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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르미 May 14. 2021

남편을 움직이게 하는 비법

바보 온달을 키우는 평강공주의 마음으로

  "내가 너에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할 것이니, 너는 고통을 겪으며 자식을 낳을 것이다. 네가 남편을 지배하려고 해도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


  태초에 선악과를 먹었던 아담과 이브에게 조물주가 내렸다는 벌이란다. 여자는 존경할만하지 않은 남자를 따르며 살아야 하고, 남자는 다스려지지 않는 여자를 다스리며 살아야 한다는. 참으로 절묘한 저주다. 


  고통스럽게 애를 낳고 키우는 것 이상으로, 소위 '평생 장가도 안 가는 큰아들'인 남편을 '키워야 하는' 고통은 평강공주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여성의 숙명이다. 모든 남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는 바보 온달이 생각보다 많다. 그 숙명을 조금 편히 짊어질 방법은 없을까.




  인간은 스스로 신이 되려는 욕구를 어느 정도 이룬 것으로 보인다. 본능적으로 상황을 통제하고 타인을 지배하려고 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최근 화제가 되었던 '가스 라이팅'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렸을 때부터 본능적으로 배우는 인간의 덕목 중 하나이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우는 것도 부모를 움직이게 만들기 위한 행위이다. 너무 이성적인 분석인가? 등에 센서라도 달렸는지, 바닥에 눕혀 놓기만 하면 우는 새벽 세시의 갓난아기를 안아본 부모라면 공감할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지배와 피지배의 구도를 형성하고 유지 발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의 바보 온달들은 본능적으로 쉽게 지배당하기를 거부한다. 우리의 기성세대들은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유교적 프레임으로 그것을 부추기기도 한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애가 똥을 싸러 간다고 하면 그냥 부모 중 형편 되는 사람이 화장실을 데려가면 된다. 그런데 왜 꼭 아빠가 데리고 가려하면 어른들로부터는 '아버지 식사하시는데, 쯧. (엄마가 알아서 해야지.)'이라는 유무형의 압력이 주어지는 걸까.


  특히 집안일과 육아 영역으로 가면 더욱 그러하다. 바보 온달은 어느 정도는 하지만, 정말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기 전까지는 그냥 시늉만 하는 종족이다. (모든 남자가 그렇지는 않다. 그래서 이 글은 드라마에 나오는 실장님이나 대표님이 아니라 평범한 바보 온달과 사는 평강공주들을 위한 글이다.)


  그렇게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고 있는 꼬라지를 보고 있노라면 꼬라지가 난다. (전라도 말로는 '꼴(얼굴)'과 '성깔'이 둘 다 '꼬라지'라고 한다.) 설거지를 하는 게 아니라 그릇 분쇄 해체작업이라도 하는지 와장창 와장창 소리가 난다. '그렇게 해서 깨지겠어? 더 세게 던져.' 한마디 비꼬기라도 하면 전쟁 시작이다. 자 이제부터 접시를 깨뜨리자.


  하고 싶지도 않고 잘하지도 못하는 일을 했으니 결과가 안 좋은 것은 당연지사다. 그런데 자꾸 하다 보면 늘고, 계속하면 요령이 생긴다. 바보 온달을 계속 움직이게 만들려면 "설거지를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해? 다 다시 해야 되잖아."라는 말은 찬장 서랍 속에 고이 넣어두는 것이 좋다.


  남편은 남이 가르치도록 하라. 유튜브라도 함께 보며 살림을 연구하게 하고, (내가 보기엔 쓸데없는) 장비를 마련하는 것도 가끔은 응원하라. 그래도 전쟁보다는 삽질이 낫지 않은가. 갓난아기 목욕시키는 법은 조리원에서 선생님들께 배우도록 유도하라. 굳이 평강공주가 직접 나설 것도 없다. 원래 남편은 남이 하는 말을 더 잘 듣는다.


  요리하는 남자가 섹시한 진짜 이유. 맨날 밥하는 사람에게 가장 맛있는 음식은 남이 해주는 밥이기 때문이다. 맛이 없어도 맛있다. 다른 집안일들도 그렇게 생각하면 편하다. 하는 게 마음에 안 들지만, 거기서 시전해야 할 것은 레슨이나 평가가 아니라 우쭈쭈다. 우리 오빠 참 잘했어요. 


  바보 온달에게는 명령보다 명예를 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전쟁 같은 사랑'보다는 '빈 말인 걸 알아도 듣기는 좋은 빈 말'을 선택하는 것이 지혜롭다. 싸워도 안 변한다. 훈련은 적군에게 받는 게 아니라 아군에게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효율성의 시대를 살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을 가르쳐서 바꾸는 방식에 익숙하다. 사랑하기 때문에 더욱 가열하게 가르쳤다. 우리 부부도 처음에는 그랬다. 훈수 두고 조언하고 바른말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빨리빨리 바뀌어서 나를 좀 편하게 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당연히 결과는 별로 좋지 않았고, 그런 방식으로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엄마가 공부하라고 할 때 공부를 그만큼 했으면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겠는가?


  우리 아파트는 재활용 분리수거가 목요일이다. 바보 온달은 이제 퇴근하고 밤 12시 반에 혼자 승강기 한 가득인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가면서도 별로 억울하거나 피곤하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다. 왜냐하면 이제는 평강공주가 "왜 어제 쓰레기 안 버렸어? 또 쌓였잖아."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의 영감은 깨진 유리병 사이에서 깡통을 골라내는 순간에 찾아왔다.)


  집안일하면서 음악 들으려고 10만 원짜리 노이즈 캔슬링 블루투스 이어폰도 하나 질렀다. 평강공주는 "뭘 또 샀어. 돈도 없는데."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즐겁게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다. 나는 이제 집안일이나 육아를 '도와준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바보 온달을 움직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고,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우리 집 평강공주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세상의 모든 평강공주들을 응원하며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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