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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난포 May 03. 2024

초보맘들, 이런 숏츠/릴스 절대로 보지 마세요

앞다퉈 불안을 팔아 대는 미디어 범람 시대

아기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시절 이야기다. 나는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 '아기 침대'나 '아기 100일 사진'처럼 아기를 갓 낳은 사람들이 흔히 찾아볼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기 시작했다. (아마 많은 초보맘들이 나와 비슷할 것이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아주 단순했다. 튼튼하면서 모양이 예쁜 아기 침대 없을까? 아기 100일 사진은 어디서 찍어주면 잘 나올까? 그런데 이런 검색어를 두드려대자 며칠이 지나고 기이한 일들이 일어났다. SNS가 갑자기 홍수처럼 나에게 추천 영상으로 자폐 스펙트럼 증상을 제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라? 이상하다??? 한 번도 그런 키워드로 검색을 한 적이 없는데... 


SNS의 알고리즘은 무척 정교해서 보통은 내가 관심 가질 만한 키워드를 콕콕 집어서 보여준다. 그런데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너무 생뚱맞게 느껴졌다. 요즘 제법 흔하기에 부모들이 많이 걱정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우리 아기는 아직 돌도 안 되었는걸? 나는 이상한 우연이라고 생각하며 그런 게시물을 무심히 넘겨버렸다. 그런데도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는 지치지도 않고 나를 비슷한 유형의 게시글로 데려갔다. 집요한 호객꾼을 보는 것 같았다. 아기가 겪은 끔찍한 사고, 장애와 질병에 걸린 아동, 어린이집 학대 등등. 레퍼토리는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호객에 끌려오긴 했지만, 추천 게시물과 영상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장애와 질병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SNS 소통을 통해 긍정적인 기운을 얻는 것 같았고, 나도 진심으로 그녀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아이 학대와 사건 사고를 다루는 영상을 보게 되면, 혹시 모를 위험 요소와 주의점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애 낳고 키우는 것이 마냥 꽃밭도 아닌데, 누구에게라도 닥칠 수 있는 어려움이나 유의 사항을 공유하는 것이 어찌 나쁜 마음에서 시작되었을까? 나는 처음의 의구심에서 벗어나, 순순히 추천 게시물마다 따봉과 하트를 누르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유형>의 게시물만큼은 초보맘인 나에게 유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이 유형> 게시물의 포맷을 빌려와서 이 글을 쓴다.


여기서의 유해한 게시물은 불안 조장형 콘텐츠다. 뭔가가 위험하고, 금기이고, 때로는 그 반대로 절대적인 필수라고 호들갑을 떨면서 정작 그 실체에 대해서는 제목이나 요약으로 명료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게시물 제목은 전형적으로 핵심 키워드를 빼놓은 낚시형 포맷을 하고 있다. 내용은 경고 혹은 의무의 과잉이다. '이런 행동하면 아기한테 큰 일', '엄마라면 돌 전에 이것 반드시 해줘야', '이거 놓치면 정서/인지 발달에 치명적' '아기 방에 이 제품 절대로 두지 마세요' 등등. 그 내용이 완전히 사리에 어긋난다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사실이긴 하나 과장되었으며, 때로는 진실과 선동을 교묘하게 섞어 놓기도 한다. 그런데 초보 엄마인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하나하나 눌러보아야 한다. 혹시 저들이 말하는 1%의 진실을 미처 몰랐다가, 나쁜 엄마가 될까 봐.


금기가 너무 많아지자, 아이에게 맘 편히 해 줄 수 있는 것이 줄었다. 의무가 너무 많아지자,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즐겁지 않았다. 혹시 아이의 작은 신호 하나하나가 비정상에 대한 경고일까 봐 애랑 웃고 즐길 수가 없었다. 부모를 저격하는 유해한 미디어는 불안을 조장하고, 불안을 먹고 산다. 그래야 더 많은 클릭과, 좋아요와, 하트를 받는다. 이들은 새로운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에 잔뜩 긴장하고 예민해진 마음을 빨아먹고 성장한다. 불안이 더 커지면, 그들은 더 성행한다. 그래서 SNS도 자꾸만 불안 조장형 콘텐츠를 이용자들에게 들이민다. '이것 좀 봐, 무섭지? 걱정되지? 안 보고 배길 수 있겠어?' 아기 양육자에게 세상은 아기를 향한 위협이 만연하게 느껴지며, 미약한 아기를 지켜내야 한다는 보호 본능이 절대적이다. 긍정적이고 편안한 이야기보다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이야기가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불안을 먹고사는 미디어의 범람 시대에는, 아기 엄마들이 귀한 시간을 미디어에 내어주고 그 대가로 스트레스를 적립한다. 손해 보는 장사이다. 


인간은 보고 듣는 것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는다. 불안 조장형 콘텐츠에 자꾸 노출되면 더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냥 더 불안한 엄마가 될 뿐이다. 길고 긴 자폐 스펙트럼 증상 목록이 일부에게는 유용하겠지만,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한테까지 그 증상을 하나하나 대입해 보면서 괜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 아기에 대한 잠재적 위협을 넓고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것은 호모 사피엔스 특유의 귀중한 본능이며, 유용한 면이 많다. 하지만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미디어에 나의 정신과 시간을 휘둘리지 말자. 우리가 상식적인 수준에서 주의를 기울이고 하루하루 노력한다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무탈하게 자랄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하자. 자, 결론을 위해 이 글의 제목을 정정해 보겠다. 우리 초보맘님들, 불안 조장형 쇼츠/릴스는 웬만하면 보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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