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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Jul 01. 2021

호주 초등학교에서 배운 '분노 조절법'

분노를 분석하고 이해해보자.

얼마 전 아들이 다니는 학교 교장과 분노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됐다. 호주에서는 나뿐만 아니라 여러 엄마들이 수시로 학교를 드나들며 (물론 용건은 있다.^^) 담임이건 교장이건 편하게 교직원 휴게실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많이 있는데, 이날 나누었던 대화가 매우 새롭고 유익해서 나의 사유를 덧붙여 나눠볼까 한다. 요즘 한국사회에서 많이 논하는 ‘분노’와 ‘치유’, 그것들과 연관이 깊기 때문이다.


1.   분노의 이해


그는 분노를 5단계로 나눴다. (아마도 어느 심리학자가 이미 구분한 것 일 게다.) 그래프에 가운데가 불쑥 솟은 포물선을 그렸고 그 위에 발단(trigger), 전개, 절정(crisis point), 쇠퇴, 원상복귀쯤이 되는 점을 다섯 개 찍었다. 소설에 기승전결이 있듯이 분노 또한 어떤 이유로 열을 받기 시작해서(도입), 호흡이 슬슬 가빠지다가(전개), 도저히 못 참겠어서 미친 듯이 폭발하고(절정) 그러다 기운이 차츰 빠져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후퇴) 마침내는 평상의 감정으로 돌아오는 패턴이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기질에 따라 전 과정이 순식간에 진행되는 사람, 몇 날 며칠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는 사람, 혹은 전개 과정에서 원점으로 되돌리는 자제력이 뛰어난 사람, 폭발은 하나 표현 정도가 경미한 이도 있다. 그러니 자신의 평정심을 유지하고 싶다면 스스로 분노 사이클을 철저히 분석할 필요가 있고 상대와의 충돌을 피하고 싶다면 그의 분노 사이클을 잘 파악할 필요가 있겠다.


가령 부부싸움의 경우를 보자. 돈이나 시댁같이 반복적으로 발단이 되는 어떤 요소가 있을 것이다. 상대의 상태가 별로 안 좋을 때는 이런 주제로 대화를 피해야 하고, 꼭 해야만 한다면 감정이 불필요하게 전개되지 않도록 도입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 두 부부의 분노 사이클이 동일해서 함께 절정에 오르면 가재도구가 다 날아가는 것이고, 어느 한쪽이 절정 이전에 소강을 했다면 상대의 폭발도 다소 완화될 수 있는 것이다.;;


2.   분노 조절법


분노의 사이클을 파악했다면, 조절법을 찾아야 한다. 전개과정에서 모든 것을 멈추고 큰 숨을 들이마신 다든지, 충돌 대상과 물리적 거리를 두어 장소를 이동한다든지, 머릿속으로 숫자를 하나 둘 셋 센다든지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주변을 보면 어릴 때부터 훈련받은 이들은 커서도 화가 나면 구석에 멀뚱히 서서 혼자 숫자를 세고 있다.ㅎ

또 분노에 찬 상대를 섣불리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데, 가령, 폭발 과정을 거쳐 감정의 쇠퇴기에 있는 그에게 서둘러 말을 걸면 휴식기에 이르렀던 분노의 감정이 재 점화되어 재 폭발하는 수가 있다. 상대가 쇠퇴기를 거쳐 완전한 평정기에 이르기 전에 다시 감정을 자극하지 않도록 쇠퇴기인지 평정기인지 확인해야 한다.

한국사람들은 욱하는 성향이 많은데(도입에서 절정이 매우 빠른), 지지 않겠다는 경쟁심으로 맞짱을 떠서 작은 일로도 서로의 상처를 심화시키는 경우가 흔하다. 호주에서는 누군가가 화가 나면 그냥 혼자 자리에 두고 아무도 상대하지 않는다.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고, 그의 사이클을 분석한 뒤 서로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거다.


3.   호주 교사들의 분노 조절법


교육은 간단치 않다. 감정적으로 미성숙한 어린아이들을 여럿 모아 제한된 공간에서 매일 가르치는 것은 특히 그렇다. 그래서 교사들은 자신의 감정을 매우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하고 아이들의 잘 훈련되지 않은 분노 사이클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내 기준으로 보자면, 아이들에게 같은 말을 같은 톤으로 20번 이상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교사자격은 없는 것이다. 아이들은 머리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일부러 반항하는 것도 아닌데, 하라는 일을 안 하거나 못하거나 하며, 하지 말라는 일을 자꾸 반복해서 하는 성향이 있는 존재다. 그래서 교육이란 결국 같은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해서 설득하는 작업인데, 그때 아이들의 성장과정에 대한 이해가 없이 감정을 섞어 소리를 지르거나 폭력을 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자기감정을 조절 못해 교실에서 날뛰는 아이들이 호주에도 있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서 복도 한쪽에 빈 의자를 갖다 놓았다. 말 안 듣는 아이를 벌세우기 위함이 아니다. “네가 감정 조절이 어려워 네 행동을 감당 못할 것 같으면 분노가 터지기 전에,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기 전에 교실 밖으로 나가렴. 그리고 저 의자에 앉아서 네 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봐라. 네가 그곳에 앉아 있는 동안은 수업시간이든 점심시간이든 아무도 너를 터치하지 않을 거야. 네가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고 무언가를 말할 준비가 되었다면 나에게 와라” 호주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다.;;)

심할 때는 선생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이도 있었지만 (물론 이럴 때는 타인의 도움을 받아 이 아이를 격리시켜 집으로 보내지만) 아이에게 폭력을 쓰는 선생은 없었다. 아들 학교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에게 맞은 중년의 여선생은 담담히 말했다. “저 아이 참 안됐어. 마음 아파….” 나도 그 아이의 마음 아픈 사정을 좀 알지만 한 대 맞고도 그 소리가 나오나 싶었다. 아이의 미성숙함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그녀는 성숙했고 정말 선생다웠다.


얼마 전 한국에서는 어느 초등학생이 교사에게 빰을 맞고 맞폭력을 쓴 것이 크게 기사화됐는데, 하나같이 ‘50대 교사’에게 ‘어린 학생’이 덤볐다는 ‘권위’와 ‘나이’의 대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씁쓸했다. 그 소녀를 지지하는 것도 아니고 그 교사의 사연도 쓸쓸하지만, 이미 학교폭력을 법으로 금한 상황에서 폭력을 시작한 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분석은 아예 화두에 오르지도 않는 것이 한국 사회 분위기다.


호주 초등 교실엔 회초리도 없고 한 번쯤 호통을 쳐야 할 시기가 오면 선생이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흔들어 아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가령 아들 교실 담임은 도미솔 톤으로 ‘아아아’ 노래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하던 행동을 멈추고 아아아 (솔미도 톤으로) 노래하며 자리에 앉는다.^^ 옆반 선생은 탬버린 비슷한 원주민 악기를 조용히 흔든다. 인격적으로 대단히 뛰어난 것 같지도 않은데,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선생은 거의 못 봤다. 도대체 이들은 어떻게 분노 조절법을 터득한 것일까? 한국 교실에서는 불가능으로 치부되는 일들이 왜 호주 교실에서는 일상이 되는 것일까?


4.  분노 조절 교육은 유아 때부터


나는 그 이유를 유아교육에서 찾았다. 가령 이런 것이다. 호주에서는 아기들을 재우지 않는다. 아기들이 직접 잔다. 한국 엄마들은 육아 중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고 하면 애들 재우는 것이라고 한다. 잘 듯 말 듯 계속 칭얼대며 밤늦도록 사람 진을 빼놓는 일이 매일 밤마다 반복되기 때문이다. 호주 엄마들은 아기를 눕히고 책을 한 권 읽어주고 굿 나이트 키스하고 불 끄고 나오면 그만이다. 할리웃 영화에 그런 장면 많이 나오지 않나… 실제로도 그렇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한국 엄마들은 도대체 이해 못한다. 이곳 엄마들은 아기의 울음을 분석한다. 배가 고프다든지 기저귀가 젖었다든지 하면 바로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나 자신이 피곤하다든지 기분이 좋지 않다든지 등등의 이유로 칭얼대면 그냥 울도록 놔둔다. 그 이유는 무관심해서라든가 나도 피곤해서라든가가 아니다. 아기가 스스로의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 이유다.


몸이 나른하고 피곤이 몰려오면 아기들은 그 상태가 싫어서 울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감정은 자연적 현상이고 매일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스스로 대처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엄마가 달려가서 안고 얼르고 등에 업고 노래를 부르면 아기는 그 과정이 더 피곤해서 더 울다가 힘이 다 소진할 때쯤 쓰러져 잔다. 아이는 감정조절법을 배우지 못하고 날마다 엄마에게 매달린다. 그러나 호주 아기들은 혼자 몇 날을 울다가 해결책을 찾는다. 그냥 눈감고 누워있으면 된다는 것을.


이것은 한 예일뿐이고, 아기 때부터 만사에 스스로 감정 조절하는 능력을 훈련받은 이와 그렇지 않은 이가 성인이 됐을 때의 훈련양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감정조절을 배우지 못한 부모와 교사와 사회 안에서 성장하고 생활한 이들에게는 이것이 매우 힘들고 평생을 지고 가야 할 큰 숙제가 되는 것이다.


가정폭력을 경험한 자들은 폭력 범죄자가 되기 쉽고, 화를 참지 못한 폭력 교사 밑에서 교육받은 현재의 기성세대들은 그 상처를 안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감정조절에 취약한 성인이 되어 버렸다. 그런 다수의 구성원들로 인해 현재의 한국사회는 분노와 폭력으로 고통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무감각 해져있거나 방법을 찾지 못한 채 감정조절 실패의 삶을 다음 세대로까지 반복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우리 모두 자신의 분노 사이클을 조용히 분석해 보자.  가정의 평화와 사회의 안정을 위해,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 (2012/ 11/ 22 씀.)


그 당시 아들 학교 안팎에서 겪었던 일들을 느낀대로 적은 것이다. 그런데 뉴스를 보면 호주도 가정 폭력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만큼 여러 종류의 폭력이 사회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이전 17화 호주에서는 '걷는 것'도 교육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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