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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르미 Jun 18. 2021

'너'에게 '나'를 보낸다.

"너는 어떻게 이런 것도 모르니?"라고 말하기 전에.

  "어떻게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몰라? 대학은 어떻게 나왔니?"


  라고 말할 일이 없다면 참 좋겠습니다만, 부부가 결혼해서 살아가다 보면 한 번쯤 나올 수 있는 말(생각)입니다. 살아가는 방식,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말하고 듣는 방식,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전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번 시어른 칠순 잔치 계획을 짜야할 때, 지혜로운 남자는 먼저 아내와 상의할 것입니다. 아내가 특별히 개입할 여지가 없다 해도, 상의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요. '나는 당신을 존중하며, 당신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라는 태도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심코(악의 없이), 시동생들이나 시누이들과 먼저 상의(라고 부르지만 사실상 결정)하고, 그 결과를 통보받게 되면 여성은 곤란해집니다. 자칫하면 시댁 일에 관심 없는 며느리로 찍힐 수도 있고, 그대로 따르자니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것은, '이 사람은 아직도 나보다 자기 가족과 더 가깝구나.' 하는 섭섭함이지요.


  위 이야기에서 남자와 여자를 바꾸어도 비슷한 상황과 감정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사소한 어긋남이 큰 갈등으로 발전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아무도 악의는 없(다고 스스로 믿)지만 미치고 팔짝 뛰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가 잔뜩 도사리고 있는, 웰컴 투 부부의 세계입니다.




  이런 (나만 알고 상대방은 모르는) 무신경함이 거듭되다 보면, 결국 한 마디 하는 날이 옵니다. "어떻게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몰라? 내가 꼴이 뭐가 돼?" 그런데 이 말을 할 때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각자의 '기본'에 대해 숙지하고 결혼하면 참 좋겠는데, 보통은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서로의 '커먼 센스'가 다릅니다.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이나 가풍에 관련된 것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사소한 기본'에 관련된 문제를 그냥 내버려 두면 결국 눈덩이처럼 불어서 과도한 오해와 감정싸움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참다가 폭발시키는 것은 가장 좋지 않은 선택입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감정이 섞일 수밖에 없고, 내가 느낀 것보다 더 과하게 표현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상대방 입장에서는 "그게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야? 지난번 너는..."라고 반응하기가 쉽습니다. 자기도 나름대로 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지혜로운 선택은 이런 미묘한 문제가 생길 때, 무조건 참으려 하지 말고 지혜롭게 대화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걸 꼭 말해야 알아? 어휴 자존심 상해."라는 생각은 서랍에 고이 넣어 놓는 것이 우리의 관계와 내 자존감을 보호하는 데 더 좋습니다.


  "네가 나에게 이런 상처를 줬어. 알아?"라거나 "보통 사람들은 너처럼 하지 않아."라고 시작하면 대화가 아니라 싸움이 벌어집니다. 서로를 탓하고 평가하는 말이 나오기 쉬운 상황일수록 그것을 꾹 삼키고 주어를 '나'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요? 특별히 내 속에 오해와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시작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입니다.


  "나는 이러이러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이런 상황에서 나는 이렇게 느껴요."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당신이 사랑하는 내가 가지고 살아온 기본은 무엇인지, 천천히 알려주세요. 모르면 서로 배우면 됩니다. 운동을 배워도 기본적인 폼이 나오려면 6개월에서 1년은 걸리는데, 복잡 미묘한 관계와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지요. 폼은 잡는 게 아니라 연습하는 것입니다.


  주도권 싸움을 하는 관계라면 어렵겠지만, 부부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목적이라면 가능합니다. 내 남편이, 내 아내가 낯선 문화와 '나'라는 사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부부는 한편입니다. 그리고 이제 '너희 집'은 없고 '우리 집'만 있습니다. '너'에게 '나'를 잘 보내다 보면 '우리'가 됩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몰라?"라고 대화가 시작되는 날이 온다면, 부부 관계를 좋게 만드는 마법의 주문을 외쳐 봅시다. "미안해. 내가 생각이 짧았네. 다음부터는 조심할게." "지난번에 얘기했는데 내가 신경을 못 썼네.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해."


  솔직히 미안하잖아요. 말 한마디로 모두에게 지옥이 시작될 수도 있고,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을 수도 있다면, 좋은 편을 선택해야겠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에 진심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은 약한 사람이 아니라 멋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는 성인(Saint)은 못되어도 성인(adult)이기는 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여보, 무신경하게 살았고, 당신 이야기를 흘려 들었고, 마음 아프게 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해. 삶의 지혜가 깊지 않아서 기본적인 것도 잘 몰랐어. 이제부터라도 잘 배워볼게. ㅅㄹ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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