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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뿔난 토끼 Mar 13. 2021

이제 시작인데

그 끝이 보이지 않아.


 췌장암 수술 후 퇴원해서 집에 돌아온 남편은 서서히 느리게 더딘 회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은 태어날 때부터 본능적으로  성실함이라는 생존무기를 장착하고 태어난 사람인지라 췌장암 수술 후의 더딘 회복에 초조감을 드러냈다. 남편은  빠르게 회복해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심이 지나쳤기에 진통제를 먹으면 회복이 더딜 거라는 막연한 생각에 퇴원할 때 받아왔던 진통제를 등한시했고 진통제 없이 회복하고 견디려는 노력을 했고, 그 여파는 곧바로 무시무시한 통증으로 다가왔다. 

한 번 시작된 통증은 겉잡을 수 없을만큼 온 몸에  속수무책으로 번져나갔다.

그리고 통증이 이미 시작된 후에 뒤늦게 먹은 진통제로는 통증을 잡지 못했고,  결국은 극심한 통증을 이기지 못해 집 근처의 병원을 방문해서 다른 진통제를 처방받아야 했다.     

평소에 참을성에 대한 자격증이 있었다면 눈을 감고도 합격했을 만큼 참을성 하나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던 남편의 입에서 아프다는 소리가 줄줄이 비엔나소시지처럼  엮여서 흘러나왔다.

한 걸음씩 발을 떼며 걸을 때마다 남편의 얼굴은 통증으로 일그러졌다.

집 근처의 병원에 가는 길이 평소에는 그리도 가까웠건만 잘 걷지 못하고 통증에 시달리는 남편이 가기에는 너무나 가깝고도 먼 길이었다.        

복부의 격렬한 통증으로 똑바로 서지도 못하게 된 남편이 허리가 굽은 채 지팡이를 짚고 병원의 진료실에 가까스로  들어섰을 때 남편의 상태를 날카롭게 주시하던 시골병원의 나이 지긋한 의사 선생님은 간단하게 몇 마디를 묻어본 후에 다짜고짜 남편에게 지팡이부터 당장 버리라고 호통을 쳤다.

“지팡이 당장 집어던지고 어깨 펴고 똑바로 걸어 봐요. 별것도 아닌 걸로 젊은 사람이 엄살이 심하네.”

“통증이 너무 심해서 똑바로 설 수가 없어요.”

진짜 많이 아픈데 의사선생님의 날 선 책망이 억울해서였는지 지팡이에 의지해서 구부정하게 서있던 남편의 눈에 순간적으로 이슬이 맺혔다.      

단지 운이 없어서 어느 날 갑자기 췌장암에 걸렸을 뿐인데, 아프고 나서 시시각각으로 만나게 되는 돌발 상황들이 우리 부부를 더욱 위축시켰다.

그러나 의사선생님은 단호했다.

“지금 지팡이 버리지 않으면 당신은 어깨가 굽어서 평생을 구부정하게 살아야 해요. 당장 버려요.”     

남편이 마지못해 지팡이를 내려놓자 의사 선생님은 남편의 수술 자리를 확인해보며 잘 아물고 있으니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고 아까와는 다르게 따뜻한 어조로 안심을 시켜주었다.

또한 남편의 상태에 대한  설명을 듣고,  퇴원 시에 받아왔던 진통제를 제 때에 먹지 않아 이미 진통제가 듣지 않아서 또 다른 진통제를 처방받으러 왔다는 설명에는 고개를 저으며  웬만하면 진통제에 의지하지 말고 견디라고 조언도 곁들여 주셨다.  

또한 시골병원 의사선생님은 통증으로 이미 넋이 반쯤은 나간 남편에게 췌장암의 수술까지 무사히 끝냈으니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이므로, 암을 치료하려면  죽음에 대한 공포감부터 버리라며 따뜻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의사선생님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따뜻한 조언은 통증으로 이미 넋이 반쯤은 나간 남편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으며 남편은  이번에도 또 견뎌보겠노라고 굳센 다짐을 했다.     

의사 선생님의 조언대로 지팡이를 버린 남편은 혼자 힘으로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걷기 시작했다. 

그런 남편의 몸에서 이번에는 갑자기 식은땀이 비 오듯이 흐른다.  

저혈당 증상이 시작된 것이다.

췌장암 수술 시에 췌장을 전부 잘라낸 남편은 혈당관리를 위해 하루 네 번의 인슐린 주사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병원에서 퇴원 후에 혈당관리가 잘되지 않아서 어느 때에는 혈당이 너무 높아서 깜짝 놀라게 되고, 때로는 급작스럽게 저혈당 증상이 반갑지 않은 손님으로 찾아오기 일쑤였다.     

“뭐라도 빨리 먹어야지.”

저혈당이 시작되자마자 임시방편으로 사탕을 입에 문 남편과 점심을 먹기 위해  죽 집에 마주 앉았다.

남편이 따뜻한 소고기죽을 한 숟가락 떠서 먹으려고 시도하지만 잘 씹지 못한다.

여전히 식은땀은 줄 줄 흐르고 끈질기게 달라붙어있는 통증으로 말미암아 얼굴은 이미 사색이 되어간다.

한창 손님이 밀리는 바쁜 시간에 죽 집 로얄석은 꿰차고 앉아서 한 숟가락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죽 그릇을 감상하고 있는 남편과 그런 남편을 빨리 밖으로 퇴출시키고 싶어서인지 포장해주겠다고 제의부터 하는  죽 집 사장의 분주한 동작 사이에서 순간적으로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던 내 얼굴도 문제였지만 내 무딘 가슴속에서도 속 터지는  뭉근한 통증이 시작되었다.

‘제발 어느 한 가지라도 매끈하게 그냥 지나가 주면 안 되겠니? 어떻게 하나에서 열까지 다 문제가 되냐고? 지금은 또,  죽도 제대로 못 먹어서 눈치까지 덤으로 얻어먹고 난리냐고.

내가 다음부터 이 집에서 돈 내고 죽을 사먹으면 내 성을 갈아버린다.

도대체 어쩌라고. 이제 시작일 뿐인데 그 끝이 어딘지 보이지도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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