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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Jul 01. 2021

전업주부의 '재취업'을 통해 바라본 호주 사회

합리적 효율적인 취업의 관문.

육아와 시골로의 이사를 이유로 근 5년을 전업주부로 살았다. 간간이 부업을 솔솔이 했지만 출퇴근을 정기적으로 하는 일은 아니었다. 아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도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서서히 들었지만, 온 천지가 목장뿐인 시골에서 내가 할 일은 무엇인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취직이 되었다. 재취업을 통해 바라본 내 주변과 사색을 정리해보겠다.


1.   아들이 다니는 학교를 나도 다니게 됐다.


난 과거지향적인 사람은 아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지나간 일들에 매달리지 않으려는 편이다. 그런데 아들을 초등학교에 보내고, 여러 이유로 학교를 드나들면서, 종종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세월도 많이 흘렀고 문화도 다른 나라에 살고 있으니 모든 것이 나 때와는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런저런 비교를 하며 상념에 젖다가 최종적으로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아!!!! 나도 다시 학교를 다니고 싶다.” 

학위도 졸업장도 다 필요 없으니 그냥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청강생으로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학교 생활이 너무 재미나 보였고 다른 아이들과 다른 선생님 다른 문화가 있는 학교를 나도 한번 체험해 보고 싶다는 소박하지만, 이루어져야 할 이유가 없는 허무맹랑한 꿈이, 이루어졌다. 나는 보조교사(Teacher Aid)가 되었고, 약간의 장애가 있는 아이를 개인적으로 돕기 위해 아들과 함께 등교(출근)하게 됐다.ㅎ


2.   호주 노동 시장의 탄력성은 이만큼.


주당 12시간 파트타임 근무였다. 일주일 중 4일 동안 오전에 3시간씩 근무하는 조건이었다. 가정주부가 부담 없이 일할 수 있는 환상적 조건이라 하겠다. 호주 노동시장에서는 잡셰어링 등을 통해 여러 형태의 근무 시간과 장소(집 혹은 사무실)등이 쌍방 간의 협의에 의해 개인적으로 조정된다. 나인 투 파이브, 사무실로 매일 출퇴근하는 개념은 급하게 사라지고 있다.

나는 교육과 관련된 전공을 하거나 경력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아들이 다니던 유치원과 학교 안팎에서 주관한 학부모 대상 여러 교육 세미나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충실히 쫓아다녔다. 아이 교육을 잘해보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내 개인의 배움의 즐거움 때문이기도 했다. 대체로는 무료였고 (때로는 학교에서 비싼 강사료를 지불했기 때문에 개인 지출이 없었다) 호주식 교육과 문화에 익숙지 못한 내겐 배울게 너무 많은 유용한 강의들이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자원봉사(Class helper)로 아들 학급에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가 수업을 지켜보며 선생님을 도와 진도가 떨어지는 아이들을 개별적으로 옆에서 지도했다. (나 말고도 3-4명의 엄마들이 교대로 수업에 참석해서 내 아이말고 남의 아이들 교육을 서로 도왔다. 이 모든 것들이 교육열에 불타는 극성 엄마로서의 일상은 아니었고,  앞글에서도 밝혔지만 다른 학부모들도 자기가 할 수 있는 봉사를 너나없이 열심히 하는 분위기여서 내가 유별난 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교장은 자격증도 없는 내게 보조교사 코스를 찾아 공부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권유함과 동시에 내년에 생길 가능성이 큰 일자리를 기꺼이 제안했다. 이력서를 쓰기도 전에 채용이 된 것이다. 뭐, 대단한 자리는 아니지만 뿌듯했다. 여기서 호주인들의 합리성을 눈여겨 볼만하다. 이들은 이력서에 기재된 학력이나 급조된 스펙보다는 지금 내가 필요로 하는 노동을 제대로 제공할 능력이 있느냐를 집중적으로 살핀다. 그러니 애엄마고 늙은이고 일할 생각만 있다면 언제든 재취업에 도전할 수 있고, 나름대로의 경쟁력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호주뿐만이 아니고 외국에서 취업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한국과는 또 다른 이들의 채용문화를 잘 파악할 필요가 있겠다. 호주의 경우는 경력을 중요시하는데, 이것이 부족할 시 관계기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일도 배우고 자신의 능력도 드러내고 인맥도 쌓는 것이 중요하다. 사내 채용 정보도 미리 접근할 수 있는 경우가 흔하다. 


3.   난 이 일을 정말 잘해보고 싶다.


난 사실 학교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내 성향과 다른 한국 교육 시스템으로 인해 학창 시절이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문제아는 아니었다. 모든 문제를 표출하지 않고 고분고분 참느라 나만 힘들었을 뿐이다.ㅜㅜ


나는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여러 문제아들을 만났는데, 이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다루어지는 것에 놀랐다. 감정적 폭력적이지 않은 교육적 이성적 접근 방식이 그랬다. 가령, 내가 맡게 된 4학년 아이는 정서적 신체적 학업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있는 장애 아동이었다. (생각해보면 내 학창 시절에도 이런 아이들 해마다 한 반에 한 둘은 있었던 것 같다. 여러 선생들이 돌아가며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패기나 했던 아이들. 누구를 원망한다기보다는 그 시대가, 사회가 참으로 무식하고 난폭하고 냉정했다는 생각이 가슴에 사무친다. 그때 그 아이들은 지금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그런데, 이 아이의 장애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심리학자가 4주에 걸쳐 수업에 들어왔고, (이 깡촌 학교로) 최종 분석 끝에 보조 교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났다. 학교는 지방 교육청에 지원금을 신청했고, 심사 후 기금이 조성됐다. 그에 따라 내가 채용된 뒤, 심리학자, 교장, 현재의 담임, 내년에 맡을 담임, 학생의 부모가 동참한 회의를 함께 했다. 아이의 상태, 교육 방침, 성취 목표 등등 여러 도표와 전문가의 의견까지 첨부된 두툼한 보고서가 오고 갔고 각자 자신의 입장과 할 일들에 대해 세세하게 의논했다. 아이의 엄마도 자신의 어려움을 나누고 학교와 어떻게 공조할 것인지 즐겁게 얘기했다. 그냥 이런 과정이 통째로 내겐 충격이었다. 문제 많은 한 아이를 제대로 키워보겠다고, 이 많은 인간들이 매달려 이렇게까지 심도 있게 고민을 하다니.


그 두꺼운 보고서를 들고 와 밤늦도록 밑줄 그어가며 읽고 있자니, 묵직한 사명감이 드는 것이었다. 나는 이 아이가 충분히 학교생활을 즐기며 좋은 추억을 친구들과 쌓아가고 제 속도에 맞춰 성장하기를 바라며 그걸 돕고 싶을 뿐이다. 이 아이를 돌보며 내 메말랐던 성장의 추억도 더불어 다듬어지지 않을까 싶다. (2012/11/30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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