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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당무 Mar 25. 2021

삼행시의 늪

순발력 부족한 자들의 무덤, 건배사

"당무야 이번엔 니가 삼행시 좀 지어봐라"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삼행시를 마친 나의 동기가 소맥 원샷까지 마치고 박수를 받으며 자리에 앉자 건배사를 주문하는 화살이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게로 날아와 꽂혔다. 취재원들과의 회식자리였고, 우리 쪽은 세 명이었다. 팀장, 동기, 그리고 나. 그러니까 당연했다. 팀장이 삼행시를 했고, 그다음 동기가 삼행시를 마쳤으면, 그다음은 내 차례인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방금 전까지 좌중을 웃음바다로 몰아넣은 동기의 삼행시 순발력에 속으로 감탄사를 연발하며 소맥이나 헤벌쭉 받아마시고 있었다.


사실 팀장이나 동기의 삼행시는 완성도 측면에서 낙제점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가령,

홍: 홍당무야!

당: 당무야!!

무: 무그라, 술 많이 묵으라~

이런 식이었다. 텍스트로 옮겨놓으면 웃겨서가 아니라 터무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는 이런 삼행시가 술자리 현장에서는 먹혔다. 결국 '내용'이 문제가 아니었다. 익살스러운 표정과 쾌활한 목소리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어떤 문장이든 내뱉는 '행위'가 중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순발력이나 적당한 뻔뻔함이 부족했다. 내가 삼행시 내뱉기를 주저하는 사이 분위기는 살짝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내 안의 홍당무가 기지개를 활짝 켜며 깨어났다.


그날 이후 나는 끼가 없으면 성실하기라도 해 보자는 심정으로 삼행시 대비 태세에 들어갔다. 술자리 상대의 이름은 기본이고 그의 소속기관명, 소속부서명,  내 이름, 팀장 이름, 동기 이름, 심지어 회식할 음식점 이름, 그 음식점에서 파는 요리 이름까지 세 글자라면 뭐든 그날의 삼행시 용의 선상에 올렸다. 그러나 거듭 말하길, 중요한 건 완결성이 아니었다. 긴장한 얼굴로 완벽한 삼행시를 구사하는 것은 냉면을 호호 불어 먹는 것만큼이나 어색한 일이니까. 그럼 대체 뭐가 문제냐고?


"나는 그냥 건배사가 싫어. 테이블에 앉은 일동이 나를 쳐다보면 얼어붙는 기분이 든단 말야. 분위기를 휘어잡거나 모두를 웃게 만들 건배사는 욕심도 내지 않아. 그냥 나는  그런 내 모습을 보는 게 싫은 거야.  업무도 아닌 일로 우스워지는 것 같아 억울한 마음도 들고." 회식이 끝난 어느 날, 집에 돌아와 이렇게 말하며 울상이 되어버린 나를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이렇게까지 속상해할 만한 일이야?"


그렇지, 아니지, 이게 뭐라고. 그런데 난 왜 이렇게 속상한 걸까. 건배사 차례가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면 온몸의 장기들이 발맞춰 단체줄넘기라도 하듯 쿵. 쿵. 쿵하고 뛰는 까닭이 대체 뭘까. 어쩌면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과 실제 내 모습 사이의 괴리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 누구나 그런 괴리는 있는 법인데 나는 그걸 너무 숨기고 싶었던 게 문제일 수도 있다. 부족한 순발력, 생각이나 마음을 잘 들키는 어수룩함, 그것과 한 세트처럼 붙어 다니는 잘 빨개지는 얼굴, 이런 것들.


건배사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법을 나는 아직도 모른다. 최근 몇 달 간 코로나19로 회식자리가 영 뜸했지만 어쨌든 #회식 #건배사 (가끔은 #삼행시 까지) 직장생활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 따라붙을 키워드일 테다. 하, 어쩔 수 없. 벌겋게 상기된 얼굴에 떨리는 두 손으로 술잔을 꼭 쥐고 횡설수설 후덜덜덜 멋없게 건배사하는 이런 나라도. 잠시 흔들리는 눈동자에 자긍심까지 흔들리지는 말자고 마음을 다잡아 보는 수밖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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