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란 개인이 존중받는 따뜻한 사회를 경험하는 곳.
호주에서 10월은 Walktober로 불린다. 겨울도 지나가고 날씨도 화창하니, 건강을 위해 많이 걷자는 취지로 나라에서 벌이는 캠페인이다. 이때쯤이면 크고 작은 학교나 여러 단체나 모임들이 날을 정해 일정 구간을 걷곤 한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도 어느 금요일 아침, 걷기 대회가 있었고 학부모도 참여를 권장했기에 따라갔다. 어차피 아침엔 아이를 등교시키고 학교 앞에서 만난 옆집 엄마들과 종종 마을을 걷는 게 일과였던지라 아이들을 따라나서는 것이 낯설 것도 없었다.
학교 뒤로 이어진 발라렛 트레일의 두 구간을 걸었다. 왕복 9킬로 정도 됐다. 날씨가 흐리고 추워 출발 전부터 약간의 논의가 있었지만 그냥 걷기로 했다. 그 길을 걸으면서 몇 가지 생각들을 했었다.
아이들은 참으로 자유롭게 걸었다. 2열 종대로 줄 맞추고 하나 둘 셋넷 발맞추어 걷지 않았다. 70명쯤 되는 아이들과 4-5명의 교사, 10명 남짓의 부모들은 거의 1킬로쯤 늘어서서 빠르게 늦게 제 속도대로 걸었다. 뒤로 처지는 아이들이 있으면 좀 큰 아이들이 옆으로 가서 손을 잡고 걷기도 하고, 선생님들이 조용히 옆에서 같이 걷고는 했다. 그 누구도 빨리 걸으라, 줄을 맞추라는 요구가 없는 제멋대로의 오합지졸 다운 행렬들.
빨리 걷는 아이, 뛰는 아이, 노래하는 아이, 엎어져 우는 아이.. 별별 아이들과 속도를 맞추며 걷는 일이란 참으로 즐거웠다. 날씨가 꽤 쌀쌀했고 가끔씩 비도 내렸지만 계속 걸었다. 빗방울을 맞으면 아이들은 더 신이 나서 걸었다.
"허벅지가 너무 가려워요." 하는 여자 아이의 다리를 보니 불그죽죽 푸르죽죽, 이 찬바람을 맞으며 반바지를 입고 걷자니 동상이 걸릴 지경이었다. 어느덧 선생님들은 모자도 벗어주고, 재킷도 벗어주고, 그래도 추우면 좀 뛰어보라고 독려한다.
양이 나오면 양이랑 놀고 말이 나오면 말이랑 논다. 야생초도 꺾고 흙바닥도 구른다.
어느 아이가 말한다.
"선생님, 저는 수학이 너무 어려워요. 수업을 쫓아갈 수가 없어요..."
"수학이 어렵지. 그래도 겁낼 것 없어. 내년엔 내가 담임을 맡을 테니 우리 같이 해보자. 잘 될 거야."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선생님이 연륜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는데 왜 내 가슴이 뜨뜻해지는 건지.
나는 지금 수학으로 고민하는 소녀가 아닌데 말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그 문제로 고민할 즈음 그런 세심한 답변을 듣고 자라지 못했던 것이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수학 문제 틀릴 때 몽둥이를 휘두르던 이들이 악몽처럼 떠올랐다. 왜 그런 이유로 매를 맞고 벌을 서야 했는지... 그때도,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쓰러진 나무 위를 오르 내리는 아이들. 젊은 교장 선생님이 그 옆에서 아이들을 챙긴다. 나뭇가지 조심해라. 뒷사람 생각해라. 높이 오르지 마라. 그렇게 낙오자 없이 모두가 9 킬로를 걸었다. 교문 앞에서 학교로 돌아오는 아이들을 맞던 교장 선생님은 이런 말을 했다.
"집(HOME)에 다 왔다. 얼른 들어가자."
난 그 소리가 조금 놀라웠다. '집이라고? 학교가 아니고?'
우리는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전전날 학교 행사에 쓰고 남은 음식들이 냉장고에 가득했다. 고기 파이며 피자 케잌 등등을 오븐에 넣어 덥히고 선생님들이 끓여왔다는 여러 종류의 스프들을 학교 주방 불에 얹었다. 학교에서는 가끔씩 행사가 있을 때 함께 점심을 먹곤 하는데 주로 학부모들이 요리를 준비했다.
그런데 이번 주엔 다른 행사로 부모들이 수고가 많았다는 이유로 이 날은 선생님들이 자발적으로 요리를 해온 것이다. 그들은 냄비에 스프를 한 가지씩 끓여왔고 과일도 준비했다.
점심은 따뜻하고 푸짐했다. 뜨거운 스프와 파이를 먹으며 창밖을 보니 거짓말처럼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가슴을 쓸어내리고 소리치며 행복해했다. 마음속에서 노래가 절로 나왔다.
"우리는 지금 학교에 있다네.
지붕이 있어 비를 맞지 않는다네.
우리 손에는 따뜻한 먹을 것이 있지.
평화롭고 배부르니 이것이 행복일세"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커피 한잔에 케잌 한 조각까지 챙겨 먹자니, 나도 정말 이곳이 집인지 학교인지 모르겠다는 나른한 혼돈이 찾아왔다.
자유롭게 따뜻하게 교실 밖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며 이것이야말로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초등학교는 점수로 경쟁하고 능력을 평가받는 사회가 아니라 개인이 존중받는 따뜻한 사회를 체험하는 첫 장으로 아이들에게 다가와야 하지는 않을까 생각해 봤다. (2012/11/9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