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양상추를 씻었다. 씻기 전, 상추잎을 하나하나 벗기고 막대처럼 나온 심지를 잘라내고 또 벗겼다. 상추는 민들레, 코스모스와 같은 국화과 식물이다. 그래서인지 마치 꽃잎 하나하나를 떼어내는 것 같다. 가장 안쪽 상추잎을 뜯어내려는데 뭔가 시커먼 게 보인다.
'이게 뭐지?'
까만 줄무늬 애벌레가 있다. 움직이지 않는 걸 보니 죽은 모양이다. 말라 붙어 있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 놀랐다. 어떻게 여기서 별이 되었을까?
새싹이 돋고, 조금씩 잎이 날 무렵 이 벌레가 찾아왔을 것이다. 그러다 잎이 계속 생겨나며 자라 안쪽 상추를 감쌌겠지. 겉면 상추 잎이 크고 무거워 나갈 수 없었겠지. 그가 있던 자리 주위의 흰 상추 줄기에 고동색 상처들이 묻어 있다. 앞, 뒤, 옆, 위, 아래 꽉 막힌 자리에서 몸부림을 쳤겠지.
처음엔 나오려고 했을 거야. 맛있는 먹이를 찾았지만 욕심부리지 말았어야 했을까. 움직일 시간을 잊고, 먹는 기쁨에 빠져 상추 잎들이 자신을 가두는지 몰랐을까.
우리도 때때로 안주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내가 있는 곳에서 뭘 하지 않아도 될 때, 누가 뭘 하라고 시키지 않을 때,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때... 그러다 어떤 순간에 알아차린다. 움직여야지. 아무 생각 없이 목욕물에 담그고 있다가 물이 턱 밑까지 차올라왔을 때에 몸을 일으키는 것처럼.
애벌레는 자신이 있는 곳이 낙원인 줄 알았을까. 옆 상추잎이 조금 자랐을 때 하늘이 보일 때 나갔어야 했다. 그 기회를 잃은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