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샘의 한시 이야기
사람만 덥겠는가? 짐승들도 마찬가지다. 온몸이 검은 까마귀는 땡볕에 더 취약할 것이다. 저도 살겠다고 사람 사는 마당에까지 와서 물로 몸을 식히는 까마귀가 얄밉다. 쫓아내도 다시 날아와 멱을 감는다. 까마귀도 별수가 없는 것이다. 이제야 이해가 간다. 부채질도 힘겨워 어린 종놈에게 시켰더니 몇 번 부치다 말고 꾸벅꾸벅 존다. “네 이놈!” 야단을 쳐 보지만 그때뿐이다. 이놈도 이해가 간다. 오죽하겠느냐... 세상 어디를 둘러보아도 모두가 더위에 허덕인다. 어서 맑고 시원한 가을 하늘을 볼 수 있다면 한이 없겠다...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1791년 여름에 지은 시이다. 자그마치 30운(韻) 60구절이나 되는 긴 시인데 4구절만 잘라 왔다. 시 전편에서 구절마다 이런저런 모습으로 더위를 표현했는데,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더워서 환장하겠다!!” 다산은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탄 모양이다. 다산의 시에는 더위 때문에 힘들다는 내용이 유난히 많이 보인다. 강진 유배 중에 제자인 황상에게 보낸 시에는 “한밤중엔 번번이 미친놈처럼/ 꾀벗고 마을 샘에서 목욕을 한다네”라는 구절이 나온다. 아무리 유배객이라지만 점잖은 양반이 한밤중에 홀딱 벗고 마을 공동 우물에서 목욕을 하는 건 제정신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매 위에만 장사가 없는 게 아니라 더위에도 장사 없다. 사람뿐이겠는가? 모든 동식물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제자리에 뿌리가 박혀 옴짝달싹 못 하는 식물들은 더 치명적이다. 발이 없어 그렇지 속으론 하루에도 수백 수천 번 미치고 팔짝 뛸 것이다. 물을 주면 바짝 살아나는 화분의 화초들을 보면서 어서 이 더위가 좀 물러가기를, 시원한 소나기라도 한바탕 내리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