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기 Oct 05. 2021

호주 학부모들이 자녀교육을 위해 하는 일이란?

시골 초등학교,  기금 마련 모임은 이렇다.

호주 시골 작은 마을 스킵튼엔 전교생이 80명인 미니 초등학교가 하나 있다. 그 학교 발전 기금 마련 바자회를 동네 미술관에서 개최한다기에 찾아갔다. 학교 발전 위원회(주로 학부모와 교육에 관심 있는 마을 사람들로 이뤄졌다.)가 주최했는데, 주제는 ‘와인과 치즈의 밤’ (Wine and Cheese Night Fundraiser)이었다.


저녁 먹고 3살 아들을 재우고 (이곳 아이들은 주로 밤 7시면 취침에 들어가 부모의 밤 생활에 협조를 한다.) 100 미터쯤 떨어진 집 근처의 미술관에 걸어갔더니, 학부모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벌써 꽤 모여있었다. 2만 원가량의 입장료를 내고 와인 2잔과 무제한으로 다양한 치즈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 마을엔 생업으로 와인이나 치즈를 만드는 집이 여럿 있는데, 그들의 이름이 붙은 와인과 치즈를 맛보고 구매도 할 수 있도록 했다. 


지역 아마추어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작은 미술관은 오픈한 지 1년이 채 안되었는데, 5개의 작은 방마다 다양한 그림과 조각 등이 빼곡히 전시되어 있어 흥미로왔다. 와인잔을 들고 서성이며 그림을 보다가 이웃을 만나면 또 둥그렇게 모여 서서 그림이나 학교, 마을 발전 이야기 등을 주제로 얘기도 나누었다. 몰랐던 동네 예술가들도 만났다. 뒷집 아저씨가 그린 유화가 떡허니 벽에 걸려있거나, 옆집 아줌마가 만든 아담한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타일을 쪼개 모자이크로 장식한 테이블을 만든 작가는 맨날 길에서 마주쳤던 할머니여서 몇 번씩 놀랐다.

이 동네 산지 2 년이 다되어 가서인지, 아니면 마을 자체가 작아서인지, 이젠 아는 사람들이 꽤 있었고 할 얘기도 적지 않아 수다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옆집 아저씨가 스코틀랜드 백파이프를 불며 등장해 우리를 한자리에 모았다. 맨날 소몰고 다니던 아저씨인 줄 알았는데...

학부모 대표 엄마의 당당한 자태.

120여 명의 사람들이 빽빽이 선 가운데, 위원회 대표의 인사와 함께 오늘 행사의 주목적인 경매가 시작됐다. 주최 측이 미리 섭외한 전문 경매사(그 또한 무료로 진행을 하며 재능기부를 했다.)가 다양한 물건들의 주인을 찾아 나섰다. 학교발전에 뜻을 같이 한 사람들이 기증한 것들이 대부분인데, 동네 예술가들의 아트 작품이 있는가 하면, 슈퍼마켓에서 기증한 세탁비누, 정육점이나 꽃가게에서 제공한 2-3만 원가량의 상품권 등이었고 근처 소도시의 극장과 박물관은 입장권을 몇 장씩 기부했다. 또 집에서 안 쓰는 정원용 호스, 자전거 헬멧, 티셔츠 등 잡다한 물건들을 기증한 이들도 있었다. 


웃음이 넘쳐났고 화기애애했다. 경매사의 능력도 출중했고 사람들도 재미 삼아 경쟁을 하다가 오히려 시가보다 비싸게 무언가를 사곤 했다. 그래도 그 돈이 마을 학교를 위해 쓰인다니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지갑을 여는 분위기였다. 우리도 박물관 입장권 두장을 적당한 가격에 손에 넣었다. 

흥미로웠던 건, 그 사사로운 물품과 기증자들을 죄다 프린트해서 안내지로 나눠줬다는 것이다. 30만 원이 넘는 그림을 기증한 자부터 집에서 안 쓰는 커피잔 두 개 기증한 사람까지 일일이 열거했다. 또 동네 와인업자는 와인을 팔면서 판매액의 33%를 학교에 기증할 거라는 안내도 했다. 30도 40도 아니고 33%를 기증하겠다는 산출 근거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분명하고 정확하게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누가 무슨 일을 했는지에 대한 감사도 분명히 했다. 장소를 제공한 이뿐만 아니고 홍보나 섭외를 위해 뛰었던 사람들, 혹은 바에서 와인을 따라주며 두어 시간 봉사 한 학부모 이름까지 빠짐없이 프린트해놨다. 생색을 낸다기보다는 서로 고마워하며 손뼉 치고 격려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인지, 엄마들이 열성적으로 나서서 뛰어다녀도 왠지 극성스러운 치맛바람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순수 공정 투명하게 공익을 위해 일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학교 선생님들과 교장 선생님도 있었는데, 권위도 눈치도 필요 없이 그냥 편하게 학부모들과 섞이고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이었다. 끗발 있는 부모가 좌지우지하지도 않고, 눈먼 돈 검은돈이 음흉한 목적으로 오고 가지도 않는 학교 발전 모임이 참으로 건전했다. 이런 작은 모임조차도 원리원칙대로 깔끔하게 일처리 하는 이곳 소시민들의 사소한 능력이 대단해 보였다. 

경매는 끝나고 주최 측이 푸짐하게 야식을 한상 차렸는데 밤 10시였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미술관을 나섰다. 베이비 시터(부모가 외출 시 아기 봐주는 이를 찾게 되는데 믿을만한 이를 구하기가 쉽지 않고 푼돈이 나갈 수 있다. 다행히 요즘은 옆집 엄마랑 한 번씩 품앗이를 한다.)와 약속한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기 아이도 일찌감치 재워놓고 혼자 우리 집 거실에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게 전부지만 그래도 덕분에 우리 부부는 모처럼 조촐한 외출을 할 수 있었다. 

다음날 듣자 하니 이 모임은 새벽 1시가 돼서야 완전히 끝났다고 한다. 학교발전이라는 좋은 목적 아래 마을의 예술가들과 학부모 또 다른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와인 한잔 기울이며 시간을 나눴던 즐거운 밤이었다. (2009/10/26 씀)  




이전 24화 너무도 투명했던 호주 유치원 장학사를 보면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