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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날 백대백 May 02. 2024

낮은음 자리표

10. 같은 새를 바라봐.

채은은 요즘 우울하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당분간 일을 그만두었다.

자신이 사는 방식이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해왔던 모든 일들이 한심하게 여겨졌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다.

그동안 채은은 화가 나도 상대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자신이 화가 난 것보다 상대가 저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게 오히려 미안하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자신의 잘못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오는 화를 잡아끌었더랬다.

채은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들의 표현 속에 무언가 의도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로 인해 오해도 많았고 그로 인해 손해 보는 일도 많았다.

채은은 지금 답답하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공원에 앉아 아이들이 노는 것을 멍하니 바라본다.

벤치에 앉아 허공 위를 나는 새를 멍하니 바라본다.

그런 날이 많아졌다.


"채은아. 채은아."

오늘도 공원에  앉아있는 채은이를 누군가 부른다.

지수는 커피를 담은 테이크아웃컵을 들고 채은을 부른다.

"어머니가 너 여기 있다고  말씀하셔서 이 언니가 친히 여기까지 왕림하셨다. 이렇게 비싼 커피까지 들고 말이야. 호호"

지수는 채은에게 자신이 들고 온 커피를 살짝 흔들어 보인다.

"어! 언니. 언니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요?"

채은은 오랜만에 보는 지수가 반갑지만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이는 게 창피하기도 하다.

"봄볕이 참 좋다. 살랑살랑 바람도 좋고. 우리 채은이가 어떻게 이런 명당자리를 찾아냈을까? 나도 하늘감상 좀 해 볼까?"

지수는 채은 옆에 앉아 커피를 건넨다.

둘은 잠시 말없이 커피를 마시며 파란 하늘을 바라본다.

간혹 지수가 하늘을 나는 새들을 말하기도 채은이 떠다니는 구름을 말하기도하면서 둘은 그저 하늘을 바라본다.

"언니 나 학원 그만두었어요. 지금 난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요."

채은은 커피를 마시며 자신의 얘기를 한다. 그동안의 심정을 풀어놓는다. 자신의 살아온 모든 것을 파노라마처럼 지수에게 펼쳐놓는다.

지수는 채은이 바라보는 하늘을 함께 보며 조용히 채은의 얘기를 듣는다.

"우리 여기서 또 볼까?"

"언니 카페는요?"

"너와 함께 있는데 여기가 내 카페지 호호"

둘은 같이 걸어간다.


"언니 나 아이들이 보고 싶어졌어요.

아이들의 티 없이 맑은 웃음소리가 듣고 싶어졌어요."

얼마 후 채은은 지수에게 말한다.

"그래 채은아 너의 내면의 소리가 이끄는 대로 가봐.

그리고 좀 더 가까이 너의 마음을 들여다봐봐. 그러면 오히려 주위의 소리도 더 선명하게 들릴 거야."

지수와 채은은 오늘도 하늘을 바라본다.

채은이 바라보는 새는 지수가 바라보는 똑같은 새다.

둘은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는 똑같은 새를 얘기하고 있다. 이제 채은은 마음의 소리에 더 집중할 수 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더 또렷하게 들림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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