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이란 무엇일까?.
지난해 아들은 동네에 있는 3살 반 유치원을 다녔다. 아침저녁으로 등 하원을 시키며 들여다본 유치원의 풍경은 한국의 그것과 비슷한 면도 다른 면도 있을 게다. 난 아이를 한국 유치원에 보내본 적이 없어서 간혹 세세한 비교는 어렵기도 하고 과거의 나 때를 떠올리자면 너무 까마득한 옛날이라 비교의 의미가 없을 거란 생각도 들곤 했다. 하지만 때로는 ‘잘은 모르지만 너무도 다르다’는 느낌을 아주 강하게 받을 때가 있는데 지난 크리스마스 즈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그런 일이 또 한 번 일어났다.
일 년을 마무리하는 학부모 회의와 18년 근무를 끝으로 사임하는 선생님 환송회를 겸한 자리였다. 아들이 하원 하는 시간에 맞춰 유치원에 갔더니 낯선 여인이 가구를 열심히 정리하고 있었다. 유치원 구조를 잘 아는 듯 이것저것 알아서 잘 꺼내오고 들여다 놓으며 능숙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며 ‘‘누구 집 엄마가 저리도 일을 잘하나?” 싶었다. 작은 동네에 사는 지라 이웃집 엄마들, 아들 친구네 부모를 대체로 다 아는 편인데 이 여인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곧이어 회의를 시작했는데, 원장 격인 유치원 선생이 이 여인을 장학사로 소개했다. 관할 지역 내의 8-10개 유치원을 총괄해서 관리 감독하는 사람이니 궁금한 거나 제안할 것이 있으면 나중에 하라는 설명과 함께. 헉.. 세상에!! 장학사라고? 아니 그런 여자가 와서 선생과 엄마 꼬마들 앞에서 일개 유치원 가구나 나르며 걸레질을 한단 말인가?? 장학사는 회의 시작 전에 가구 정리부터 음식 나르는 일까지 같이 했다.(회의 뒤 뒷정리도 손수 했다. 일손이 모자란 현장의 스태프들을 돕는 것이었다.)
곧 시작된 회의는 신속하게 본론으로 들어갔고 부모나 장학사나 허심탄회하게 제 주장을 주저 없이 했다. 사실 이 동네엔 단 한 개의 유치원이 있을 뿐인데 몇 년 전부터 일어난 출산 붐으로 인원이 늘어 시설 확충과 예산확보에 대한 갈등과 이견이 몇 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 정말로 다양한 의견이 있고 관에서 하는 일들이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마련이라 회의 때마다 분분한 토론이 끝도 없이 이어지며 서서히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중이었다. 정말 너나없이 할 말 다하고 사는 모습이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처럼 흥미로 왔다. 선생이든 장학사든 부모든 권위나 벽이 없고, ‘우리는 문제를 건설적으로 함께 해결하기 위해 모였다’'난 당신의 의견을 듣고자 여기에 왔다'는 대전제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각자의 입장을 먼저 세우며 격하게 논하면서도 분노와 앙금이 남지 않는 듯도 했다.
난 갑자기 까맣게 잊고 있던 장학사와 관련된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다니던 초중고등학교엔 간간이 지역 구청인지 서울신지 교육부 소속인지 모르겠지만 장학사가 탐방을 했다. 그때가 되면 교장 산하 선생들은 학교를 청소하고 환경미화다 꽃꽂이다 뭐다 정신이 없이 바빠졌다. 마룻바닥에 왁스칠을 하고 2층 유리창에 매달려 유리를 닦으며 대청소로 몇 날 며칠을 보내야 했다. 어쩌다 우리 반이 시범수업을 하도록 지정을 받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 갑자기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시청각 교재들이 교실로 날라져 오고 담임선생은 몇 번씩 수업 리허설을 했다. “내가 이 부분에서 질문을 할 테니 모두들 손을 번쩍 들어라. 그럼 나는 아무개를 지목할 것이다. 너는 이런 이런 답변을 해야 한다.” 등등의.
드디어 디데이가 오고 우리가 바짝 긴장해서 앉아 있으면 교실 뒷문으로 장학사와 교장 학부모 대표 등이 들어와 수업을 참관했다. 우리는 감히 뒤돌아볼 엄두를 못 낸 채 ‘시키는 대로 잘해야 된다.’란 부담을 안고 시선을 선생님께 고정했다. 평소에 찾아보기 어려웠던 열정과 친절로 선생님은 신나게 수업을 이끌었고 우리도 큰소리로 입을 맞춰 질문에 대답도 잘하고 발표도 또박또박했던 기억이 난다.
그냥 학창 시절의 재미난 에피소드로 떠올릴 수도 있을만한 추억인데, 오늘 갑자기 생각이 달라졌다. 나는 그때 그 교육의 현장에서 무엇을 배웠나? 란 질문의 답을 찾기가 두려워졌다. 난 그때 수업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과목이 무엇이었는지 조차 잊어버렸지만 그때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이 장학사가 아이들 앞에서 솔직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위선과 거짓, 권모술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자신의 성공을 추구할 것, 약자를 하대하고 마음껏 착취할 것, 강자에겐 숙이고 들어갈 것 등을 가르쳤다는 것을 지금까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선생이 아이들에게 평소와 다른 수업을 하려 할 때 교장은 실정을 뻔히 알면서도 그러라고 독려했고 (아님 미리 지시했던가) 장학사는 뻔한 교육 현실을 알면서도 눈감고 그들의 연기력을 채점하며 향응을 대접받았으리라.
요즘 신문을 보면 한국엔 정직한 사람이 없다. 특히 지도층이 썩었다. 세상엔 당하고 빼앗기고 헐벗고 아픈 사람들이 넘치는데, 가해자는 은폐되어있고 비호를 받는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사회가 이 런걸까?
난 교육 탓이라고 본다. 한 인간의 됨됨이가 가정을 통해 완성되듯이 한 사회의 됨됨이는 사회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배웠고 다들 그래서 문제가 되는 줄 몰랐다’는 한 교수의 하소연은 정말 진실했고 공감했고 통탄했다. 한 평생을 살아오면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웠는지 다음 세대에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심각하게 돌아보아야 할 때다. 법과 질서, 도덕과 양심이 웃음거리가 되는 사회엔 애초에 그런 가치를 철저하게 무시했던 죽은 교육이 있었던 거다. 지금 대한민국 교육의 문제는 어떻게 성적을 올리느냐에만 집중되어 있다.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 사회의 미래는 현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2011/3/8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