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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아이린 Jul 01. 2024

엄마가 행복했던 때는?

엄마가 지나온 어린 시절

 엄마는 활달한 성격이었다. 말 몇 마디만 나누면 금방 친구가 될 정도로 사교적이던 엄마는 코로나19가 터져 집에만 있다 보니, 우울해졌고 말도 없어졌다. 엄마에게 병이 찾아온 이유엔 코로나19 영향도 있는 듯하다. 진단받고 1년 5개월 정도 지났을 때쯤, 엄마와 긴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물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엄마는 가장 기뻤던 때가 언제였어?"

"글쎄... "

"그럼 행복했던 때는?"

"... 없었던 것 같아."

 엄마는 행복했던 때가 정말 없었던 걸까? 그래도 뭐 하나는 얘기해 줄 줄 알았는데...

어쩌면 기억이 안 나는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걸어온 길을 생각한다.


 엄마의 유년기는 순탄했다. 내가 알기로. 국민학교 때는 장미가 그려진 가죽 가방을 메고 다녔다. 그 시절엔 대부분 학생들이 보자기에 책을 싸서 다니던 때라, 가죽 가방이면 부유한 집이었다. 그래도 그땐 행복했겠지. 외할아버지의 솥공장 사업이 망하기 전까지는.  

외할아버지는 전라도에서 솥 만드는 공장을 크게 했는데, 하루아침에 망해서 식구들과 서울로 올라왔다. 그때 엄마는 국민학교 4학년이었다. 공부를 잘했던 엄마는 학교에 다니고 싶어서 전학증을 가지고 있던 할아버지에게 자주 물었다.

"아버지, 학교 언제 가요?"

"조금 있다 가자..." 

 이런 물음이 몇 차례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전학을 시키지 않았다. 집에서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11살 소녀는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얼마나 부러웠을까? 할아버지는 서울에서 노점상을 하며 생계를 꾸리려 했지만, 장사가 신통치 않아 식구들은 밥을 굶는 일이 많았다. 사장님에서 하루아침에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는 막막함에, 할아버지는 아내와 7남매나 되는 자녀들 부양하기가 벅찼을 것이다. 그 시절엔 생계 걱정에 자녀들 학교 보내는 것은 뒷전이었으리라. 엄마는 그때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어 50대에 검정고시 공부로 초등, 중등 교육을 마쳤다.


 엄마가 16살 되던 어느 추운 겨울날, 엄마의 엄마는 돈을 벌러 떠난다. 할머니는 요리 솜씨가 좋아서 고향에 살 때에도 잔칫날이면 이곳저곳으로 불려 다녔다. 배를 타고 들어가는 강화도 일식집에서 일하게 된 할머니는 얼마 후 집에 와서 이것저것 챙겨주고 갔다. 

"조금 있다가 다시 올게. 동생들이랑 잘 지내고 있어."

할머니는 겨울 코트를 여미며 예뻐하던 딸을 바라보며 말한다.

"엄마, 빨리 오세요."

그게 마지막이었다.    

 할머니는 그 뒤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그 일식집에도 찾아가 보고 수소문도 해 보았다. 1980년대 이산가족 찾는 프로그램에도 나갔지만, 허사였다. 지금까지 행방불명된 상태로 남아 있다. 엄마는 엄마를 항상 그리워했다. 


 소파에서 TV를 보는데, 엄마가 거실에서 베란다를 스무 번 이상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한다. 

"엄마, 왜 자꾸 나가?"

"불안해."

어릴 적, 갑자기 엄마가 사라진 상실감으로 불안이 무의식 속에 자리했을까?

엄마가 지나온 어린 시절로 가보니,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배고픔에 힘겨웠을 어린 소녀가 있었다. 

동생들을 돌보며 부엌일에 엄마 역할 하느라 힘들었을 한 소녀. 그 소녀를 꼭 안아주었다. 

"괜찮아. 내가 옆에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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