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인생과 교육에 미치는 영향.
오늘은 게임(보드게임) 이야기를 해야겠다.
디지털 세대의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그 게임이 폭력적이라 학교 폭력으로 연결되고 애어른이고 별의별 경쟁에 몰려 죽기 살기로 살거나 우울증 걸려 죽거나 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오늘부터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작고 쉽고 간단하면서도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게임'을 추천하고 싶기 때문이다.
게임이란 무엇인가?
놀이 유희 오락쯤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일 공부 중간에 쉬면서 하는 거다. 게임에는 법칙이 있어 참가자들이 그 법칙을 따르며 공정한 승부를 가려내게 되어 있는데 이기면 좋고 져도 그만이다.
호주에서는 남녀노소 없이 게임을 많이 한다. 서너 살이 되기도 전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여러 종류의 보드 게임을 하고 생일 파티든 뭐든 모이기만 하면 무언가 게임을 하는데 이렇게 평생 게임을 즐기던 사람들은 양로원에서도 둘러앉아 죽는 날까지 게임을 한다.
처음엔 이런 게임이 재미도 없고, 다 큰 어른들이 모여서 이러고 논다는 게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이면 마지못해 참가하던 게임들이었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게임을 선물로 받기도 하고 직접 사기도 하면서 여러 종류의 게임 도구들을 갖추게 됐다. 그리고는 기왕에 있으니 한 번씩 놀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며 판을 벌리다가 게임의 위력들을 발견하게 됐다.
가령 이런 거다. 내 5살 아들은 성격이 온화하고 매너가 좋은 순둥이인데 슈퍼에 가서 무언가를 사달라고 집어 들었다가도 '돈이 없다' 든지 '너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닌 것 같다.'고 하면 바로 내려놓고 '엄마, 그럼 다음에 돈 벌어서^^ 사주세요.' 할 만큼 순종적이고 말귀를 알아듣는다.
그런데 이런 아이가 게임을 하면 달라졌다. 가위 바위 보에 져서 시작을 늦게 하게 된다든지 상대가 자신을 앞서 나가면 아이는 울고 뒤집어진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바닥을 떼굴떼굴 구르며 고통스러워한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정말 놀랐다. 그런 적도 거의 없고 그런 아이가 아닌데.... 이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많은 것들이 눈에 보였고 그때부터 수시로 게임을 하며 '몰입교육'에 들어갔다.^^
게임은 게임일 뿐이라는 것, 승자도 있고 패자도 있는데 너만 매번 승자일 수는 없다는 것, 이겼을 때 성취감을 누리는 법, 패자를 위로하는 법, 지고 있을 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공정하게 최선을 다하기, 졌을 때 판을 뒤집지 않고 결과를 받아들이기 등등.
어디 그뿐인가.
살다 보면 누군가는 분명 사다리 타고 올라가기도 한다는 것, 예상치 못한 뱀을 만나 노력과 상관없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 눈앞이 캄캄해도 그게 끝은 아니라는 것, 게임의 룰이 공정해도 누구나 다 사다리를 타고 오를 수는 없고 사다리를 탔다고 종국에 이기는 것도 아니라는 것, 억울해도 받아들이고 네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등등을 논하고 가르쳤고 체험하도록 했다.
처음 몇 달은 게임 자체가 고통이었다. 툭하면 울고 삐지고 좌절하는 아들을 앞에 두고 큰 숨을 몰아쉬고 인내하며 게임을 가르쳤다. 인생을 가르쳤다.^^ 지금은 게임이 즐겁다. 마침내 우리 가족은 둘러앉아 울고 언성을 높이는 일 없이 게임을 하게 됐다. 아들은 승자에게 박수 쳐주고 패자를 위로하는 법을 배웠다. 이겼을 때 겸손하게 인사를 하고 다른 이이게 기회를 주는 여유까지도 부리게 되었다. "아빠, 우리 한판 더해요. 엄마는 아직 한 번도 안 이겼잖아요." 한다.
내 주변엔 아예 '게임의 날'을 정해 온 가족이 정기적으로 게임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가령 금요일 밤엔 엄마가 저녁을 하는 대신 온 가족이 피자를 시켜 먹으며 게임을 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단어를 만드는 스크램블이나 계산을 해야 하는 모노폴리 같은 게임들은 아카데믹한 효과도 볼 수 있는 훌륭한 게임들이다. 이런 게임들만 전문으로 파는 가게가 따로 있을 정도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회 문제들이 게임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자란 세대들로 인해 생기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봤다. 룰을 지키지 않는 승자는 이겨도 명예와 즐거움이 따르지 않는다. 양보를 모르는 승자의 끝없는 독식은 역겹다. 아무도 그가 벌이는 판에 끼어들지 않아 승자는 외로워질 것이고 혹은 패자의 분노에 의해 판이 깨어질 것이다. 한국 정치 경제 교육 스포츠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은 지금부터라도 이런 게임을 하며 삶의 기본을 다질 필요가 있겠다.
어릴 때부터 게임을 해야 한다. 아이들이 감정을 다스리게 되고 규칙과 질서에 순응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무의미한 경쟁에 삶을 내던지지도 않을 것이다. 인생의 작은 축소판인 게임을 하며 스스로 필요한 것들을 찾아 배우게 될 것이다. 가정과 학교와 사회 모든 곳곳에서 건전한 게임을 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는 소리는 핑계일 뿐이다. 학원을 하나 안 가면 그만이고 저녁 약속 하나 취소하면 충분하다. 학교에서도 교실마다 다양한 게임을 구비해서 아이들이 쉬며 배우고 즐길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학원 폭력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인이여!
게임을 하라!
진짜 게임을....
(2012/2/21 씀)
-유아들도 할 수 있는 구슬놀이, 탑 쌓기 게임
-여러 종류의 카드들. 놀이 방법도 그림도 다르다. 같은 카드라도 여러 방법으로 놀 수 있고 참가자마다 룰이 조금씩 다르므로 게임 시작 전에 미리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여러 형태의 메모리 게임들. 아이들에겐 기억력 집중력 증강, 노인들에겐 치매 예방
-사다리 게임들. 주사위를 던지며 사다리를 오르거나 뱀을 만나 나락에 떨어진다.
-남녀노소가 즐기는 빙고게임. 서양 영화를 보면 양로원의 노인들이 둘러앉아 혹은 커다란 홀에 바글바글 모여 앉아 빙고 게임하는 장면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