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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Sep 10. 2024

호주, '묘지'를 바라보는 조금 다른 시선은?

살아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이 연대하는 곳

호주에 와서 놀랐던 것 중 하나는 크고 작은 공동묘지가 동네마다 곳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묘지란 무엇인가? 죽은 자의 송장이나 유해를 땅에 묻어놓는 곳이다. 한국에 살 때는 묘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터부시 하는 분위기 때문에 관계가 없다면 굳이 발을 들이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조상의 선산이 어딘가에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곳을 가본 기억도 거의 없었다.    

내가 지금 사는 마을 한복판엔 초등학교가 있는데 낮은 담을 사이로 꽤 규모가 큰 공동묘지가 있다. 교실 창문으로 묘지 전경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공동묘지를 가로질러 등하교를 한다. 젊은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한다. 

동네 공동묘지


왜 멀리 떨어진 깊은 산속이 아닌 삶의 현장 안에 죽은 자들의 공간이 더불어 있는 걸까?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죽은 자들이 자기 살던 동네에 묻히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둘째, 유가족이 쉽게 자주 찾아 추모할 수 있는 곳을 원하기 때문이다.


죽었다는 이유로 갑자기 가족과 떨어져 낯선 산골짜기에 홀로 누워 있고 싶지는 않을 거다. '나는 그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 가는 것'이라 여기며 떠나는 자도 남은 자도 서로의 물리적 거리를 가깝게 지키고 싶은 것이다.

특별히 정해진 성묘일이나 명절에만 찾는 것도 아니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등 사는 동안 가족들이 모일 만했던 특별한 날이면 수시로 죽은 자를 기억하고 찾아온다. 비슷한 시기에 배우자를 잃은 할머니들이 소모임을 만들어 매주 같이 커피 마시고 산책하 듯 묘지를 방문하기도 하고 어린 손자들이 하굣길에 그날 그린 그림을 슬쩍 놓고 가기도 한다. 정원을 손질하다 예쁜 장미가 피면 그 꽃 좋아했던 아내 생각하며 꺾어서 갔다 놓고 오는 식이다. 그래서인지 인적 드문 조용한 곳임에도 누군가가 놓고 간 색색의 꽃들이 늘 여기저기에 있다. 짬짬이 들러 묘지 정리도 하고 꽃도 놓으며 자기 집 거실 화병 다루듯 하니 생화가 마를 날이 없다.


사람 사는 곳이면 필수적으로 필요한 공공시설로서 묘지를 가까이 두는 것은 여러 장점이 있다.

현실적으로는 같이 살던 가족이나 지인이 가까이 묻혀있어 지나다니며 추억하기도 쉽고 철학적으로는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잊지 않으니 감사와 겸허함으로 하루를 살 것이다. 삶의 마지막 장으로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니 묘지조차도 삶의 현장 안에서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땅 넓은 호주에서도 여러 법규로 묘지를 넓히지 못해 공급부족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단다. 부동산 가격 오르듯 명당자리는 경쟁도 치열하고 가격도 부담스러워 많은 이들이 점차 화장을 선호하기도 한단다.  

얼마 전 새로운 장례문화를 다루며 창의적인 대안들을 소개하는 티브이 프로그램(The Last Goodbye)을 봤다. 묘지를 깊이 파 두 사람을 순차적으로 함께 매장하는 것은 고전에 속한다. 망자를 가로가 아닌 세로로 매장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환경을 위해 값 비싸고 잘 썩지 않는 비싼 관 대신 분해가 잘 되는 종이관을 사용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아예 유해를 바이오균과 섞어 6개월간 임시 매장해 퇴비를 만든 뒤 자기 집 정원에 뿌리기도 한다. 그중에 압권은 화장한 뒤 유해를 불꽃놀이를 해서 하늘에 뿌리는 거였다. 유족들은 해가진 저녁 시간 공원에 모여 삼삼오오 서로 어깨를 기대고 피크닉을 하다가 하늘에서 터지는 총천연색의 불꽃을 보며 눈물짓고 웃으며 엄마와 이별했다. '유머를 사랑했던 엄마의 유언대로, 가장 엄마다운 선택을 했다'며 온 가족이 두고두고 기억할 그 밤을 뜻깊어했다.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장례 엑스포 장면엔 더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소개된다. 유해를 작은 캡슐에 넣어 심해 깊은 곳에 묻는 '마지막 크루즈'로 불리는 상품도 있고 특정 온도로 불태워 보석이나 장신구를 만들기도 한다.


어떤 묘지가 좋을까? 때로는 너무 무겁고 복잡하고 비싸고 때로는 너무 실용적이고 가볍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상적 묘지란 무엇일까? 살아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연대하는 지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들 친구 엄마네 얘기다. 바닷가에 살며 대대로 요트를 타는 취미가 있는 가족이다. '우리 아버지 살아계실 때 좋아하는 갯바위가 있었어. 배를 타고 가야만 닿을 수 있는 곳이지. 유해를 어디에 뿌릴까 하다가 그곳에 뿌렸어. 지금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그때는 가능했거든. 우리는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어. 가족들만 아는 비밀이야. 지금도 가족들과 요트를 타고 그 앞을 지날 때면 우리 딸이 외친단다. '저기 할아부지 바위다.' 아무도 모르지만 알아야 할 사람은 다 아는 그래서 그 앞을 지나치는 동안 고인을 추억하고 추모한다니, 너무 낭만적이지 않은가! 그렇다. 죽은 자는 산자의 가슴속에서 기억되는 동안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전화선도 라디오도 없던 시절, 유럽 이주민들의 배가 여러 척 난파되어 수천 명이 수장된 무시무시한 역사가 있는 바다. 지금은 아름다운 관광지로 유명한 포인트 니편 국립해상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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