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이슬람 예술 작품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작품."
(유네스코 세계유산)
이같은 상찬은 그러나, 내겐 관심 밖이었다.
타지마할 행을 계획하고 이런저런 여행기, 관련서적, 인터넷 서핑을 하던 도중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다음과 같은 문장이었다.
그가 아그라에서 아들의 손에 잡혀 황금 감옥에 갇힌 채 하류 쪽의 그 장엄한 무덤을 바라보며 종말을 맞았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곳에서 그는 항상 무덤을 볼 수 있었지만 결코 가볼 수는 없었다.
('인도 이야기' 342쪽/ 마이클 우드)
뭄타즈 마할과 샤 자한알려진 바,
타지 마할은 무굴제국의 5대 황제 샤자 한이 그의 아내 아르주만드 바누 베굼(인도 이름, 뭄타즈 마할)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초호화 무덤이다. Taj는 왕관(crown), Mahal은 궁전(palace), 그러니까 왕관 모양의 궁전을 뜻한다. 실제로 봐도 그렇다. 한거풀 들쳐보자. Taj에는 왕비 뭄타즈(Mumtaz)의 이름 두번째 음절이 겹친다. 따라서 이것은 뭄타즈를 위한 오마쥬다. 데칼코마니 같은 완벽한 반쪽, 필시 황제는 둘이 하나가 되는 완벽한 사랑을 꿈꿨을 것이다. 눈에 들어 오는 이미지나 물에 비친 영상이나 하나 같이 완벽한 대칭미다.
황제와 황후의 나이 는 각각 15세와 14세, 둘은 19년 동안 열 네명(8남 6녀)의 자식을 낳는다.
부부 사랑 설명 끝!
누가 사랑은 영원하다고 말하는가?
불혹이 오기도 전 두 사람은 이승과 저승으로 갈라진다. 영원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황제는 22년에 걸친 대역사를 단행한다. 왕관에 박힌 보석처럼 빛나는 타지마할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동안 왕권을 둘러싼 형제들의 죽고 죽임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슬람 왕권은 장자에게 귀속되지 않는다.
강한 자가 왕위를 이어받는다.
골육상쟁은 필연이다.
'세계의 왕'이란 뜻의 샤 자한 역시 4대 황제 자항기르의 세째 아들이었다.
샤 자한과 뭄타즈 사이에서 태어난 14명의 자식 가운데 맏아들은 다라 시코,
그는 힌두교 경전에 푹 빠진 왕자였다.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쌍둥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동생 아우랑제브는 그런 형을 변절자로 못박는다.
형제들의 왕위 찬탈전 서막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최후의 승자는 3남인 동생, 맏형을 참수한 아우랑제브는 형의 머리를 아버지 샤 자한에게 보낸다.
'인도 이야기'를 한번 더 인용하자.
다라의 머리는 아버지 자한에게 보내졌다. 자한은 아우랑제브에 잡혀 타지마할을 굽어보는 황금 감옥에 갇혀 있었다. 자한은 탁자 위에 놓인 아들의 머리를 보고 기절했고, 그 서슬에 앞니가 부러졌다. 다라의 아들인 셀림 왕자는 아편을 섞은 음료수를 억지로 마신 뒤 목이 졸려 죽었다. (같은 책 353쪽)
이쯤되면 조선 초 왕자의 난 보다 더 처참하고, 갱스터 무비 대부1 말머리 씬보다 더 서늘한 메시지 전달이지 않은가?
권력이동 끝!
왕권을 장악한 아들은 애비를 어떻게 했을까?
아들 아우랑제브는 아버지 샤 자한을 아그라 성으로 유폐시킨다.
샤 자한은 야무나 강변 아내가 묻힌 타지 마할로부터 지척 거리인 '포로의 탑'(Musamman Burj)에서 통한의 세월을 보낸다. 8년이 지난 1666년, 숨을 거둔 뒤에야 그는 비로소 아내 곁으로 갈 수 있었다. 황후를 먼저 보낸 뒤 짓기 시작한 타지 마할 22년, 아들로부터 버림 받은 8년 동안의 고독, 한 세대가 바뀌는 30년 세월이었다.
사랑은 죽음 후에도 나눌 수 있지만 권력은 살아 생전에도 나누지 못한다.
타지 마할에 온 사람들은 정방형의 완벽한 대칭미에 감탄하고, 그에 얽힌 황제와 황후의 러브 스토리에 감동한다. 눈부신 대리석 조각에 탄복하며 다이애나비가 앉았다는 벤취에서 인증샷을 찍는다.
아그라 성에 갇힌 샤 자한이 봄여름가을겨울 내려다 보았을, 하지만 갈 수 없었던, 그 타지 마할을 오늘도 야무나 강은 휘감고 흐른다. 강물은 그렇게 갠지스로 흘러 들어간다.