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기 Jul 30. 2021

호주에서 '성범죄자'로 오해받을 수 있는 사소한 행동

남의 아이를 오래 쳐다본다면?

“영국선 아이를 오래 쳐다보지 마세요” http://news.donga.com/Inter/3/02/20101123/32788962/1란 모 신문 기사를 읽었다. 야구하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귀여워 운동장 밖에서 웃으며 쳐다보다가 지도교사로부터 ‘당장 이곳을 떠나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글이다. 이 글을 읽다가 사태의 시급함을 발견해서 서둘러 몇 가지를 지적해볼까 한다. 이것은 단순히 문화의 차이로 웃으며 지나갈 만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글을 읽기 전 먼저 이 기사를 보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될 듯하다.


호주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난 당연히 호주인들의 육아법을 이해했고 그 문화를 대체로 따랐다. 이전 글 몇 개를 통해 두 문화의 육아 차이법을 언급했고 타인의 아이를 만지거나 먹을 것을 주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도 지적한 적이 있다. 나는 이런 것들을 그저 문화의 차이라고 여기며 새롭게 배우고 따르자는 정도였는데 최근에 겪은 어떤 일로 생각이 많이 달라지게 되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 아동 성범죄 전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노부부는 수년 전 이 조용한 시골 마을로 이사 와서는 죽은 듯이 살아왔다. 얼마 전 우연히 그들을 만났고 마을 안의 어느 모임에 참석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연약하고 따뜻한 부인은 남편을 돕고 싶어 했다. 성범죄 전과가 있지만 모범적 수감생활을 해서 일찍 풀려났고 지금도 일을 새롭게 찾아 시작하는 등 갱생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는 거였다. 그 깊은 사연은 일일이 몰랐지만, 마음이 찌릿해져 할 수만 있다면 도와주고 싶었다. 남편은 아직 보호감찰 상태였다. 몇 달 뒤면 이 기간마저 끝난다며, 다시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하고자 했다.


호주에서는 성범죄자의 경우 보호감찰 기간 동안 사회적 활동을 하거나 모임에 참석하거나 할 경우 일일이 담당 경찰에게 보고를 해야 한다.  또 자신의 전과를 완전히 숨기고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 즉 새롭게 직장을 잡거나 어떤 모임에 참석을 하고 싶은 경우 그 조직의 리더에게 자신의 전과를 알리고 그 리더가 상황을 파악한 뒤 가부를 결정하는 식이다. 그때 리더는 담당 경찰에게 전화를 걸어 범죄전력을 조회할 수 있고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어떤 이유로 극비리에 진행하는 상황들을 내가 감지하게 됐다. 그런데 담당경찰로부터 들은 그의 범죄전력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세 번의 전과가 있는데 6-13세 사이의 소년이 그 대상이었고 그중 두 번은 가족 내 범죄(자신의 손자)였다는 것이다. 갑자기 평화롭던 이 시골 마을이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밀어 던져지는 것 같았다. 내 아이는 안전할까? 그 사람은 정말 다시는 안 그럴까? 한편으론 죄의 대가를 치르고 나온 이에게 다시 돌을 던지는 것이 공정한가?


이 분야에 밝은 변호사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는 매우 신속하게 이메일을 보내왔는데, 그걸 읽으면서 내 우려가 개인적 근심으로 그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에 의하면, 성범죄자들은 다른 범죄자들과는 다르게 반복적 중독적으로 범죄를 저지른다는 거다. 이미 세 번의 전과가 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징조고 아동 성범죄는 드러나지 않고 묻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아동이 너무 어려 모르거나 가족 내 범죄일 경우 신고를 안 하거나) 그 정확한 범죄 회수는 알 수도 없다.      

 

그가 현재 모범적 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그루밍(Grooming) 일 수 있다. 난 이 단어의 뜻을 몰라 사전을 찾아보니, 대체로는 어떤 경우를 대비해서 준비하고 단장한다는 긍정적인 뜻으로 많이 쓰인다. 하지만 이 경우엔 범행 대상 물색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아동 성범죄는 안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일어난다. 범죄자들은 꼭 의도하고 그러는 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좋은 인상을 주려고 가족이나 이웃들과 수년을 가까이 어울려 지내다가 어느 날 휙 하고 그 집 아이를 해친단다. 그래서 어디까지를 좋게 보고 위험하게 볼지 선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 그러니 잠재적 위험을 막기 위해 모임 참석을 불허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이었다. 만일 이 사람이 의견을 따르지 않고 끝까지 모임에 참석하겠다고 하면 경찰에 ‘접근 금지’ 요청을 할 수 있다고도 했다.


난 이번 일로 고민을 거듭하면서 이것이 과대 방어나 확대해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호주에선 학교 선생은 물론이고 소아과 의사 스포츠 코치 상담사 등 아동과 접촉하는 모든 직업인들은 자신의 범죄기록(Police check)을 담당 기관에 제출해야 한다.

통계를 보자면(윗 기사에서 언급한) 서방세계의 아동 성범죄 수는 어마어마하다. 어떤 이는 말한다. 서양인은 타락해서 아동 성범죄를 더 많이 저지르는 것 같다고. 난 절대로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문화가 다른 한국이나 아시아에도 성범죄는 만연하다. 단지, 사회문화, 법, 제도 정비가 미비해서 걸러지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여긴다. 아동 성범죄는 세계 어디에서나 조심해야 할 일이다.


내가 이렇게 열변을 하는 이유는 위 기사에 등장하는 한국사람이 선한 마음으로 웃으며 아이들을 보다가 지도 교사로부터 떠나라는 요청을 받고 “자신은 학교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길가에 있으며 그것도 남자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이 도대체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항변했다.” 는데 있다.

 

안타깝게도 전형적인 성범죄자가 하는 행동(grooming)이 이런 것들이기 때문이다.

 

1.    관련 없는 아이들을 멀리서 바라본다. -> 정당하다면 운동장 안에 들어와서 관계자에게 신분을 밝히고 허락을 받은 뒤 경기를 볼 수 있다.

2.    여자도 아닌 남자아이들을 바라보는데. -> 남자라도 아이들은 약하다. 폭력을 이길 수 없다. 실제로 남자아이들이 피해의 대상이 된다.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가 서구만큼 만연하지 않다는 이유로 결백을 주장하고 싶어 하는데 남아 성폭력은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난다. 못 믿겠으면 통계를 찾아보라!

3.    낯선 이방인이라는 것. ->그 학교나 마을, 아이들과 안면도 관계도 없는, 게다가 처음 보는 이민자 (이것은 인종차별이나 이민자 무시와는 종류가 다르다. 당신을 아는 자가 그 공동체 안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문제다.)

4.    아이들을 보호하겠다는 담당 교사에게 오히려 항변을-> 사실, 이 사람 경찰서에 끌려가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한다.

 

이런 일이 내가 사는 동네에서 생겼다면 내가 아는 대부분의 엄마들, 선생들은 경찰서에 신고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 나는 이들 편에 설 것 같다. 왜?

1)    길 가는데 어느 여인이 멋진 명품 백을 들고 간다. 멋있어 보여 좀 따라다니며 들여다봤다.

2)    백화점에서 누군가의 손 위에 빛나는 다이아를 봤다. 너무 예뻐 좀 보려고 ‘아름답다’고 웃으며 칭찬하고 좀 보고 싶다고 했다.

 과연 그녀들이 당신의 행동을 좋아했을까? 강도로 오인받거나 따귀라도 한대 얻어 맞거나 경찰서로 불려 가지 않을까?

 

세상에 널려있는 그 흔한 아이들은 이런 것들보다 훨씬 귀하고 값어치가 있다. (이것을 부정할 부모 있는가?) 게다가 쉽게 상처 날 수 있고 한번 받은 상처는 잘 아물지 않기도 하며 평생을 아파하기도 하는 연약한 존재들이다. 생각 없이 손대고 넘보면 절대! 절대! 안 된다. (2010/11/23 씀)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연약하고 소중하다.


이전 14화 호주식 ‘파티’와 한국식 ’ 잔치’의 차이점 4가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