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보통의 모닝페이지
밤새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옵니다>를 정주행 했다. 매 회마다 핵심 인물이 겪고 있는 정신병과 그와 얽힌 현실 고증이 뛰어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매우 흥미롭고, 눈물이 나고, 감동스러워서 나 스스로에 대해 생각도 하게 됐다. 그동안 개인의 차원에서 겪었던 정신적, 심리적 부침을 써보니 모닝페이지가 4장이나 나왔다. 내 마음도 이렇게 구겨져있었구나.
누구나 한 개쯤은, 아니,
여러 개의 생채기를 달고 산다.
내게 새겨진 이 상처의 흔적들이
고유한 나만의 특징을 만들어 준다.
11월 첫째 토요일에 쓴 모닝페이지 발췌
굳이 나에 대해서 쓰자면 내가 정신분석과 심리상담, 심리학, 마음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남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입시를 준비하던 중학생 때부터 시작됐다. 스스로 생각이 너무 많았고, 넘치는 감정, 남들을 의식하는 시선, 나를 비교하는 습관. 이 모든 것들을 자제해야겠다고 여겼지만 혼란스럽고 가야 할 방향을 종종 잃곤 했다. 과거에 이미 벌어진 일들을 몇 년씩 후회하고 그 후회가 내 발목을 잡기도 여러 번이었다.
중학교 때 처음 전학을 오면서 일진들이 괴롭히기 시작하자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았다. 대학 졸업 이후 대학 시절에 못다 한 과업에 대한 후회와 관계에 대한 생각들이 넘쳐흘러서 심리상담을 받기도 했다. 회사를 다니고 나서부터 ADHD약을 타서 먹은 적도 있다. 나는 부단히도 나를 돌보기 위해 애써왔다.
자살충동을 심하게 느낀 적은 없었지만, 우울의 경계선에서 지낸 적도 있다. 타지에 있을 때 느꼈던 무력감에서 기인됐었다. 또 에너지가 심하게 차오를 때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작은 단서 하나에도 머릿속에서 확대해석을 한다거나 이야기를 지어내서 상상을 덧붙여 혼자 오해하거나 착각을 하며 지낸 적도 있다.
사실 정답이라는 상태는 딱 하나가 아닌 것 같다. 범주(spectrum)가 있어서 다양한 회색지대가 존재한다. 완벽한 하나는 없다. 덕분에 나는 살아오면서 꾸준히 스스로의 정신을 돌보기 시작했다. 매일 일기를 썼고, 불안이 찾아올 때에 손굴씨로 꾹꾹 눌러쓴 글로 풀어냈다. 심리학 책을 읽었고 궁금한 게 생기면 직접 실천에 옮겼다. 성실하게 완벽주의와 싸우면서 완료주의를 향해 나아갔다.
서서히 나는 스스로를 혐오하는 걸 멈췄고, 낮은 자존감을 알아차렸다. 내가 하고 싶은 걸 남에게 허용하면서 나를 편안하게 하는 법을 터득했다. 앞으로 펼쳐질 내 미래도 어느 부분이 나의 길이 될지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하고, 미래를 상상하면서 극복한다.
한번 해결한 문제들을 자신 있게 다 괜찮아졌다고 해결했다고 좋아졌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아니, 여러 개의 생채기를 달고 산다. 그렇게 새겨진 이 특징들은 나만의 특징을 만들어준다. 내게 생긴 이 고유한 흔적들을 가지고 나이 들고 싶다. 스토리를 지닌 앤티크 한 책이자, 앤티크 한 아이템, 옹기가 새겨진 특유의 진가가 있는 사람. 누군가는 이 진가를 알아주고 소중히 여겨줄 것이다. 심지어 나 스스로부터도 소중히 여길 수 있다.
간혹 내가 언하는 것들로부터 나를 멀찍이 떼어놓으려 하는 두려움을 맞닥뜨린다. 가끔 고구마 캐듯이 줄줄이 주저함, 두려움, 불안이 딸려 나온다. 부정적인 것에 에너지를 많이 쏟게 된다는 걸 알아차린다. 걱정 말고 생동감 있는 에너지로 현실을 살려고 한다. 행동을 한다. 조금씩 그렇게 나 자신을 챙긴다. 이런 내가 좋다. 기특하다.
껴있던 때를 불리고 밀어버리는 느낌이 든다. 다 쓰고 나니 깨-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