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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eong Jan 29. 2024

천명

마지막 순간

"살기"보다 어려운 "죽기"

한의원이나 정형외과 물리치료실을 갈 때마다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로 북적이는 것을 본. 어르신들은 죽는 날까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조금이라도 상태가 양호할 때 건강관리를 하려고 병원에 간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새해부터 구순을 바라보는 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다. 어머니는 사는 게 참 어렵고 힘들었지만 자식농사 잘 지은 것으로 충분히 보상은 받으셨단다. 하지만 잉여인생 같은 현재의 나날이 전쟁과 가난을 겪던 시절보다 더 힘겹고 고통스럽단다. 이제는 죽어도 아쉽지 않은데 죽어지지 않으니 괴롭다고 하신다. 사지육신은 아프지 않은 곳이 없고 시력도 청력도 심지어 치아도 다 망가져 장애등급을 받았는데 살아서 무얼 하겠느냐는 것이다.

십수 년 전 동네 한 어르신도 시력과 청력을 잃고 삶의 의욕이 나지 않는데 모진 목숨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한숨을 길게 내쉬던 모습이 떠오른다. 당시 어르신은 93세 정도 되셨었는데 그 후 4~5년을 더 지내시다 세상을 뜨셨다. 많은 어르신의 바람이 요양원에 가지 않고 혼자 힘으로 지내시다 세상 떠나시길 원하신다. 하지만 수명이라는 것이 바람대로 되지 않으니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는 걸 뒤늦게야 깨닫는 것이리라!


고인이 되신 지인의 어머니

형편이 여의치 않아 노모를 요양원에 모시던 지인이 있었다. 그는 사랑하는 어머님을 요양원에 모시고는 마음 아파했고 거의 매일 퇴근길에 요양원을 들러 어머님을 뵈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님은 뇌경색으로 쓰러지셔서 신체적으로도 불완전하고 치매도 생겨서 자녀들과 함께 생활하시다 증세가 호전되지 않아 급기야 2~3년 전부터 요양원에 모시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 감기를 심하게 앓고 나신 후로 폐가 급격히 나빠져서 응급실을 들락거렸다고 한다. 그러다 어머님은 일주일 전쯤 폐렴이 심해져서 혼절을 하셨다. 그의 자녀들은 병원 측으로부터 임종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소식을 받고는 원근각처에서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어머님 곁을 지켰다고 한다. 그런데 어머님은 일주일이 지나도 혼수상태인 채로 유지되시다가 팔 일째 되던 날 깨어나셨다고 한다. 그리고는 폐렴도 호전되셔서 자녀들은 한시름 놓으며 퇴원 수속을 밟았다. 자녀들은 긴장했던 마음을 녹이며 일상으로 돌아갔는데 그 후 어머님은 퇴원하고 일주일이 되던 날 요양원에서 숨을 거두셨다. 긴장을 풀고 일상으로 돌아간 자녀들은 어머님이 별세하셨다는 부고를 받고도 믿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혹여나 전처럼 다시 일어나실까 기대되고 어머님의 사별이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졌다고 한다. 장례식을 모두 마친 후에야 그분의 자녀들은 이젠 어머님을 더는 뵐 수 없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져서 통곡을 했다고 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

나는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을 마주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진다. 십육 년 전 나의 부친께서 돌아가시던 날이다. 나는 가족들과 함께 세상을 떠나시기 위해 숨을 고르시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를 향해 어서 어린아이들이 기다리니 귀가하라고 손짓하며 당신은 아직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상태가 위태로워 보였고 마지막 순간을 반드시 지켜보고 싶었기에 나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심호흡은 길어졌고 간혹 의식이 돌아와 말씀도 하셨기에 나는 잠깐 병실을 나왔다. 아뿔싸, 그런데 하필 내가 병실을 나온 그 찰나에 아버지는 숨을 멈추시고 말았다. 병실 문이 닫히고 얼마 되지 않아 가족들의 울음소리가 병실밖으로 들려왔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뛰어 들어갔는데 아버지는 이미 의식이 없었고 숨도 멈춰있었다. 짧은 숨이 멈춰지는 그 순간이 바로 삶의 마지막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임종을 보면서 "천명"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아쉬움도 미련도 더도 덜도 남김없이 숨을 다 내쉰 뒤 거두시는 그 모습이야말로 천명을 다하셨음을 보여주신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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