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간직하고 있는 강렬한 이미지가 있다.
몽생미셸이 그런 곳이었다.
나는 그 신비한 성을 중학교 때 '라스트 콘서트'란 영화를 통해서 처음 봤다.
그 후 한 항공사 CF로 그곳을 다시 본 뒤, 내 버킷 리스트에 고이 담아뒀다.
마음에 품은 풍경은 언젠가는 눈앞에 펼쳐진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같은 몽생미셸을 마주했던 그때의 설렘이란...
인도에서 내가 제일가보고 싶은 곳은 타지 마할이 아니었다.
하와 마할이었다.
그놈의 영화 때문이었다.
내겐, 자이푸르 하면, 하와 마할,
하와 마할 하면 그랜드 부다페스트호텔이었다.
인도 라자스탄 주는 사막으로 이어지는 길목답지 않게 컬러풀한 닉네임을 가진 도시들이 많다. 자이푸르는 핑크시티, 조드푸르는 블루시티, 우다이푸르는 화이트시티로 불린다.
오래전부터 핑크시티 아이콘 하와 마할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내 머릿속 이미지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델리에서 300 Km,
노이다를 거치는 동남쪽 아그라와는 달리
자이푸르는 구루가온을 거쳐 서남쪽으로 5시간을 달렸다. 뭄바이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다.
흐린 하늘에 빗줄기가 시작되더니 구멍 뚫린 듯 폭우가 쏟아졌다.
하와 마할 앞에 섰을 때,
인증샷 찍기가 어려울 만큼 장대비가 내렸다.
빗속에서 확인했다.
보라니까! 딱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잖아!!
하와 마할,
바람의 궁전(palace of winds),
남성 중심의 이슬람 사회에서 바깥문 출입이 불허된 귀족 부인들이 바람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그 궁전,
이거야 원, 그렇다면 럭셔리 감옥 아닌가?
70년대가 저무는 그해,
난 대입을 앞둔 고3이었고,
책가방을 옆구리에 낀 채 장충동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2층 양옥집 창문을 통해 나오던 이 노래 마지막 구절에 이은 후반부 일렉기타 사운드가 어찌나 강렬하던지...
"You can check-out any time you like but you can never leave ~"
(Hotel California / Eagles)
"언제든 체크아웃할 수 있지만 넌 결코 떠날 수 없어"란 메시지는 솔직히 그땐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다. 그것이 고3의 감옥에 갇힌 10대 청춘에게 던지는 메시지로 읽혔다면 난 그 자리에서 이글스의 LP를 뽀개버렸을 것이다. 본고사 앞두고 자습시간 때면 학교 담을 넘어 국립극장으로 땡땡이치곤 했던 시절이었다.
뭄바이 빈민촌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롤랑 조페 감독의 '시티 오브 조이'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자포자기한 주인공 맥스(패트릭 스웨이지 )에게 조앤(폴린 콜린스)이 말한다.
"인생에는 세 가지 길밖에 없어요. 도망치거나, 모른 체하거나, 부딪히거나"
10대 끝자락의 그때 난 그냥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다.
내 인생이 왜 이 모양 이 꼴이지? 무슨 죄를 졌다고 이래 갇혀 있는 거지?
그 해 어느 날, 학교 담장을 넘어 국립극장 분수대 앞에서 장난치며 놀고 있을 때, 바람결에 실려온 오케스트라의 선율을 난 잊지 못한다. 그 소리를 좇아 따라가 확인한 것은 공연을 앞둔 교향악단의 연습실이었다. 나는 그때 내 눈앞에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생음악을 처음 들었다. 녹음되지 않은 라이브로 말이다. 악기들의 조합이 이뤄내는 선율은 정말이지 바람 같았다. 비단결 같았던 그 바람의 냄새를 지금도 나는 잊지 못한다.
'바람의 궁전'에 갇힌
하와 마할의 여인들은 외부로 연결된 천여 개의 창문을 부숴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구멍 난 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의 숨결에 오히려 숨 막혔을 것이다. 열린 공간으로 나오라는 바람의 손짓에도 그네들은 닫힌 공간에 있을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떠남이 보장되지 않는 체크 아웃은 의미 없다.
핑크시티 자이푸르,
마침내 내 맘속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왔다.
체크 아웃 가능한가?
언제든 나갈 수 있는가?
떠날 수 있는 자만이 돌아올 수 있다.
"도살장처럼 변해버린 잔혹한 세상에도 희망은 존재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