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우다

by 숨쉬는 안나


나는 사람들을 키워주는 일을 해왔다.

무대에 서는 사람들의 불안을 다독이고, 그들의 가능성을 발견해 주는 일이 내 일이었다.

춤을 통해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깨우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게 만드는 일.

나는 그렇게 누군가를 무대 위로 올려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그렇게 많은 사람을 성장시키고 세워주는 일을 했지만, 정작 나 자신을 키우는 법은 몰랐다는 걸.


아이와 집 안에서 단둘이 마주하는 시간, 그게 그렇게 힘들 줄 몰랐다.

누군가를 성장시키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온 내가, 엄마라는 역할 앞에서는 초보였다.

더 이상 화려한 조명도 없고, 박수도 없고, ‘잘하고 있다’는 말 한마디 들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무대에서 내려와 집 안의 작은 공간 안에서 또 다른 싸움을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는 동시에, 나 자신을 다시 키우는 싸움.


육아는 내가 알던 세계와 너무 달랐다.

나는 늘 계획하고 준비하고, 무대 위에서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그런데 육아는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계획해도 어긋나고, 준비해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밤새 아이가 울고, 낮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무대에서는 누구보다 단단했던 내가,

작은 집 안에서 점점 부서지는 기분이 들었다.


가끔은 너무 서러워서 혼자 울었던 날도 있다.

나는 내 아이를 사랑하는데, 아이를 키우는 내 모습은 점점 낯설고 작아 보였다.

아이를 안고 있는 나, 예쁘지 않았다. 지쳐 있었고, 초라했고, 자신 없는 눈빛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사람을 무대 위에 세워주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게 있다는 걸.

그건 바로 나 자신을 내 삶의 무대 위에 다시 세우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주 천천히, 나를 다시 키워보기로 했다.

매일 아이를 돌보는 그 와중에도,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했다.

잠깐이라도 혼자 걷기.

커피 한 잔 온전히 천천히 마시기.

글을 한 문장이라도 써보기.

내가 좋아했던 음악 틀어놓기.


작은 것부터 나를 다시 데려오는 연습.

그리고 그게 생각보다 큰 힘이 되었다.


뉴질랜드에 와서 가장 다행이라고 느낀 건,

자연이 늘 내 편이라는 것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동네 공원을 돌았다.

바닷가도가고 멍하니 비흐르는 소리를 들었다.

말 없이 자연 속에 앉아 있으면,

내 안에서 소리 없이 울던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았다.


도시는 나에게 속도를 요구했지만, 자연은 멈춰도 괜찮다고 말해줬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숨 쉴 수 있는 곳에서

나는 아이 엄마로서가 아니라, 그냥 나로 돌아가는 연습을 했다.


지금도 여전히 서툴고, 어떤 날은 지쳐서 주저앉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안다.

나는 무대 위에만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이렇게 자연 속에서 숨 쉬는 나도 나고, 아이 곁에서 조용히 웃는 나도 나라는 것.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

나는 다시 내 삶의 무대 위로 올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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