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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르미 Jun 01. 2021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엄마를 만들었다."

엄마는 사람이고, 마음이 담긴 다양한 방식의 위로가 필요하다

  '응답하라 1988'의 한 장면입니다. 엄마의 엄마가 아파서 엄마가 친정에 갑니다. 남편과 두 아들이 못 미더워 반찬도 다 해 놓고 연탄불 가는 것까지 다 교육하고 가지만,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엄마가 떠나자마자 집안은 남자들의 천국이 됩니다. 마요네즈와 설탕을 듬뿍 넣은 비빔밥은 기본이요 밤샘 TV 시청은 옵션입니다.


  며칠 후, "엄마 터미널에 도착했다." 전화를 받은 삼부자는 비상이 걸립니다. 모든 것을 원위치로 돌려놓습니다. 마치 불을 켜면 바퀴벌레가 사사삭 흩어지듯, 그럴 때의 남자는 빛보다 빠릅니다. 떠날 때와 다름없이 깔끔하게 정돈된 집은 "엄마 없어도 우리 잘 먹고 잘 살았어."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생각보다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글의 제목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원 출처는 정채봉, 류시화 시인이 엮은 동명의 책(98년, 샘터, 현재 절판)인 것 같습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엄마들처럼, 우리네 현실 엄마들은 거의 신이 될 것을 요구받지요.


  엄마니까 당연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언젠가 불후의 명곡에서 가수 유회승이 인순이의 엄마를 불렀을 때, 중간에 문지애 아나운서가 시를 낭송하더군요.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였습니다. 엄마 자신도 으레 그러려니 하고, 엄마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시에는 마지막 행에 진리가 숨어 있을 때가 많습니다. 끝까지 읽으라는 시인들의 빅 픽처일까요? 아무튼 이 시의 마지막 문장은 이러합니다.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결혼 10년 차 남편은 이 지점에서 엄마 생각하면서 잠깐 울고 끝나지 않습니다. 마음의 움직임이 태도의 변화로 이어질 때까지 생각도 해 보고 흔들어도 봅니다. 보통 거기서 '우리 엄마' 생각은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엄마' 생각은 많이 안 하는 것 같아요. 30~40대 엄마들이 고통을 호소하면, 대부분 돌아오는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너만 힘들어? 다 함께 고생하고 있잖아."

  "옛날에는 그보다 더했어. 천 기저귀 빨고, 연탄불에 젖병.. 블라블라.."


  그래서 어쩌라는 걸까요. 저런 말은 엄마 말고 개에게나 줘 버려야 할 말입니다(동물 비하 아님). 


  스스로 신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신이 될 것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사랑하는 자신들의 배우자를 향해 신이 될 것을 날마다 요구합니다. 하지만 신에게 마땅히 바쳐야 할 경외를 주는 것에는 인색합니다.


  10년쯤 살아보니, 배우자의 행복은 자신의 행복과 거의 비례합니다. 사람은 사랑의 관계로부터 행복을 얻는 동물입니다. 그것이 충분하지 못하면, 일도 잘 못하고 돈도 잘 못 벌지요. 돈을 벌기 위해 관계를 포기하면 그 관계를 다시 얻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알지만 거듭되는 악순환입니다.




  다시 드라마로 돌아가 보면, 둘째(류준열)가 엄마의 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라면을 끓여 먹는 형의 손을 아직 식지 않은 가스레인지에 대고 안방을 향해 외칩니다. "엄마, 형 손 데었어." 바로 그때, 엄마가 살아납니다. "에이그, 칠칠치 못하게...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지? 이리 와봐. 약 발라줄게."


  아빠는 나름 엄마를 돕는다고 연탄불을 갈러 광으로 들어갑니다. 연탄 두 장이 붙어서 식칼로 떼려고 옆에 잠깐 올려 두었는데, 둘째가 들어오더니 연탄을 바닥에 내팽개치면서 외칩니다. "엄마, 아빠가 연탄 깨뜨렸어." 편재하시는 전능하신 엄마는 다시 출동합니다. "쯧쯧쯧, 그거 하나 못해? 칠칠치 못하게... 이리 줘봐."


  엄마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걸립니다. 생기가 돕니다. 살아납니다. 엄마는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데서 위로와 힘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위로하는 법은 그때그때 다릅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고 사람이기 때문에, 위로와 사랑은 다양한 방식으로 주고받아야 하나 봅니다.




  모든 것을 수치화, 정량화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서로를 향한 위로도 그렇게 하려고 하기 쉽습니다. 마치 수학 공식처럼요. 사실 위로는 '집안일을 얼마나 많이 해줬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예 안 하면 안 돼요. 큰일 납니다.) 진짜 위로는 '얼마나 마음을 주었는가? 마땅한 칭찬과 인정을 서로에게 주었는가?'에 있습니다.


  집안일을 좀 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것도 훌륭하기는 하지만, 거기에 마음이 담겨 있지 않으면 티가 납니다. 칭찬도 마찬가지. 마음이 담겨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우리는 기가 막히게 압니다. 진짜 힘들 때는 남편 아니라 누구라도 좀 해줬으면 하지만, 결국 진짜 위로가 되는 것은 거기에 담긴 나를 향한 진심입니다. 옆집 남편이 매일 와서 청소를 해주면 한없이 기쁠까요? (여기서 '응'이라고 대답하는 아내는 마음이 많이 상한 상태이시겠지요. 갓 블레스 유. 제가 모든 남편의 대표는 아니지만 죄송합니다.)


  "나 힘들다."라고 말하는 배우자를 향해, 서로의 수고를 향해 마음을 담은 칭찬과 인정을 보내 보면 어떨까요. "너만 힘들어? 나도 힘들어."는 많은 경우 많은 사람들이 고르는 최악의 오답입니다. '저 사람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았으니, 나도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은 두 번째로 많이 고르는 오답이고요. 그냥 누구라도 먼저 시작해 볼까요? 자존심보다 생존이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면. 버려야 얻고, 죽어야 살고, 져야 이기는 진리를 깨달아 가야 합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신이 아닙니다. 기계도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여러 방식으로 마음이 담긴 칭찬과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맞장구쳐야 할 때가 있고, 가만히 들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청소를 다 해 놓아야 할 때가 있고, 고맙다고 말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혼자서 놀다 오라고 해야 할 때가 있고, 같이 놀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같이 사러 가야 할 때가 있고, 몰래 선물을 사 와서 '짠'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야 할 때가 있고, 따뜻한 밥을 해 먹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돈을 주어야 할 때가 있고, 마음을 주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보통은 마음이 담긴 돈을 주면 제일 좋습니다.) 우리는 그때그때 다릅니다. 사람이라서 그렇습니다.


  이 글은 대단한 문학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어제는 아내가 힘들었는지 안아 달라고 해서 안아주었고, 우울했던 저는 아내를 안아주면서 오히려 안음을 받았습니다. '브런치X밀리의서재 전자책 프로젝트'에 떨어져서 조금 지쳐있었고 약간 실망했었거든요. 그리 열심히 오래 준비한 것도 아니면서 사람이 참 간사합니다. 굳이 사족을 다는 것은 저 나름대로의 마침표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의식입니다. 는 쿨하지도 않고 마음을 표현하는데 솔직하지도 않아서 이런 걸 해야 다시 일어날 수 있나 봅니다.


    그래서 구독과 라이킷은 사랑입니다. 그래야 계속 쓸 수 있습니다. 진리는 언제나 마지막 행에. 읍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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