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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eong Apr 16. 2024

노년기 어머니의 삶

노년의 삶을 엿본다

돌봄이 필요한 어머니

집안의 중심이자 최고 권력자이셨던 어머니가 어느덧 노약자가 되셨다. 하지만 정작 어머니는 당신이 노약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신다. 청력이 약해진 어머니는 한번 말하면 잘 듣지 못해서 두세 번 더 물어보신다.

주말이면 자녀들이 어머니와 함께 모여 식사 나누며 수다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불만을 토로하신다.

"내가 늙었다고 무시하는겨? 늙은이는 제치고 지들끼리만 히히낙낙거리는구나!"

사실 어머니는 자녀들의 대화를 한 번에 잘 듣지 못해서 이해가 안 되시니 트집을 잡으신다. 어머니는 젊었을 땐 아버지와 자녀들을 모두 휘어잡으셨던 분이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어머니의 의견에 순순히 따라야만 평화를 누릴 수 있었고 아버지 역시도 가정의 불화를 줄이기 위해 어머니의 의견을 존중하셨던 것 같다. 물론 어머니는 현명하게 자녀들과 집안일을 잘 이끄셨던 분이다. 어머니로서 자녀들에게 충분히 존경받을만하시다.

우리는 어머니를 많이 의지했었고 든든한 울타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던 어머니가 구순에 가까운 노인이 되시니 시력은 칠순 때부터 녹내장으로 시각장애 판정을 받으셨고 청력도 약해져 소리를 잘 듣지 못하시며 무릎 허리 관절통이 심해서 거동조차 못하신다. 그러니 어머니 곁에서 누군가가 돌봐드리지 않으면 어머니 스스로는 모든 활동이 어렵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요양원이나 노인센터엔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하신다. 주 5일 방문 요양보호사를 통해 도움을 받으시는데 하루 3시간만 돌봄을 받기에 나머지 시간은 무료하게 지내신다. 나는 요즘 휴직을 하고 있어서 틈날 때마다 어머니와 식사를 함께 하고 서너 시간씩 어머니와 함께 머물면서 이야기도 나눈다. 몸의 쇠약으로 인해 마음도 약해지시고 인지력이나 정신력도 저하되신 어머니를 마주하며 노년의 삶이 힘겹게만 느껴진다. 어머니는 특별히 할 일도 할만한 능력도 없는 인생이 언제까지 살아야 하나 빨리 죽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날씨가 궂은날이면 온몸의 통증 때문에 괴로워하신다. 어머니는 성한 곳이 별로 없지만 정신은 맑으시다. 그래서 더 고통스러워하시는 것 같다. 지난 일들을 자주 추억하시고 되뇌신다. 어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은 에너지가 소실되는 것을 느낀다. 함께 괴로워해야 하고 비관적인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늙음으로 쇠약해진 자신을 수용하고 싶지 않으신 모양이다.


   



산다는 건 죽음을 향해 가는 것

어머니의 컨디션을 북돋아드리려고 여러 가지 상황을 연출해보기도 한다. 바깥나들이, 시장구경, 유머 창작 등. 그런 딸의 노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머니는 다 재미없다고 찡그리신다. 어머니에겐 그저 산다는 것은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일 뿐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아직 어머니의 나이를 살아보지 않았으니 잘 모르겠다. 어머니의 말씀이 틀린 말은 아니다. 결국 삶과 죽음이 같은 의미 아닌가! 하루하루 살아내고 나면 죽음의 길이 다가오니 사는 것과 죽어가는 것의 의미가 다르지 않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삶에 대한 조금의 소망도 기대도 하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나도 노인이 되면 그럴까? 가장 아쉬운 것은 건강이다. 어머니에게 건강한 시력, 청력, 관절이 유지되었다면 지금보다는 삶의 질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느 독서토론회에서 80 후반 어르신이 참여하신 적이 있는데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선생님 나이 때는 내가 이렇게 오래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 백세시대가 온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감각적으로 받아들이진 않았나 보다. 이제 우리 시대는 120세 시대라고들 말한다. 65세에 은퇴하여 노인이 되고 나서 앞으로 반생을 더 살아야 한다니 눈앞이 캄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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