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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르미 Apr 09. 2021

'나의 아저씨'를 혼자 보고
아저씨는 질질 울었다

'개저씨'라도 괜찮아. 잘하고 있어.

  오프라 윈프리의 책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에 나오는 이야기란다(사놓고 안 읽어서 누가 말하는 걸 들었다). 외도한 남성 5명을 게스트로 초대했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전부 자기 와이프보다 외모도 학력도 재력도 떨어지는 여성들과 불륜을 저질렀다는 점이었다. 이유를 물으니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아내가 주지 않는 인정을 그 여자는 주었습니다.'


  불륜을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못된 놈들이다. 그러나 남자는 칭찬과 인정에 목마른 존재다. 그의 독점욕과 질투는 그러한 인정 욕구에 기인한다. 끊임없이 여러 방식으로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면서 성취감을 얻는다. 이러한 시도는 곧잘 비뚤어지기도 해서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하고 엉뚱한 관계를 추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찌 남자만 그러겠는가. 모든 사람에게는 칭찬과 인정이 중요하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랑. 내 편이 되어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로 인해 사람은 힘을 얻는다.




  "나의 아저씨(tvn,2018/넷플릭스)"를 보았다. 드라마 볼 힘도 없어서 애국가 나올 때까지(비유다. 요새는 공중파를 잘 안 본다.) TV 틀어 놓고 소파에서 자버리는 아저씨가 이 정도 열정을 갖고 본 드라마도 흔치 않다. 1편의 선정성과 폭력에 놀라며 잠시 멈추었지만, 2편부터는 그야말로 빨려 들어갔다.


  꺼이꺼이 통곡했던 장면은 이선균 님이 맞고 돌아왔을 때이다. 아지트였던 술집에 모여있던 형과 동생은 맞아서 팅팅 부은 둘째의 얼굴을 보며 분노를 폭발시킨다. "누가 우리 형(동생) 때렸어! 어떤 X 끼야!" 외치며 밤거리를 누비는 속칭 '개저씨'들을 보며 나는 그렇게 서럽게 울었다. 한 많은 이 세상.


  그리고 아저씨는 깨달았다. 아, 우리에게는 편들어 줄 사람이 필요하구나. 잘못했어도 잘했다고 해줄 사람. 실수해도 괜찮다고 해 주는 사람.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도, 그냥 지금은 미운 사람 욕을 같이 해 주는 사람. 


  결혼 초 아내가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면, 도덕주의자였던 남편은 말했다. "그거 모르고 그렇게 했어?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그런 걸 견디겠다는 뜻이야." "당신이 더 수준이 높으니까 당신이 참아." 이 말 액면 그대로는 아니지만, 아내에게는 그렇게 들렸을 얘기를 딴에는 위한답시고 쏟아내었다.


  얼마나 미웠을까. 편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이 살아보니 그 마음을 알겠다. 전부 탓하는 사람만 있고 내 편은 없는 게 얼마나 힘든지.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얼마나 사무치게 힘든 것인지.


  그런데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들어서 우리는 서로의 편이 되어주기를 거절한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후벼 판다. 시쳇말로 서로에게 꼰머가 되고 10선비가 되어 가르치고 통제하려고 한다. 성취도에 상관없이, 마음은 점점 닫혀간다. 영혼의 교감 없는 실무적 대화가 이어진다. 자녀는 눈속임을 배우고 부부는 서로 다른 데서 스트레스를 풀기 시작한다.


  '남자는 팩트를, 여자는 공감을.' 틀린 말이다. 남자건 여자건 '나에게는 공감을, 너에게는 팩트를.'이 대부분의 경우였다. 그런데 살아보니, 너와 내가 함께 살려면 이 기준을 뒤집어야 했다. '나에게는 팩트를, 너에게는 공감을.' 그러면 스스로는 객관화가 좀 되고, 너는 나를 필요로 하고 인정해 주었다.




  아저씨는 영화 "극한직업"을 보면서도 꺼이꺼이 울었다. 그렇게 무시당하던 마약반 형사들이 사실은 전부 한가닥 하는 사람들이었다는 소개가 나올 때, 아저씨는 울었다. 무시당하고 원망만 들으면서 사는 삶이 서러워서 울었다. 언젠가는 나도 '내가 누군지 알아. 나 이런 사람이야.' 주장하지 않아도 누군가 나를 알아주는 날이 올까.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아저씨는 먼저 사랑하는 여자를 편들어주기로 했다. 남편이 아니라 아내 편이 되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살아나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이제 우는 날보다 웃는 날이 더 늘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나를 나로 봐주는 존재'가 필요하다. 그래야 숨을 쉰다. 


  자꾸 괜찮다고 하지 말고 잘난 척도 좀 하고, 예쁜 척도 좀 하자. 티 내면서 사랑하고 부담스럽게 사랑받으면서 살자. 미친 척 여행도 가고 선물도 사자. 지금 외롭다면 더욱 그렇게 하자. 그래야 살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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