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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Sep 02. 2021

한국 vs 호주 ‘가족 범죄’를 다루는 자세.

가정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할 때 사회가 할 일은?

내가 사는 시골 마을에 중학생 남매를 키우는 조용한 싱글맘이 있었다. 따로 친분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동네에서 한 번씩 마주치면 웃고 인사를 하곤 했다. 그러다 얼마 전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그녀가 자녀들에게 폭력을 행사해 아이들이 별거 중인 아빠에게 돌아갔고 그녀는 더 이상 자기 자녀를 마음대로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깜짝 놀랐다. 이곳에서 남편이나 파트너(동거남)와 별거나 이혼을 하여 자녀를 혼자 키우는 일이란 매우 흔하여 그녀의 상황을 따로 눈여겨본 적이 없기도 했고, 그녀는 특히나 조용하고 얌전한 모습으로 늘 마을에서 마주쳤기 때문이다. 그녀가 얼만큼의 폭력을 행사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골프채를 휘두르는 류의 폭력은 아닌 게 확실하다. 만약 그랬다면 그녀는 자녀와의 격리뿐 아니라 사회와 격리되어 감옥에 들어가 있을 테니까. 


그런데 그녀는 헤어진 자녀를 몹시 보고 싶어 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였다. 복지청에 요청을 했더니 6명의 보증인을 리스트로 작성해 오라고 주문했단다. 엄마와 자녀들의 일정한 만남을 허락하되 반드시 보증인이 그 자리에 동참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은 것이다. 그 보증인은 자녀와 부모 양측이 신뢰하고 인정을 하는 사람들로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 혹은 사회복지사나 상담사 목사 등 사회적 인지도가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보증인이 이들의 관계에 크게 간여하는 것은 아니고(실제 책임지고 간여하는 복지사들은 따로 있다.) 안전을 위해 그 자리에 함께 있는 정도이다. 가령 간만에 만난 엄마와 자녀가 영화를 보러 가면 뒷좌석에 같이 앉아있는다거나 혹은 집에서 만날 때 그들도 한자리에서 저녁을 먹기도 하고 얘기도 하고 하는 식이다. 그녀는 6명의 보증인을 찾아다니느라 분주했다.


간혹 한국의 부모들이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문화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 폭력을 휘둘렀다가 자기 자식을 만나지도 못하는 억울하고 한심한 신세가 됐다는 뉴스를 듣곤 한다. 또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미 교육을 받아 부모가 폭력을 쓰면 바로 경찰에 신고를 해버린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란 생각을 많이 했고, 안타까운 부모의 심정을 먼저 헤아리고는 했는데, 살아볼수록 생각이 달라진다. 세상엔 상식적이지 못한 혹은 위험한 성인이 많고 그들도 줄곧 가정을 이뤄 자식을 낳는데, 그들 자녀가 이런 부모들로 인해 고난을 겪을 때, 불운한 운명이라든지, 더러운 팔자 탓 만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호주에서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가정'(Disfunctional family)이란 표현을 흔하게 쓴다. 이 한 단어 속엔 복잡하고 다양한 가정 문제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언제든 필요에 따라 사회가 그들 가정 문제에 개입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정의 테두리는 견고하여 그 안의 구성원에게 최고의 안전과 평화와 사랑을 제공하고 유지돼야 하지만 그 기능이 역행할 땐 사회적 간섭과 조정 중재(Social intervention)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폭력을 신고 받고 출동한 경찰도 “이 여자는 내 마누라요.” 하면 “ 아, 그랬어요?” 하고 철수하고, “내 자식이요” 하면 “에혀, 어련하면 이러실까…” 하고 돌아 나오는 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 한국 사회엔 유달리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범죄가 많다. 이를 단순히 유교적 가치의 붕괴쯤으로 여기고 땅에 떨어진 도덕만 탓할게 아니라 사회적 중재가 필요한 가정과 관계에 사회가 어떻게 끼어들 것인지에 대해 심각히 고민하고 적당한 복지 서비스를 마련해야 한다. 가정 구성원의 육체적 정신적 물리적 심리적 정서적 안전은 가정과 사회에서 공동으로 풀어나가야 할 문제이다. (2012/03/21씀)


모든 아이들이 안전한 가정에서 자라는 것은 아니다. 모든 부모들이 자식에게 최선을 다하지는 않는다. 안타깝게도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가정은 어느 나라든 흔하게 있다. 문제가 바닥을 치기 전에 사회가 이들을 구제하는 정교한 복지 시스템을 시급히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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