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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Jun 03. 2021

호주 '타인의 아이를 대하는 방식'

남의 아이를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는 무엇일까?

지난달 한국 여행을 하면서 새삼 문화 차이를 느꼈던 것 중 하나는 ‘타인의 아이를 대하는 방식’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종횡무진 돌아다니면서, 버스 기차 택시 지하철 등을 타거나 붐비는 거리를 걸으면서, 혹은 식당에 들어갔다가, 내 아이에게 보이는 사람들의 반응들로 인해 놀랄 때가 몇 번 있었다. 이유를 세 가지로 요약하자면,


첫째, 사진을 찍는다.

둘째, 먹을 것을 쥐어준다.

셋째, 만지고 지나간다.


예를 들어 보겠다. 인사동에 놀러 갔는데, 주변에서 자기들끼리 사진을 찍고 놀던 10대 여자 아이들이 아들을 보더니 예쁘다며 사진을 찍겠단다. 기분이 흐뭇해져서 ‘별 생각’없이 그러라고 했더니, 독사진도 몇 장 찍고 자기들하고 같이도 찍고 하며 즐거워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별 생각’이 들었다. 호주에서는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 아들의 미모가 호주 기준으로 봤을 때 떨어져서가 아니라 (ㅎㅎ 매우 주관적인 견해지만) ‘초상권’은 함부로 침해하지 않는다는 의식이 확고해서 거리에서 만난 낯선 아이를 사진 찍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호주 학교에서 학부모에게 초상권 동의 요청을 위해 보낸 통신문을 받았는데 내용인즉슨, ‘학교에서 수업하는 모습을 촬영했는데, 귀하의 자녀 얼굴이 구석에 있다. 이 사진을 학교 홍보 팸플릿에 넣을까 하는데, 동의를 구한다. 1. 절대 쓰지 말라, 2. 교내용으로는 쓰되 교외용으로는 불허한다. 3. 교외 용도 괜찮다. 등등으로 세분화되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자식 얼굴 넣어주면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이 사람들에게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요즘처럼 SNS나 인터넷이 활성화되어 있는 현실 속에서 그 사진이 오용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었다.




그 소녀들은 고마웠는지, 잠깐 어디로 사라졌는가 싶더니 애들 손바닥만한 왕막대 사탕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아들은 좋다고 받아 들고 그 자리에서 쭉쭉 반도 넘게 빨아먹었다. 에고, 난 사탕 잘 안 주는데… 다시 뺏을 수도 없고...


한 번은 친척들과 갈비탕집에 밥을 먹으러 갔다. 그동안 아이가 바쁜 일정을 쫓아다니면서 밥은 안 먹고 주전부리만 늘던 차에 국밥 한 그릇 같이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문을 받아간 주인장이 갑자기 제과점 빵을 들고 나타나셨다. '우리 손자가 좋아하는 거'라며 아들에게 쥐어 주셨다. 밥을 먹일 마음이 컸지만 웃으며 감사하게 받았다. 아들, 이거 먹느라 밥 안 먹었다.;;


호주에서는 남의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 줄려면 일단 엄마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아이가 알레르기나 건강을 이유로 음식물을 가리는 경우일 수도 있고, 음식량이나 식사시간 식사방법 등은 엄마들이 알아서 할 일이기  때문에 제 3자가 특히 우연히 처음 만난 사람이 먹을 것을 건네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하철을 타면 옆에 앉은 분들이 아이 손도 잡고 머리도 쓰다듬고는 하며 말을 붙인다. 좋게 생각하며 웃고 대답했지만, 이것도 호주에서는 해서는 안될 일이지 싶었다. 내가 아는 호주 엄마는 친삼촌이라도 자기 세 살배기 딸을 만지거나 안거나 무릎에 앉히거나 하는 일들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편이 전에 학교에서 일할 때, 학생들을 위한 방과 후 파티를 준비하면서 중1쯤 되는 남학생 하나랑 학교 앞 슈퍼에 차를 타고 장을 보러 갔다. 그걸 본 동료 선생님이 ‘앞으로는 오해를 살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라. 남녀를 불문하고 학생은 반드시 2명 이상과 동행하라’고 조언했단다. 남편도 이런 이슈에 워낙 예민한 사람인데  ‘여학생이라면 절대 혼자 데리고 가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남학생이어서 별생각 없었는데 이마저도 조심해야 하는 거였구나’고 했단다. 미성년 남학생도 성추행 등을 당할 수 있는 약자이고, 그 학생이 혹시라도 어떤 모함을 할 때 증인도 없으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각자가 알아서 조심할 수밖에 없다. 마이클 잭슨도 아동 성추행 혐의를 벗기 위해 (혹은 보상금으로?) 수백억 원을 쏟아붓지 않았는가!



호주에 처음 와서, 남의 아이 함부로 만지지 마라, 먹을 것 주지 말라, 주고 싶으면 반드시 엄마에게 물어본 뒤 주라 등등을 배웠을 때, ‘이상하다, 참 다르구나’ 싶었는데 어느새 나도 그 문화에 편하게 익숙해져서 한국에서의 경험들이 오히려 새롭게 다가왔다.

꼭 이것이 좋다, 무엇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양쪽 문화마다 이유가 있을 것이고 장단점이 있는 것이다. 다만 지구 저편에는 생각을 전혀 다르게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고, 나에겐 상식적인 것들이 남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 해외에 나가거나 외국인들을 가까이서 접할 일이 있을 때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는 것이 개인적으로 안전하지 않겠는가를 말해주고 싶을 뿐이다.


호주 혹은 영미권에서는 아이를 보면 가볍게 미소를 짓거나 '귀엽다' 한마디 해주는 정도가 타인의 아이에 대한 최선이라 생각한다. (2009/7/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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