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한 잠은 인간의 권리이자 의무.
아침마다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5분만’ ‘10분만 더’를 외치는 자녀들이 있고 아침밥을 포기한 채 눈을 잠깐 더 붙이는 직장인도 있다. 피로에 절어 잠을 이기지 못하는 가족들을 아침마다 깨우느라 괴롭고 안쓰럽고 미안하고 힘들다는 지인의 하소연을 들었다. 그 상황이 잘 이해가 되기도 했고 순간 낯설게 다가오기도 했다. 난 아침에 가족을 깨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침잠이 많아 가족 중에 늦게 일어나는 것이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다섯 살 아들도 아침 7시면 눈을 번쩍 뜨고 침대를 튕겨 나간다. 호주 주변 엄마들로부터도 가족들 잠 깨우는 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도대체 상황이 이토록 다른 이유가 뭘까?
연구나 마나 결론은 한 가지로 간단했다. 잠자리에 일찍 든다는.ㅎ
호주인들은 수면의 양과 질을 매우 강조한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을 때 따르는 온갖 부작용에 대한 연구를 이미 다 끝내고 수면에 관한 한 확고한 결론을 사회적으로 내렸다고 봐야 한다. 잠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충분히 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마다 다른 ‘충분함’의 근거는 어떻게 찾는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스스로 눈을 뜨고 가뿐하게 일어날 수 있는 상태가 그것이다. 즉, 아침에 벌떡 일어나기가 버겁다면 수면이 부족한 것이니 전날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계속 앞당기라는 논리이다.
호주 초등학생들은 대략 6시쯤 저녁을 먹으면 바로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한다. 이를 닦고 샤워를 하고 동화책을 한 권 읽은 뒤 침대에 누워 불을 끄는데 대체로 저녁 8시 이전이다. 여름에 해가 길 때는 밖에 해도 떨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니 아이들은 아침 6시나 7시가 되면 누가 깨우기도 전에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다. 더 잘래야 자기도 어려울 것이다. 왜? 더 자면 허리가 아프지 않겠나.. 뭘 좀 먹을 때가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일찍 잠자리에 들고도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하는 아이들이 간간이 있다. 그럼 부모들은 이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저녁 식사 시간을 앞당긴다. (저녁을 먹어야 아이들이 잠자리에 드니까) 아들이 유치원 다닐 때 친구들 중엔 저녁을 다섯 시에 먹는 집도 혹은 그전에 먹는 집도 있었다. 단지 아이들이 충분히 자야 한다는 일념으로 일찍 퇴근하는 아빠 얼굴 보기를 포기한 채 꿈나라로.^^
학교에서 보내온 가정통신문에도 ‘아이들이 학교생활로 피곤할 수 있으니, 집에서는 딴짓하지 말고(집으로 돌아온 4시부터 6시 사이에는 티브이를 보며 쉬거나 간단히 숙제를 하거나 한다.) 충분히 휴식과 수면을 취하도록 신경을 쓰라.’는 조언이 종종 있다. 그래서인지 이곳 아이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꼭 아침형 인간일 필요는 없겠지만 야간 학교를 다니지 않는 이상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은 중요하다.) 느긋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학교에서도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졸거나 자는 아이들이 없다. (쉬는 시간에는 전교생이 운동장에 나와 논다. 교칙상 교실에 머무를 수 없다.)
‘쉴 거 다 쉬고, 남들만큼 잘 거 다 자고, 넌 뭐가 될래?’ 하며 근거 없는 불안을 조성하지 말아야 한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생산성도 떨어지고 집중력도 떨어지고 몸과 정신만 축날 뿐이라고 전문가들은 이미 지적했다. 충분히 자고 쉰 뒤 맑은 정신으로 효율을 높여 공부도 하고 일도 해야 한다. ‘학생인권 조례’ 운운하면서 학생들의 기본 수면권과 휴식권에 대한 보장은 왜 언급이 없는지, 파마나 염색을 허락할까 말까 같은 피상적 논의만 오간다. 어느 철학자의 ‘피로사회’란 책이 베스트셀러였다는데, 이제 한국인들도 자고 쉬는 것을 경멸하지 말고 상식적으로 신체적 리듬을 존중하며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2012/3/12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