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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eong Dec 06. 2022

고독의 시간

고독할 때 얻는 교훈

비로소 나를 바라보는 순간이다

혼자 있다고 느낄 때 온몸에서 소슬바람이 부는 것처럼 춥고 쓸쓸해진 적이 있다. 슬픔을 당한 것처럼 눈물도 흘려보았다. 그런데 '이제 내가 혼자 살아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혼자 있는 것이 왜 슬프지?'

생각해보니 내가 혼자 지내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눈물까지 흘릴 정도로 혼자가 슬펐던 것은 익숙하지 않아서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진로에 대한 고민이 짙었을 때 함께 자취하던 연년생 언니들 둘이 연달아 1년 차이로 결혼을 하여 자취방을 떠났다. 당시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남동생도 함께 자취를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후 남동생마저 군입대를 하였다. 넷이서 아웅다웅 자취하며 지내던 언니 동생이 모두 떠난 후 나만 홀로 자취방에 덩그러니 남았다. 둘째 언니가 마지막으로 자취방에서 떠나던 날, 나는 얼마나 꺼이꺼이 울었는지 모른다. 난 이제 어떻게 지내지? 나 혼자 살 수 있을까? 일단 무섭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고 거의 모든 생활을 언니들에게 의존하며 지내던 나였기에 가사도 까마득하였다. 곤로에 밥 짓기, 반찬 만들기, 연탄 갈기, 손빨래하여 짤순이 돌리기 등등... 물론 언니들이 있을 때도 빨래방에 맡긴 적도 많지만 서로서로 시간 날 때마다 번갈아 했던 일들이 이제 모두 내 차지가 된 것이다. 막막했다. 그래서 또 눈물이 났던 것 같다. 그래도 살아야 했다. 견디었다. 밥 짓기는 일 년 내내 생략했다. 부모님이 가져다주신 쌀을 까맣게 썩혀버렸다. 나는 가사 대신 고독의 시간 속으로 파묻혔다. 매일매일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듯 일기를 쓰며 나를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나를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나 자신에 대해 새로운 것들을 발견했던 것 같다. 내가 고독하지 않았으면 마주하지 못했을 나 자신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성장하게 되었다

많은 식구들 속에서 지낼 땐 나 자신에 대해 협소하게 알았었다. 대충 내성적이거나 외향적이다. 사교적이거나 소심하다 정도에 국한되었었다. 하지만 홀로 있는 시간에 나를 바라보니 새로운 나에 대한 기억들이 하나씩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어릴 적 내 모습에 대한 기억, 내가 꿈꿨던 장면들, 쓰리도록 마음 아팠던 기억도, 칭찬받으며 우쭐했던 추억도 떠올리며 때론 눈물도 흘리다 때론 미소도 지으며 일기장을 채웠었다. 일기장에 기록한 글들을 읽고 또 읽으며 그 속에 파묻힌 나를 발견했다. 되도록 앞만 보는 내 성격, 융통성이 적어서 스스로 고달팠던 내 모습, 경계선이나 차별 없이 인간관계를 맺다가도 불신이 하나라도 생기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절교해버리는 무서운 내가 나의 글 속에 묻혀있었다. 나는 그런 내가 초라해 보였다. 좀 더 너그러워지고 따뜻해지며 온화한 성격을 드러내려 애썼다. 그러면서 나는 진실로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얼 하고 싶은지 알게 되었다. 나는 사람과 관계하며 조력하고 안내하는 관리자로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나의 진로를 발견하고 나니 나를 보는 지인들마다 내가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긍정적인 모습으로 했다고 칭찬하는 지인도 있었다. 고독의 시간을 지내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성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독할  는 교훈

배부르다는 포만감을 느낄 때보다 배고프다는 결핍을 느낄 때 집중력은 더욱 커진다는 걸 깨달았다. 내 안에 쓸데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을 땐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느끼지 못했었다. 모든 것을 비운 뒤에야 비로소 내게 정작 채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수많은 지인들과의 만남, 이런저런 모임들, 잡다한 조직들, 인생에 있어서 기본적인 것들도 채우지 않은 상태에서 부차적인 것들로만 가득 채우려 했던 비효율적인 내 삶의 모습들은 고독을 씹고 난 후에야 정리될 수 있었다.

고독의 시간을 경험한다는 건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경 속 인물의 모세도, 예수도 그들의 삶에 고독의 시간들이 있었다고 전한다. 고독을 겪고 난 후의 그들의 모습은 세계사에서 위인으로 알려졌다.

모세는 이집트 왕자의 자리에서 도망쳐 나와 미디안 광야에서 수십 년간을 고독하게 지내면서 하느님을 만났다.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느님은 이집트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던 히브리인들을 해방시키라는 명을 내리셨고 모세는 그 명령을 따라 히브리 노예들을 출애굽 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히브리인들이 안전한 곳에 정착하여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기까지 모세는 지도자로서 그 터전을 닦아준 인물이다.

예수는 40일 동안 광야로 나가 금식하며 고독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마침내 로마제국의 식민지가 되어 억압과 착취에 시달리던 유대민족을 위해, 차별과 학대로 고통받는 인류를 위해, 스스로의 모든 기득권을 내던진 채 희생양이 되신 분이다.

그가 희생양이 됨으로써 고통받는 인류에게는 절망에서 희망을 보게 하였고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그리스도가 되셨다. 고독은 이처럼 사람을 성장시키는 밑거름과도 같다.


 형제자매들과도 서로 부대끼며 아웅다웅할 때는 서로의 소중함을 모른다. 서로 헤어져서 고독하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서로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었는지 깨닫게 된다. 고독은 뼈가 시리도록 아픔을 느끼게도 하지만 그보다 고독의 시간을 통해 얻는 교훈들이 더 많으니 아픔을 겪고 난 뒤의 성숙함은 고독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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