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정신건강을 생각한다면..
요즘 호주 교육계 한쪽에서는 ‘펜 색깔’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학생들의 작문이나 시험지에 교사가 빨간 펜으로 실수를 지적하거나 의견을 남기는 경우가 많은데, ‘붉은색’이 갖고 있는 공격성으로 인해 아이들은 긴장하고 상처를 받아 정신건강을 해치게 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붉은색 대신 교사가 학생들에게 쓸 때는 보라색을, 아이들이 교사에게 쓸 때는 초록색을 쓰는 것이 좋다고 권장한다. 일각에서는 이런저런 작은 상처 받는 것까지 다 챙기다 보면 나약하고 무력한 아이가 된다고 걱정을 늘어놓지만, 실제 임상 결과를 보면, 펜 색깔을 바꾸었을 때, 아이들이 훨씬 편안한 심리로 교사의 조언을 수용하며 성적이 향상되는 결과를 보였다고 한다. 또 이런 배려를 받고 안정된 환경에서 공부한 아이들이 오히려 위기상황에서 굳건하게 대처한다는 보고도 있었고.
실제로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는 이미 이를 실행하고 있었다. 사실, 난 어제까지도 아들 노트에 사용한 선생님의 보라색 펜에 그런 의미가 담겨있는 줄 몰랐었다. 생각해보니 빨간색은 주차 금지, 속도 제한 등 강력한 법적 제재를 강조할 때 쓸 만한 강압적인 색깔이다. 교사와 학생, 혹은 다른 관계에서도 양자 간의 원만하고 활발한 소통을 원한다면 펜 색깔을 바꿔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과학적 심리적 유효에 대한 논쟁을 떠나, 펜 하나 바꾸는 거니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은가!
말 나온 김에 호주 사회에서는 금기시되고, 한국사회에서는 흔히 통용되는 아이 정신건강에 위험한 대화에 대해 몇 가지 얘기해 보겠다.
1.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어른들이 아이에게 장난 삼아 묻는 질문들. 아이들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워 대답을 못하고 쩔쩔매는데, 그걸 보며 순진하다고 귀엽다고 좋아한다. 호주에서는 부모가 이혼할 때 조차도 이런 질문은 안 한다. 우리가 이혼해도 너는 엄마 아빠에게 변함없는 일 순위이기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는 거라고, 설명한다. 한국 부모들은 정작 이혼할 땐 피해의 당사자인 아이들에게 쉬쉬하며 이 질문을 안 하고, 답변도 듣지 않아 오히려 아이의 혼란과 상처를 배가시킨다.
2. 이성친구에 대한 놀림
유치원 꼬마라도 이성친구를 만나면 어른들이 나서서 얼레리 꼴레리 한다. 여자 친구는 있냐? 커서 누구랑 결혼할 거냐? 아무개랑 뽀뽀라도 해라.. 등등 이상한 질문과 요구를 하면서 재미있어한다. 사소한 언행에 포커스를 맞춰 요즘 아이들은 조숙하다느니 귀엽다느니 얘기들을 만들어간다.
아이들도 여자 남자를 떠나 잘 맞는 친구들과 노는 것이고, 아이들이라고 해서 괜한 애정표현을 요구당할 이유도 없고, 먼 미래를 논할 필요도 없는데 확대 해석하며 즐거워한다. 어른들의 괜한 놀림이 아이들에겐 현재의 감정에 대한 혼란과 부담을 일으킴과 동시에 양성평등에 대한 편견을 어릴 때부터 심는 것은 아닐까 싶다. 아무 일도 아닌 아이들의 사사로운 우정을 할 일 없는 어른들의 웃음거리로 만들면 안 된다.
3. 말 안 들으면 경찰이 잡아간다.
한국 경찰이 할 일이 없나? 말 안 듣는 애들 납치하게. 아이들 잘못을 지적하고 가르치는 본질을 벗어나 괜한 협박으로 불안감을 심어주고 경찰 이미지만 안 좋게 되어 버렸다. 이런 소리 듣고 자라서인지 한국 사람들은 잘못한 일 없어도 경찰 보면 움츠러든다. 호주 사람들은 경찰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힘들 때 나를 도와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친근하게 다가간다. (2014/3/26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