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하는 백수의 창작일지
전 지금으로부터 두 달 전, 약 8개월간 계약직으로 있었던 회사에서 나와서 하루하루가 빨간 날인 백수입니다. ‘백수’, ‘백조’, ‘홈 프로텍터’ 어떤 말이 나를 올바르게 수식할까요? 무엇하나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빨간 날의 연속에서 스스로 규칙성을 부여하기 위해 루틴을 만들고, 다가올 북페어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보다는 일종의 창작하는 백수, 미래를 예측하기보다 창조하는 작가이고 싶어요.
제가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오늘 하루 내가 열심히 살아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 애쓰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올해 10월부터 ‘나도 모르던 나를 발견하고자’ 글쓰기 리추얼 ritual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모임에서 추천받았던 브런치 북 팝업 전시를 보고 온 이후에 영감을 팡팡 받아서 <내 안의 어린아이와 친해지길 바라>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어요.
내가 나인 게 약점이 될 수는 없잖아.
<대도시의 사랑법>, 2024
막상 연재글을 쓰려니까 힘이 조금씩 들어가고 시작을 못하겠더라고요. 힘이 잔뜩 들어간다 싶을 때 주로 생각이 많아져서는 ’이래 가지고 되겠어? 더 길어야지? 더 깊이 있어야지’ 등, ~해야지 하는 의무감이 생겼었어요. 정작 제가 즐거이 읽었던 작가님들의 브런치 글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말이죠. 자신이 약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속내를 말갛게 꺼내 보이며 단단하고 솔직하게 써 내려갔던 글을 떠올렸어요.
작년에 추천받아서 보게 된 다큐멘터리 <스터츠 - 마음을 다스리는 마스터>에 나오는 상담 세션처럼 내밀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게 되는 글쓰기 모임을 생각했어요.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과감하게 취약성을 내보이지만, 안전하기 때문에 서로 따뜻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글, 그런 글을 브런치 연재북 <내 안의 어린아이와 친해지길 바라>에서 진솔하게, 진심을 담아 꾸준히 연재하고 싶어요.
In a sense, the worse it is,
the better we did.
어떤 면에서 우리는 엉망일수록
더 잘 해냈으니까.
<스터츠: 마음을 다스리는 마스터>, 2022
처음에 생각했던 기획안은 다 지워버리고 ‘삘(feel) 가는 대로’ 검열 없이 써보려고 합니다. 가볍게 걸음을 먼저 익히고 뛰어야 할 때 또 뛰겠습니다. 솔직하고 즐겁게 숨 고르며.
요즘 어쩌다 보니 1일 1 콜라주에 빠져있는데,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휙휙 제 사진첩 속에 가장 좋았던 경험을 골라서 어플을 이용해 스티커로 오려내요. 휴대폰 속 하얀 배경에 갖다가 붙이고, 같은 계열의 색상을 넣어서 배경으로 이미지들도 붙여 넣습니다.
예뻐 보일지 말지, 이 구성이 나을지 더 약간의 고민은 하지만 그리 무거운 고뇌에 빠지진 않아요.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게 목적이 아닌, 스스로 만족하는 딱 그 수준까지 몰입해요. 우선은 재밌게 이걸 지속하는 감각이 좋아요. 쓰임과 목적을 생각하지 않고 생기는 무용함의 몰입감.
이미지를 종이에 프린트해서 오려 붙이는 아날로그 콜라주를 보통 하는데 이제 디지털 앱으로 즐기게 되니 요즘 통 오프라인 창작이 부진하네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나를 몰아붙이지 말고 가만히 천천히 조금만 더 기다려주기.
열흘 동안 콜라주가 쌓였습니다. 모으다 보니 1장짜리 종이 양면을 가득 채워 프린트할 양이 모이더라고요. 그래서 가장 간단한 형태의 8pg 미니 진으로 만들었어요. 수집하고자 하는 욕망이 꽤 강해서, 콜라주를 디지털 하게만 보관하기보다는 한눈에 보고 물성을 느낄 수 있는 종이에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창작할 때 얼마나 재미있고 즐거웠는지 감각과 진심을 듬뿍 담아 전하고 싶어졌어요! 사진의 해상도가 잘 나올 수 있도록 콜라주 크기를 적당히 키우고, 종이의 질 또한 레이저 프린팅용 고급 종이로 업그레이드했어요. 몰입하는 과정을 조금이나마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도 생각해 보면서요. 그렇게 [콜만두] 진이 형태를 갖추었고, 며칠 전 퍼블리셔스 페어에서 선보일 수 있었어요.
사실 지금도 내가 잘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하고, 인정받아서 확인하고 싶어요. 그리고 누군가 볼 생각을 한다면 조금 더 신경 쓰게 되니까요. 저 또한 그래요. 하지만 우선은 내 마음에 만족스러워야지 남들에게 보여줄 때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전할 수 있더라고요. 진심을 담은 진을 가지고 퍼블리셔스 북페어에서 반응들을 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내 취향과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하고 싶었던 것을 하기가 두렵고 무섭고, 혹은 무겁거나 시작이 어려울 때 내 내면 아이가 좋아하는 딱 그만큼만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들을 발견할 수도 있고, 막상하고 나면 큰 위안을 받을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