가에 대한 연구도 있어야겠다. 신발을 벗는 전통형의 좌식? 신발을 신는 퓨전형의 입식?


그렇다면 호주인들은 신발을 어디서 벗는가? 아마도 메인 베드룸(안방)이 아닐까? 신발장이 따로 있는 집들도 많지만 현관과는 좀 거리가 있는 곳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고 안방의 옷장 안에 신발을 같이 넣는 경우도 흔하다. 작업화등 지저분한 신발들은 마당으로 통하는 뒷문 혹은 세탁실 주변에 주로 놓여있다.


3.     신발을 대하는 개념이 다르다.


요즘은 너무 비싸고 유명한 신발이 많아 격이 오르기는 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유명한 배우나 가수가 ‘나는 하이힐에 중독됐다.’ ‘신발은 내 자식 같은 존재다’ ’ 월세 방값은 못 내도 신상은 사야 된다’고 외치는 게 유행이었지 않은가.

그런 유난스러운 경우는 제외하고, 신발은 추위나 더위 다른 위험 물질로부터 발을 보호하는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할 때가 있다. 

한국인에게 신발은 ‘냄새나는 발을 감싸는 밑바닥의 더러운’ 존재다. 그래서 이 더러운 신발을 신고 남의 집안에 들어가면 안 되는 거다. 호주인에게는 ‘더럽지는 않지만, 옥죄고 긴장하게 만드는 불편한 구속물’ 이란 개념이 있는 것 같다. 신발을 신고 있다는 것은 ‘긴장 중, 작업 중’의 의미가 있고 맨발은 ‘휴식, 자유로움’으로 여기는 것이다.

영화 ‘귀여운 여인’을 보면 일만 죽어라 하는 리처드 기어를 가엾게 여기던 줄리아 로버츠가 그를 공원으로 데려간 뒤 신발과 양말을 벗기는 장면이 나온다. 한국인의 시각에서는 냄새나는 남의 양말에 주저앉고 손대는 헌신적인 여인의 이미지로 보일 수 있었겠지만 서구적 시각에서는 그를 구속으로부터 적극적으로 해방시키려는 강한 여전사의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아님 말고 ^^ 어쨌거나 맨발의 그는 맑은 공기를 잔뜩 들이마시며 안식한다.

호주인들은 맨발을 좋아한다. 집에선 내내 신발 신고 있다가도 막상 뒷마당에 나오면 양말까지 벗어던지고 맨발로 돌아다닌다. 공원이나 바닷가 등산길에도 맨발 천지다. 그래서 어느 바닷가엔 ‘이 지역엔 마약에 쓰던 바늘 등 위험물질이 많으니 신발을 꼭 신으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을 정도다.  


4.     ‘구멍 난 양말’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한국인(우리) 집에 와 갑자기 신발을 벗게 된 호주인들의 양말은 아주 종종 구멍이 뚫려 있다. 그것도 엄지발가락이 다 드러날 정도로 뻥! (호주에서 흔한 중국산 양말의 품질이 좋지 않아서 그런가. 그래서인지 이민 온 한국인들이 한국산 양말 장사를 많이 한다. ) 그런데 그들은 당황해하지도 않고 웃지도 않는다. 아주 수줍음이 많은 사람 조차도. 호주에서 구멍 뚫린 양말은 그냥 일상일 뿐이다. 고로 호주에 있다가 갑자기 내 양말에 구멍 뚫린 것을 발견했을지라도 전혀 놀라거나 당황할 필요는 없겠다. 


호주는 다양한 이민들이 사는 국가라 한집 건너 출신국이 다른 경우가 허다한데, 멜번에 살 땐 동네를 산책하며 각 집 현관을 통해 어느 나라 사람이 사는 거라는 추측까지 하곤 했었다. 세상은 참 다르고 다양하다. 그래서 하나씩 배우고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삶이 지루하지 않은 것이다. 

(2010/1/29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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