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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두 Nov 02. 2024

못난이 버튼

어쩔 때 나는 나에게 무척이나 모질다.


사실은 이번 회차에서는 듣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랬더니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비대해졌고, 다시금 환기가 필요했다. 매일 글을 올리던 리추얼 방에 쓴 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했더니 다시금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실타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 글을 쓰기 위해서 우선 내 이야기부터 들어주자. ‘나’라는 사람은 2인분이라고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만약 내가 나의 타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스스로에게 조금 더 관대하고, 더 사랑을 줄 수 있다.


어릴 때는 세상의 정보를 받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 방해물이 훨씬 적었다.

릭 루빈, 『창조적 행위: 존재의 방식』, 20



그리하여 3가지 조각글을 쌓고 모았다.

내가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분으로.






못난이 버튼


어쩔 때 나는 나에게 무척이나 모질다.

나의 모든 것이 부족하고, 그때 그랬으면 안 되는 데.

나 스스로가 부족하고, 더 열심일 수 있었는데 안 그랬고, 실망스러워서?


그런데 그것은 사실이 아닐 때가 더 많다.

호르몬의 농간일 때도 있고, 예민 더듬이가 남들의 기분을 본능적으로 캐치해서 나와 무관한 일임에도 책임을 느낄 때가 있다. 평소엔 적당한 수준이던 이 센서가 과하게 작동하기 시작하면 그때 ’ 못난이 버튼‘이 나도 모르게 눌려진다.


그럴 때일수록 나는 나에게 다정하게 대하는 법을 연습한다. 오히려 좋아 럭키비키.. 내가 나에게 무얼 좋아하는지, 무얼 잘하는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묻고 들어준다.


그러면 불안감에 쿵덕쿵덕 뛰던 심장도 점차 자기 페이스를 찾아간다.

차분하고 콩닥콩닥하게.




나에게도 사랑을 줄 수 있다.


왜 쟤는 내가 좋아하는 만큼 나를 안 좋아할까?

일에 대한 생각이기도 하고 사람에 대한 생각이기도 하다.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할 때,

첫날의 나를 떠올려본다.


무슨 말을 주고받아도 즐겁게 웃고,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와 주제도 기쁜 마음으로 주고받았다. 진지하게 임할 때도 있었다. 헤어지기 전에 입이 옴짝달싹 하기도 했지. 마음에 담아둔 그 말이 새어 나오진 않을까 내심 기대하기도 했고.


시간이 지나자 내가 준만큼 되돌려 받고 싶다. 정확히 내가 준 만큼 받고 싶다. 그렇지만, 내가 좋아했던 건 되돌려 받는 게 아니라 내가 주어서 행복했다. 사랑을 줄 수 있어서. 그런 나도, 내가 사랑을 많이 주면 된다.


내가 나에게도 사랑을 줄 수 있다.




새하얀 눈이 내린 것 같은 내 책상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내 방에 불을 탁 켠 순간

새하얗고 널찍하게 정돈된 책상이 날 반긴다.

맥시멀리스트인 나에겐 인생에 몇 안 되는 풍경이지만

너무나 사랑스럽다.


책상에 앉아서 무언가 '하고 싶게끔' 만든다.

평상시 대로라면 집에 들어와서 아무렇게나 소파에 널브러져서 못다 본 OTT(‘코미디 리벤지’)를 보거나 퐁신한 침대에 풀쩍 누워 웹툰을 정주행 했을 터인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그만큼 내게 책상 정리란 시작할 수 있는 도화지이자, 나를 향한 다정한 사랑이다.


그동안 옷장 정리도 수많은 시도 끝에 딱 좋아하는 옷들로 조금씩 추려졌다. 이제는 어디에 어떤 옷이 있는지 다 알 수 있어. 겹겹이 쌓아놓은 옷가지들도 정리가 되었기 때문이지!


책상 위에 쌓인 기록들도, 종이류도, 수집해 놓은 영감들도 그렇게 계속 정리를 시도하다 보면 결국에 내가 실천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되지 않을까? '하고 싶게끔, 쓰고 싶게끔 ‘ 계속해서 내 주변을 내 환경을 내 것으로 만들어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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