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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돌돌 Nov 29. 2023

그 옛날의 친구는 어디에서 살아갈까

그 시절의 친구가 그리운 날에는



창문 사이로 투명한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오후, 맑은 하늘 위로는 이름 모를 겨울새가 날아오르더니 마침내 한점 붓끝으로 점점이 사라져 간다.


창문으로 반사되는 햇볕에 눈이 부시다. 창문에 묻어있는 먼지는 그대로 가슴에 싸안으면서 따스한 햇볕만을 건져 올리는 창문이 오늘따라 갓 퍼올린 두레박의 샘물처럼 정갈하다.


학창 시절, 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선생님 말씀에 따라 저마다 창문을 할당받고 창가에 매달려 뽀드득뽀드득 유리창을 닦고는 했었다. 창문도 운이 따라야 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깨끗했던 유리창은 몇 번의 손놀림만으로도 금세 닦아지지만, 페인트를 뿌려놓은 듯이 얼룩진 유리창은 아무리 휴지나 종이로 박박 문질러도 끝끝내 닦이지 않았다. 


초등학교 5학년, 그날도 우리는 유리창을 닦았다. 몇몇 아이들은 이미 선생님한테 검사를 받아 합격 판정을 받고 집으로 돌아간 후였다.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너머가고 내게 할당된 창문의 아롱진 얼룩은 끝끝내 닦이지가 않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내 마음은 흡사 패잔병마냥 기울어져만 갔다. 게다가 눈발이 후리후리하고 옆에만 있어도 오금이 저려오던 선생님에게 아무리 유리창을 닦아도 얼룩이 지워지지 않는다는 말은 감히 꺼낼 용기조차 없었던 터라 더더욱 가슴을 옥죄고는 했었다 


이제는 닫는 것도 포기하고 숫제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서편의 지는 해만 만연히 바라보았다. 그럴 때마다 유리창문은 판잣집처럼 삐거덕삐거덕 거리는 마찰음을 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창살에 창문이 끼었는지 도무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것을 발견하고 옆에서 유리창을 닦던 친구가 다가왔다. 창문을 잡더니 내게 열어보란다. 나는 힘껏 창문을 열어젖혔다. 그런데 이것이 어인일인가. 친구의 땡고함 같은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창문의 반대편에 친구의 손이 얹혀있었는데 창문이 세차가 움직이면서 사정없이 친구의 손가락을 후려친 것이었다. 

친구의 손톱은 시퍼렇게 쑥물 들었고 한쪽 손톱 끝으로는 죽은 핏물이 팥알처럼 옹글지게 올라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했고 당혹스러웠다. 그의 퉁퉁 붓는 손만큼 내 마음도 퉁퉁 붓고 연필깎이 칼에 베었을 때의 기억처럼 내 마음도 베어나갔다.


하지만 그 친구는 아프다는 단 한마디도, '너 때문이야'하는 질책의 힐난도 보내지를 않았다. 아니 오히려 무표정한 그의 얼굴에는 어떤 초연한 모습이 스며있었는데 이는 더더욱 내 마음을 애달게 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길어진 서산의 그림자만큼 내 마음의 아픔도 지리하게 길어졌다. 주위에는 무언가 스산함만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이 동기였을까. 그 후 나는 그 아이와 나는 둘도 없는 단짝이 되었다. 방과후면 함께 동네아이들과 야구도 즐겼고 뒷동산에 올라서 맑은 하늘에 얼굴을 담그기도 하였다. 겨울에는 썰매를 타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기도 하였고 어떤 때는 흑백 TV 안테나 속에 성냥알을 뿌려 넣어 밀폐시킨 후 장작불속에 내던지고는 대포처럼 '빵'하고 터지면서 날아가는 소리를 먼발치에서 숨을 조아리며 훔쳐보았던 기억도 생생하다.



어느 날 그는 껌 반쪽을 툭 잘라 내게 주며 말했다. '이순신 장군이 그랬는데 친구끼리는 콩한쪽도 나누어 먹는 거래' 사실 이순신 장군이 그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적어도 나를 진정한 친구로 생각한다는 것이 마음속 깊이에서 어떤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 후 우리는 중학생이 되었고 나는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다. 그와 자연히 만나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가 못된 아이들과 어울린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의 심성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나는 그것은 일종의 루머로서 누군가가 만들어낸 음해이거나 소문을 타고 잘못전해진 낭설로만 치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감기에 걸리신 어머니가 신열에 들떠있었고 나는 어머니 약을 사러 집을 나섰다. 마을 어귀를 지나 읍내에 다다랐다. 저 멀리서 아스라이 약국이 보였다. 그때 돌연히 검은 그림자 몇이 다가왔다. 나는 저잣거리의 불한당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소름이 쫙 돋아났다. 사위는 쥐 죽은 듯이 고요와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들은 이윽고 나를 뺑 둘러쌌다.


- 주머니에 있는 거 다 꺼내봐


어머니가 아파 지금 약 사러 간다면서 가진 거라고는 약값밖에 없다고 말하다가 나는 뒤에서 뒷짐을 쥐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감응적으로 놀라 움찔 뒤로 물러났다. 그 아이는 바로 초등학교 몇 년을 그렇게 친하게 지냈던 내 친구가 아닌가.


그 친구의 덕이었을까. 나는 다행히 약값을 갈취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약값을 노획당한 것보다도 더 큰 말 못 할 비감 같은 것이 내 머릿속에 파고들었다. 진실한 친구는 새벽별만큼 드물다고 로마최대 철학자 시세로는 갈파했다. 어쩌면 진실한 친구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은 세상을 얻은 것만큼 행복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어떤 식으로 왜 그런 저급한 아이들과 어울리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어쩌면 내가 이사를 가지 않고 그의 동네에서 살았거나 안 그러면 그와 가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더라면 그래도 그 친구가 그들 옆에 있었겠는가.


- 子曰 見賢思齊焉하며 堅不賢而內自省也니라.


요즘 사서를 읽고 있는데 논어 제4편에는 나오는 글이다. 어진 사람을 보거든 그와 같아지기를 생각하고 어질지 못한 사람을 보거든 자신에 비추어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굳이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나 동류상종(同類相從) 같은 성인들의 지혜를 꺼내지 않더라도 어찌 동반자의 소중함을 필설로 형언할 수 있으랴.


요즘 들어서 소위 말하는 불알친구들이 그립다. 이것도 세월 탓일까. 그렇게 동네방네 짓 까불고 다니면서  말끝에는 베이스를 넣듯이 '야 새꺄, 웃긴 새끼네.' 같은 육두문자를 자연스레 썼던 친구들이 오늘따라 그리우니 말이다.


친구와 포도주는 오래될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나는 어쩌면 생활터전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혹은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정말 소중한 동반자를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닐까. 지나온 삶을 반추해 본다. 내게 진정한 친구가 얼마나 있었던가. 


돌아보면 내 삶은 하나의 무정형이었다. 초등학교를 네 번씩이나 옮기면서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이 주위에 동요동화 되어 갔고 과거는 한낱 구름처럼 흘러갔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주어진 친구들과 만나다가 장소와 시간이 바뀌면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마치 카멜레온처럼 또다시 다른 친구들과 어울렸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에 살 때는 서울 사람들과 어울리고, 경남 사천에서는 사천사람들과, 충청도에서는 충청도 사람들과 마치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면서 그전의 친구들과는 연락을 단절시켰던 것 같다.


불현듯 어린 시절 그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 우리가 먼 훗날 어른이 되어도 지금처럼 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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