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의 힘

피처 스토리 III

by Spero

잘 쓴 피처 스토리에 담겨 있는 6가지 디테일


2013년 한국기자협회가 취재 후기 공모전을 개최했다. 그때 2001년 9.11 테러 취재후기로 우수상을 받았다. 최우수상 없는 우수상이었다. 객관적 검증을 받았다는 전제로 취재후기 부분 부분을 인용하면서 피처 스토리를 위한 6가지 디테일을 설명해보겠다. '미디어 트레이닝' <11. 뉴욕, 2001년 가을>의 속보인 셈이다. (전문은 맨 아래 링크 참조)


① 충실한 팩트

팩트 없는 피처 스토리는 저널리즘이 아니다. 팩트로 쓴 스트레이트에 피처링을 가하면 훌륭한 피처스토리가 탄생한다. 피처링이란 인터뷰, 묘사, 인용, 일상, 에피소드 등이 포함된다. 충실한 팩트는 현장감을 높인다. 굳이 형용사적 묘사가 필요 없다. 팩트를 그대로 적으면 그 자체가 훌륭한 현장 기록이 된다. 아래 문장들은 9.11 테러 현장을 팩트를 나열하는 것만으로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나는 현장 쪽으로 계속 접근했지만 열 블록쯤 내려가다 보행자 통제 라인에 막히고 말았다. 그곳에서부터는 경찰이 일일이 신분을 확인하며 해당 지역 거주민들만 들여보냈다. 외부인 출입은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현장의 구름 같은 연기가 눈에 들어왔다. 라파예트 스트리트로 좀 더 내려갔다가 하우스턴 스트리트를 통해 브리커 스트리트 역에서 6번 지하철을 타고 돌아왔다.


“그리니치빌리지. 세인트빈센트 병원 등 5개 병원 헌혈센터는 여전히 붐비고 있습니다. 실종자를 찾아달라는 벽보가 전신주를 비롯해 곳곳에 나붙기 시작했습니다.”


뉴욕 월가 정상화, 증권거래소 9시 30분부터 영업 개시, 초반 주가 폭락세, 베이스볼 게임 재개, 맨해튼은 증권시장 개장을 시점으로 일단 사고 현장을 제외하고는 정상화 단계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② 몰입도를 높이는 리드

스트레이트 첫 문장이 중요한 것처럼 피처스토리의 리드 또한 중요하다. 결론 먼저 쓰는 스트레이트 방식보다는 긴 글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궁금증, 호기심을 유발해야 한다. 독자가 첫 문장을 읽고 다음 문장을 읽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오전 8시 45분. 샤워를 마치고 나와 습관처럼 호텔 방 TV를 켰을 때 화염에 휩싸인 월드트레이드센터가 눈에 들어왔다. 묵음 상태로 무덤덤하게 화면만 보면서 “미국도 민방위 훈련을 하나”라고 생각하던 나는 화면 하단 자막을 보는 순간 화들짝 놀랐다.

‘planes were hijacked before crashed.’


③ 묘사

피처스토리는 짧은 문장으로 이뤄진 스트레이트와는 성격을 달리 한다. 긴 호흡을 유지하면서 상황을 세세하게 묘사해야 한다. 카메라가 줌인, 줌아웃, 팬 하듯 마치 그림을 그리 듯 묘사해야 한다. 방송기자에 있어서 펜은 카메라와 마찬가지다. '카메라 만년필론'(알렉산드르 아스트뤽)을 기억하자. 역설적으로 영상 없이도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글을 썼다면 그것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사태 발생 닷새 만에 처음으로 9·11 현장에 접근했다. 뼈대만 남은 월드트레이드센터, (...) 현장 주변 델리 샵으로 보이는 주인 없는 가게엔 먼지만 뽀얗게 쌓이고 있었다. 허름한 가게의 깨어진 유리창 안쪽으로 “WE’RE OPEN”이란 안내판이 을씨년스럽게 흔들리고 있었지만 정작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신문 가판대에서 뉴욕 타임스 한 부를 샀다. “보이지 않는 적-먼지(Invisible enemy-Dust)”라는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에 마스크를 한 행인들이 부쩍 눈에 많이 띄었다. 뉴요커들은 눈에 보이는 파괴된 도시 한가운데서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적과 싸우고 있었다.


④ 인용

훌륭한 인용은 팩트로 구축된 메인 스토리에 조미료 역할을 한다. 디테일한 묘사에 부연하는 적절한 인용은 스토리의 전개 상황을 보다 분명하게 만든다. 적절한 인용은 부실한 취재보다 훨씬 호소력 있다. 그것은 현장 분위기를 대신 전하고 공감의 폭을 확장시킨다. 때때로 글쓴이의 가치관을 반영하기도 한다.

미사를 집전한 에드워드 추기경은 WTC 현장은 ‘Ground Zero’가 아니라 ‘Ground Hero’라고 표현했다.


가치중립적 입장을 지지하는 저널리스트로서 나는 “어느 한 사람에게 테러리스트는

또 다른 사람에게 자유를 위한 투사일 수 있다”는 정의에 동의한다.


⑤ 인터뷰

인터뷰는 피처 스토리의 기본이다. 현장의 인터뷰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보고 느낀 현장의 목소리를 그대로 인용하면 그 자체가 생생한 스토리가 된다. 인터뷰는 내 머릿속의 생각을 타인의 입을 통해 확인하는 과정이다. 한 사람의 인터뷰는 팩트를 만들고 두 사람의 인터뷰는 그 팩트를 확인한다.

“난 테러에 대해 잘 몰라요. 무지(ignorance)는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오만(arrogance)이 죄악이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보복이라고요? 피는 피를 부를 뿐이에요. 지금은 미국이 정신을 차려야 할 때에요.”

자신을 패트 다운즈라고 소개한 일흔두 살의 할머니가 말했다.


유엔 대표부에서 돌아오는 길에 부하라(Bukhara)라는 레스토랑이 눈에 띄길래 한동안 쳐다봤다. 전 세계인이 모여 사는 곳답게 맨해튼에는 낯선 지명을 상호로 내건 레스토랑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레스토랑 입구에 있는 이마 한가운데에 점을 찍은 여인에게 부하라가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도시가 맞느냐고 물으니, 그곳을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한다. 2년 전 실크로드를 취재할 때 이틀 동안 묵은 적이 있었다고 하니 무척 반가워하며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 칼란 미나레트에도 갔었다”

“어릴 적 그곳 주변에서 놀며 자랐다. 카라반들이 사막의 등대로 삼았던 곳이다.”

“이슬람들이 불안하겠다”

“많이 불안하다. 우리는 테러에 반대한다. 간밤에 백인들한테 공격을 당한 사람들도 있다”

테러의 여파는 글로벌 시티에 사는 소수민족들 마음 구석구석에까지 미치고 있었다.


⑥ 에피소드

일상적 에피소드는 심각하고 중요한 사안이 아닐지라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중차대한 상황을 바라보는 평범한 시각 속에 공감의 정서가 자리 잡고 있다. 에피소드는 약방의 감초 역할을 한다. 복잡한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부담스러운 현장 스케치를 대신할 때 에피소드를 활용하면 효과적이다.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의 것도 차용할 수 있어 효율적이다.

내게는 센트럴파크 하면 오버랩되는 두 인물이 있다. 한 명은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J.D.샐린저이고, 다른 한 명은 존 레논이다. ‘호밀밭의 파수꾼’ 주인공 홀든이 얼어붙은 공원 호숫가에서 ‘그 많던 여름날의 오리 떼는 다 어디로 갔을까’하고 걱정하는 장면을 생각하면 나는 항상 ‘연민’이란 게 어떤 것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존 레논은 또 어떤가? 공원 내 그가 묻혀 있는 ‘스트로베리 필드’에는 그가 노랫말로 평화를 염원한 ‘IMAGINE’ 표석이 자리 잡고 있다. 천국도, 종교도, 나라의 경계도 따로 없는 진정한 평화를 꿈꿨던 그의 얼굴이 떠오른 것은 왜였을까?


작은 맨해튼에는 전 세계가 들어 있다. 멜팅 포트라는 별명에 걸맞게 뉴욕 맨해튼에는 다양한 인종이 공존한다. 택시를 타고 “렛츠 고우 투…”어물거릴라치면 금방 “한국에서 오셨어요?”하는 코리안 아메리칸에서부터 조르바를 닮은 그리스 주방장에 이르기까지 그 모습들이 실로 다양하다.


[인용 출처 :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가을'…그 어디에도 낭만은 없었다. 한국기자협회보]

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31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