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기 May 31. 2022

한국 vs 호주, '엄마'를 이해하는 사회적 시선

엄마가 행복한 사회란?

한국 사회는 현재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안고 있으며 이를 해소할 방법의 하나로 육아 복지를 다양하게 논의하고 있기도 하다. 가정의 달을 맞아 이 간단하지 않은 문제를 호주에서 아이를 키우는 내 경험을 토대로 쉽게 풀어 볼까 한다.


한국 여자들은 왜 아기를 낳지 않으려는 것일까? 이유는 한 가지다.

아기를 낳으면 행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아기를 낳으면 왜 행복이 줄어드는 것일까? 이유는 여러 가지다.ㅋ

한 가지 분명한 건 아기 자체가 싫어서 혹은 배가 많이 아플까 봐 낳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기는 예쁘지만 사회나 기타 주변의 요소들이 출산 의지를 꺾는다는 건데, 그 기타 주변의 요소들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한 가지는 바로 ‘나’가 사라진다. 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내 몫으로 있던 시간 돈 일 세상을 향했던 관심을 모두 아기에게 바쳐야만 한다는 아찔한... 이기적인 현대 여성의 부족한 모성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자아는 살면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마련인데, 한국사회에서 ‘엄마’의 존재란 자식을 빼놓고는 상상할 수 없는, 자식의 생존과 행복을 위해 소모되는 부속품으로 여기는 시각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 대한 저항 혹은 체념은 한국 엄마들만의 광기에 가까운 자식사랑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호주에 와보니 이런 점들이 달랐다. 아기를 낳음으로 자신의 행복이 증가되고, ‘나’라는 존재의 의미와 가치는 오히려 확대되는 듯했다. 기존의 ‘나’의 삶의 방식이 완전히 훼손되지 않고 거기에 엄마라는 다른 중대한 역할이 추가됨으로써 나의 가정적 사회적 위상이 높아졌다. 호주에서는 엄마와 아기의 복지를 함께 고민한다. 한국에서는 육아만(아기만) 이야기한다. 엄마의 복지는 뒷전이고 결국은 그게 그거라며 개념을 분리할 엄두조차 못 낸다. 분명히 차이가 있다. 무수한 예가 있지만 몇 가지만 들어보자.   


1.   나라에서 엄마를 챙긴다.


내가 사는 시골 동네엔 작은 체육관(헬스센터)이 있다. 양로원과 병원이 입주해 있는 건물 안에 있는데 주로 요양하는 노인들이 운동을 하도록 간단하게 설계된 곳이다. 그런데 이곳으로 젊은 엄마들이 아기를 데리고(3살 미만)와 일주일에 한 시간씩 운동을 한다. 사회체육을 담당하는 복지사가 트레이너 역할도 하고 아기도 동시에 봐준다. 4-5명의 엄마들이 운동을 하는 동안 아기들은 한쪽에서 비디오도 보고 복지사랑 논다. 아기들이 자기들끼리 잘 놀면 복지사는 엄마들 사이를 다니며 코치도 하고 체력 테스트도 하고 어떨 때는 운동 프로그램을 모니터로 보면서 운동도 같이 한다.

할리웃 여배우도 아닌데 동네 애엄마들이 트레이너의 관리를 받으며 운동을 하는 것이다. (뭐 그렇다고 몸매가 하루아침에 배우들처럼 좋아지는 것은 아니고.) 육아에 지친 엄마들이 아기들을 내려놓고 잠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며 건강을 챙길 수 있다. 게다가 비용은 무료다. 이미 있던 시설에 지역 카운실에서 세금으로 트레이너의 임금만 지불했다. 나라에서 베푸는 엄마를 위한 복지라고 할 수 있겠다. 몇몇 엄마들의 청원에 대한 답변이었다. 도시에 가면 더 좋은 공공시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워낙 시골이라 소외된 이들에게 이런 서비스라도 하겠다는 지역 정부의 소박한 발상이었다.


2.   지역 공동체에서 엄마를 챙긴다.


곳곳의 영화관에선 특정 요일 아침에 엄마들을 위한 영화를 상영한다. 엄마들이 아기들을 안고 와서 젖도 먹이고 잠도 재우면서 관람을 한다. 아이들용 영화가 아니라 엄마들이 즐길 수 있는 영화다. 극장 내부 불을 끄지도 않고 아기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허용하니 남 신경 쓰지 않고 맘 편하게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다. 어차피 조조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도 아니니 극장 측에서도 크게 손해 볼 것이 없다.  문화생활에 제약을 받는 엄마들에게 기회를 주자는 지역사회의 배려다.


3.   가정에서 엄마를 챙긴다.


이곳 엄마들은 이런 경우 외에도 mum’s night out (엄마가 외출하는 밤)을 수시로 주관해 아기를 몇 시간씩 남편이나 조부모에게 맡기고 (혹은 베이비 시터를 고용해) 싱글로 돌아가 자기 시간을 즐긴다. 사회 전반적으로 엄마에게 me time (나만을 위한 시간)을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어서, 아기를 안고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대화 중에 불쑥 염려하며 묻는다. ‘근데 너, 너를 위한 시간을 갖고는 있는 거니? 육아가 재밌다고 애한테 시간 다 보내는 건 아니겠지?’

혼자서 산책을 한다든지, 카페에 나가 차를 한잔 마신다든지, 아이 없이 외출하여 남편과 저녁을 한 끼 먹고 온다든지 하는 자잘한 개인적인 시간부터 싱글 때부터 했던 취미나 활동들을 지속할 수 있도록 양가의 가족들이나 주변인들이 배려를 한다. 주말 모임에 젖먹이 아기를 홀로 데려온 아빠에게 엄마는 무슨 일 있냐고 물었더니 '수면부족이라 집에서 잔다'라고 덤덤하게 대답했다. 외국 사는 친구 결혼식에 다녀온다며 홀로 2주간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엄마도 봤다.


그렇게 개인에 대한 복지를 챙김 받은 여인들은 오히려 대단한 모성으로 아기를 돌본다. 근처에 좋은 보육시설이 있고 빈자리가 있는데도 아기를 보내지 않고 집에서 자기가 키운다. 지금은 엄마와 아기 사이에 유대관계를 쌓는 것이 더 중요한 시기라며 아기를 품 안에서 내놓지 않는다. 호주 사회에서 강조하는 것도 결국은 육아 복지 시설을 늘려 사회에서 육아를 떠맡고 엄마를 자유롭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 엄마가 자기 자식을 품 안에서 기쁨으로 키우며 육아를 즐길 수 있도록 지지하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

싱가폴 동물원에서. 내 아기를 당신 품에서 키우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나는 도움이 필요해요.

육아란 즐겁고 감동스러우며 엄마의 생애 중 오로지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지는 소중하고 제한적인 경험이다. 가정과 사회와 국가의 부족한 인식과 배려로 인해 ‘나’를 상실한 여인들은 산후 우울증이며 기타 복잡한 문제들을 가정 안에서 산발적으로 일으키는데, 엄마가 모성이 부족하거나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육아라는 게 본래 그런 고통을 동반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나 통계적으로 증명되어 있다. 그 고통을 가정과 사회에서 인정하지 않고 모른 채 하면서 개인의 문제로 돌리면, 여자들은 출산으로 인해 행복이 줄어들고 결국 출산율은 떨어지게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2012/05/10 씀)

* 대문 사진은 호주 키즈카페

이전 07화 한국 vs. 호주, '산후조리'가 다른 진짜 이유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