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장할 건 아니지만 나쁠 것도 없는.
S와 M은 한눈에도 천생연분 노부부였다. 자상하고 듬직한 남편과 수줍은 미소의 소녀 같은 아내가 늘 서로에게 기대어 앉아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다정한 연인이 백 년을 무사히 해로하고 나면 이런 모습이리라..
그래서 어느 날 인가 이들이 재혼 부부란 사실을 알았을 때 깜짝 놀랐다. 엄밀히 말하자면 재혼도 아닌 사실혼이었다.(De facto-호주에서 흔하게 가정을 이루는 방법인데 한국으로 치자면 법률혼이 아닌 동거쯤이 되겠다. 사회적으로는 배우자라는 법적 지위를 인정받는데 아내와 남편이란 호칭 대신 서로를 파트너로 칭한다.)
그들의 사연은 이랬다. S와 M은 한동네 안에서 각자의 가정을 꾸리며 여러 해를 행복하게 살았다. 같은 교회를 다니고 아이들도 나이가 비슷해서 친구로 지내다 보니 두 가정은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잘 큰 자녀들이 공부를 마치고 집을 떠나갈 즈음 50대의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배우자를 중병으로 잃었다.
각자의 인생에 불어닥친 폭풍으로 낙담하고 방황하던 어느 날 서로가 눈에 들어왔다. 남은 생을 함께 하기로 했고 다행히 양가의 자녀들도 이들의 새 출발을 응원해 주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M은 살림을 합치며 안정을 찾았고 당시 이름만 대면 알만한 큰 약국을 운영했던 S의 사업도 다시 번창했다.
그렇게 또 한 세월이 잘 흘렀다. 초혼보다 더 긴 세월을 함께 하던 S와 M에게 노년의 건강이 문제로 다가왔다. 다리를 끌며 걷던 S는 점차 휠체어에 의존하는 시간이 늘었고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던 M이지만 실은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그동안 앓아왔던 치매가 중증으로 치닫자 두 노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위험한 일들이 자꾸 일어났다.
그들은 결국 자녀들의 요청대로 딸의 집에서 가까운 요양원으로 들어갔다. 일반 병동에 머물던 S의 일과는 이랬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한 뒤 중증 치매 병동에 있는 M을 만나러 간다. 먼 거리는 아니겠지만 휠체어로 이동을 해야 하는 노인에게는 그리 쉽지 않은 루틴일 게다. 그곳에서 인지 기능 상실로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내에게 하루 종일 책을 읽어주고 음악을 같이 듣고 점심을 함께 먹고 산책을 한 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다. 아내를 끔찍이 챙기는 모습으로 요양원에서도 소문이 자자 했는데, 어느 날인가 잠깐 정신이 돌아온 M은 '당신은 정말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에요.'라는 고백을 해 S를 감동시키기도 했다. S의 사랑 때문이었는지 요양원의 좋은 서비스 때문이었는지 M은 주변의 예상보다도 몇 해를 더 살다 숨을 거두었다.
그런데 깜짝 놀랄 소식을 들었다. M을 전남편의 묘지 옆에 묻는다는 것이었다. '아니 왜? 언제 적 일인데? S는 어쩌라고?' 함께 산 세월이 얼마고 그동안 들인 정성과 사랑은 다 무엇인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S는 담담했다. '나는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우린 이미 그렇게 하기로 오래전에 합의를 봤어.' 마지막까지도 힘든 몸을 이끌어 장례를 거들고 뒷정리까지 나서서 하면서도 미련이 없는 모습이다. 도대체 이 상황은 무엇일까?
우리 관계는 여기까지, 쿨내 나는 서양인들의 개인주의적이고 이성적인 결단으로 해석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 S는 M에게 진심이 아닌 적이 없었고 마지막까지 눈물을 흘리며 묘지의 흙을 토닥이던 사람이었다.
묘지관리는 어차피 유가족이 해야 하니 자녀들이 부모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게 합리적 배려를 한 것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S도 자기 전부인 옆에 묻히면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편안할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편의적 계산이 전부일 수는 없지 않은가!
시간을 두고 생각을 거듭하던 어느 날 나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또 다른 답을 떠올렸다.
그들은 과거의 관계에 매몰되지도 않았고 미래의 갈등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사랑하는 자녀나 주변인에게 번뇌와 피해가 가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현재도 희생시키지 않은 것이다. 나의 오늘 하루, 날마다 느끼는 내 감정, 90을 바라보는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내가 하고 싶은데로 사랑까지 다하고 산 성실한 두 인간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권장할만한 해결책으로 내놓을 건 없지만 그렇다고 나쁠 것도 없는, 주변인들과 갈등 없이 다 같이 잘 살아보려고 궁리한 노인들의 잔잔한 지혜라고 해석하니 마음이 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