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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르미 May 18. 2021

남자의 입은 마음의 자물쇠다

말만 잘하는 사람과 사는 법, 말도 못 하는인간과 공존하는 법

  "사랑하면 좀 말로 표현해 주면 좋겠어. 말을 안 해."

  "언니, 우리 집에 있는 인간은 말만 잘해요. 미치겠어요. 화가 나서 차라리 입을 꿰매버리고 싶어요."


  성급한 일반화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여성보다는 남성 쪽이 비교적 관계를 맺는 방식이나 의사소통이 서투른 편이다. (물론 모든 남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남자는 원래 그러니까 이해하고 용납하라.'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평생에 걸쳐, 혹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유구한 시간 동안 DNA에 새겨진 습관이기에 하루아침에 좋아지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그 이유는 조물주가 남자는 흙으로 만들었고, 여자는 뼈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다. 아무렴. 그럴 거야. 원래 시제품은 좀 그래.


  그래도 함께 오늘을 살기 위해, 말이 안 통해서 숨이 쉬어지지 않는 분들을 위한 글이다. '꾸역꾸역'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꾸역꾸역' 읽어보자. 살아보자.




  사실 이것은 '말을 하는 법'의 문제라기보다는 '마음을 여는 법'에 관한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우선 남중, 남고, 남대(공대), 군대에 대학원마저 남성 비율이 99% 정도 되는 곳을 졸업한 필자를 예로 들면서 그런 남자들이 왜 '의사소통 고자'가 되었는지에 대해 (거듭 말하지만 모든 남자가 그런 것은 아님) 생각해 보자.


  남자들이 별문제 없이 남자들끼리 있을 때에는 공감이나 소통 능력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다. 마음을 열지 않아도 일상생활에 아무 문제가 없다. 요즘은 좀 달라졌다지만 라떼는 남자들끼리 커피숍에 가서 앉아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공대 앞은 술집이나 당구장, PC방은 잘 되고 유독 커피숍은 잘 망했다.


  대학 시절,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가 패거리 중 누군가 단체 문자(카톡이 없던 시절이다.)를 보낸다.


  "밥" 


  그러면 늘 모이던 시계탑 앞으로 집결한다. 어느 식당으로 가는지라도 좀 문자로 보내주면 좋으련만 (보내봤자 학식 1, 학식 2, 이런 단문이었지만) 보통은 안 오면 두고 간다. 늦으면 얄짤 없다. 남자들끼리 가는 길에 별 말이 없고, 먹을 때도 말이 없다. 다 먹고 나서야 조금 말한다. (이 글의 제목 그대로이다. 소름.)


  그러나 남자들끼리도 대화가 길어지는 찰나가 있다. 스포츠, 게임 등(요새는 주식) 자기 흥미 본위의 대화를 할 때이다. 누군가 자신의 취미나 취향을 알아주기라도 하면 그때부터 남자의 공감능력과 소통능력은 상한가를 때린다. 이것은 물론 남자만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남자들이 더 그런 편이다.


  그래서 결혼 초 부부들의 경우를 보면, 흔한 남편은 '우리 사이에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 그보다 중요한 게 얼마나 많은데.'라는 느낌으로 살아갈 때가 많다(내 남편이 안 그렇다면 브라보. 상위 10%와 살고 계심.). 그럴 때 여성은 '나(우리의 관계) 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그게 말이야 방귀야.'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얼마 전 '1호가 될 수 없어.'라는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박준형 씨와 개그우먼 김지혜 씨의 에피소드를 보았다. 하루 종일 게임을 하려 하는 남편을 향해 속 터져하는 아내의 이야기였는데 아마도 설정이었을 것이다. 진짜 현실 부부는 그런 문제로 싸우면 그보다 훨씬 더 살벌하게 싸운다.


  박준형 씨는 굉장히 내성적이란다. 개그맨 중에 그런 분이 많다고 한다. 정해진 롤을 대본을 따라 연기하는 것은 탁월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만큼 못하는 것이다. 그걸 잘하려고 저걸 못하는 서투른 남자. 흔하다. 아마 화면에서 보이는 모습과의 차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내 남편이 밖에서 남들에게는 잘하는데 집에서는 못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그런 그가 함께 게임하는 사람들(오프라인으로는 처음 만남)과 하는 정모에 참석해서 장장 6시간을 떠들고 왔다고 한다. 그 후로 엠티도 두 번이나 다녀왔다고. 이것이 남자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지만.




  성경에 이런 글귀가 나온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은쟁반에 금사과 같다." 경우에 합당한 말을 잘하는 사람과 살면 참 좋겠다. 그러나 말만 잘하는 사람이라면 사실 그것이 더 큰 상처와 절망으로 이어질 때도 많다.

 

  말솜씨는 쉽게 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진심을 전하는 법, 내 마음을 표현하는 법,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주는 법, 이런 것은 살다 보면 늘게 되어 있다. 시간이 필요하다. 특별히 서로 사랑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힘들다 보니, 사실 서로에게 기회를 많이 주지 않는다.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을 사랑하기 어려워한다. 반대로 말만 잘하는 사람을 사랑하기도 힘들어한다. 이래 저래 사랑은 원래 어렵다. 그러면서 공감할 기회를 놓치고, 서로 마음의 문을 닫는 것에 익숙해져 간다.


  기다려 보자. 그의 흥미가 내가 될 때까지 공감하며 기다려 주자. 따뜻한 밥상은 집 나간 정신이 돌아오는 무대다. 무대를 마련하자. 충분히 일하고, 충분히 놀고 들어와 해맑게 밥을 먹으며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걸 들어줘 보자. 아마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기에게 밥을 차려주고 마음을 들어주는 한 여자의 포로가 될 것이다.


  (이 정도면 된다. 칠첩 반상도 필요 없고, 고기만 있으면 됨.)


  남자의 입은 마음의 자물쇠다. 우습게도 열쇠는 밥이다. 어쩌면 이렇게 단순할까 싶은데, 그렇다. 물론 그 밥 한 그릇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밥하는 게 어려워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안다. 마음이 쉽지 않다.


  약간의 지혜가 필요한데, 고마움을 느끼게끔 주어야 한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명대사는 이 경우에 아주 적실하다. 안 주려면 모르지만 줄 거면 팍팍 티 나게 주는 것이 좋다. 그 정도 해야 아주 조금 알아듣고 뭐라도 하기 시작한다. (맛있는 걸 해주면 괜히 안 하던 청소를 하고 형광등을 가는 남편을 보셨다면 빙고.)


  여자가 남자에게 밥을 차려줘야 한다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왜 밥상에서 의사소통 고자들의 마음이 열리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보통, 여성들은 일도 하고 마음을 나누는 소통도 동시에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흔한 남자들은 밖에서 마음은 닫고 일만 죽어라고 한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도 코밑이 열려야 조금 후에 마음이 열린다.


  거기까지 가는 길은 쉽다면 쉽고, 험난하다면 험난하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안 가는 것보다 훨씬 남는 장사다. 부부 상담받고 어쩌고 하는 것보다는 돈도 시간도 덜 들고. (받아봐서 알지 말입니다.)


  말 못 하는 사람에게도, 말만 잘하는 사람에게도, 마음을 주자. 내가 받고 싶은 것을 먼저 줘 보자. 꾸역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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